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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Sep 07. 2019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후루이치 노리토시 / 민음사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하는 기성세대의 너스레일 것이다.

세대를 일컫는 다양한 신조어

 ‘세대론’은 항상 잘 팔리는 주제이다. 같은 세대 속에서 연대를 원하는 사람, 다른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 정보가 필요한 사람 등, 그 이야기의 반응하는 타깃들이 명확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대론’을 다루는 책들을 읽어보면 부족한 단서, 혹은 지나친 비약으로 내용을 공감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다분히 개인적인 경험이 글에 묻어있을 때도 있고, 얄팍한 위로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 것들이 탐독을 방해하고, 실망하도록 만든다. 더구나 요즘같이 복잡한 사회 속에서 세대를 나누려면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변화의 속도도 너무 빠르다. 세대를 구분하는 선을 모두 그었다고 할 참에 처음부터 수정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런 관점에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정말 잘 기획된 책이다.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던 이유에 대해서 정리해보고자 한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후루이치 노리토시 / 민음사

 이 책은 사토리 세대라 불리는 일본 젊은이들에 대해 다룬다. 이들은 가지고 싶고, 이루고 싶은 것도 없다. 그저 소소한 일상을 즐기며, 해외여행에 관심이 없고 정치 참여에도 무관심하다.  

예컨대 유니클로(UNIQLO)나 자라(ZARA)에서 기본 패션 아이템을 구입해서 입고, 에이치앤드엠(H&M)에서는 유행 아이템을 사서 포인트를 준 다음, 맥도날드에서 런치세트와 커피로 식사하면서 친구들과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세 시간 정도 나눈다. … 그리 돈을 들이지 않아도 그 나름대로 즐거운 일상을 보낼 수 있다.  
<프롤로그> 26page

 저자는 일본 젊은이들이 이렇게 무력한 이유를 밝히는데, 그것은 바로 (책의 이름처럼) 그들은 행복하기 때문이라는 아주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주장을 한다.

… 내각부에서 발표한 <국민생활에 관한 여론 조사>에 의하면, 2010년도 시점에서 20대 남성의 65.9%, 20대 여성의 75.2%가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라고 대답했다.‘격차사회’라느니, ‘젊은이는 불행하다.’라느니 하는 갖가지 언설이 범람하는 가운데도, 오늘날 20대의 약 70%는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 교토 대학교 교수인 오사와 마사치(52세, 나가노 현)는 조사에 회답한 사람들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인간은 어느 순간에 “지금 불행하다.”.“지금 생활에 불만족을 느낀다.”라고 대답하는 것일까? 오사와 마사치에 따르면, 그것은 “지금은 불행하지만, 장차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할 때라고 한다.
<2장 작은 공동체 안으로 모이는 젊은이들> 131,133page

 아이러니한 주제만큼 내용이 두루뭉술할 것 같다는 우려와는 다르게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두 가지 포인트에서 나름 견고한 설득력을 갖는 ‘세대론’이라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책의 객관성이다.  

여러 시대를 관통하는 풍부한 고증과 저자의 깊이 있는 해석 때문일까. 나도 모르게 저자에 대한 이미지를 중년의 신사 정도로 그려 놓았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저자에 대한 관심이 생겨 앞의 책날개를 보니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1985년생이며, 놀라운 것은 그가 26세 때 출판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웠던 부분은 젊은이라는 범주 안에 있는 저자가 세대의 행동과 현상의 적확_的確한 분석을 위해 자신을 철저히 배제하며 글을 객관화시켰다는 점이다. 독자로 하여금 글쓴이의 세대를 느끼지 못하게 할 정도로 단서를 주지 않았다. 자신의 경험으로 글의 논리를 희석시키지 않았고, 정확한 자료 제공을 위해 주석을 무려 453 개나 달았다. 이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인터뷰, 인용을 할 때는 그 사람의 출신 지역과 당시 나이를 반드시 이름 옆에 기재했다. 나이를 염두에 둔 그 사람의 입장이 독자가 판단하기엔 중요한 정보가 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글의 객관성을 지키기 위해 쏟은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수고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요소는 ‘젊은이’에 대한 담론 형성이다. 젊은이는 20대인가? 어떤 특성을 가져야 젊은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언제부터 구분하여 부르게 되었을까? ‘젊은이’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질문의 답변이 생산한 담론을 들여다봐야 한다. 하얀 점을 명확하게 하는 것은 점 밖으로 칠해져 있는 검은 배경이다. 저자는 추상적인 ‘젊은이’의 개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또는 사회구조적인 관점에서 젊은이의 의미를 밝혀낸다.  

 어떠한 현상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젊은이 개인’의 문제라거나 ‘젊은이 특유’의 문제라고 속단하지 말고, 사회 구조의 실태와 변화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런 당연한 일부터 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또한 같은 맥락에서 사회적인 흐름에 주목하려는 노력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개인의 정체성과 문화적인 측면으로 귀결되는 경향이 짙은 ‘젊은이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로서 구조적으로 파악하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기도 하다.
<1장 ‘젊은이’의 탄생과 종언> 92page

 만약 대상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보다 그저 피상적인 현상에 대한 자신의 의미 부여의 비중이 높았다면 이 책을 두 번 읽지 않았을 것이다. 글 기술이 아니라 콘텐츠가 꽉 차 있다고 느끼게 한 것은 바로 책의 제1장이었다.


 나와 비슷한 또래가 이런 글과 생각을 엮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책은 나에게 좋은 자극을 주었다. 동시에 최근 한국과 일본, 양국의 관계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데, 지피지기의 일환으로 일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를 주었다. 더 나아가 젊은이를 이야기하는 이 책의 탄탄한 프로세스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 우리나라의 젊은이 세대를 발견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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