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출판사
편리를 추구하는 기술의 발달로 어제보다 더 여유 있는 삶을 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남은 시간마저도 스마트폰 반대 편 사람들에게 빼앗기고 있다. 불안한 미래에 대해 생각할 거리가 더 많아지고, 동시에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중심을 잡으려면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지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생각한다는 의미는 이런저런 물음을 통해 이제까지 누구도 던지지 않은 질문을 던져 낯선 가능성을 찾아내는 사유(思惟)와 엉킨 실타래를 조목조목 따져보면서 깊게 파고 들어가 보기도 하고 넓게 찾아보는 사색(思索)이다. 이런 사유와 사색의 결과 이전과는 다르게 사고(思考)할 수 있으며, 다른 사고가 다른 사상(思想)을 낳는 원동력이다. 결국 생각한다는 것은 이전에 파고들어가 보지 않았던 깊은 곳으로 내려가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기도 하고, 더 넓게 탐색하면서 결정적인 단서를 다른 각도와 방향에서 찾아보는 것이다. 즉 생각함(thinking)은 곧 깊고 넓게 찾아봄이다. 찾아봄은 넓게 둘러봄이며 깊게 파고듬이다. 생각함은 둘러보고 파고들면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캐물어보고 따져보는 과정이다. 생각함은 좌정관천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우물을 파되 넓게 파면서 굳게 닫힌 문을 열어보려는 호기심이자 궁금함이다.
유영만. 머니투데이 2011.08.29 <'생각함'을 생각해보자>에서
기업의 인재상이 답은 아니겠지만, 구글의 면접에서는 이 같은 질문을 한다고 말한다. "공항을 지으려면 어떻게 지어야 할까요?" 이는 면접자에게 참신한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도 해보지 않은(미래에도 해 볼 일 없는) 일을 해결하는데 어떤 태도와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이 사람이 과연 어디까지 생각하며 살고 있는 것인가를 보는 것이다.
구글이 채용 면접에서 유난히 엉뚱한 질문을 많이 던지는 것도 이 구글리니스를 측정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이렇게 물어봐요. ’ 공항을 지으려 합니다. 어떻게 지어야 할까요.‘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머릿속이 하얘지고 불편해지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눈이 반짝거리며 호기심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어요. ’ 국내선이에요, 국제선이에요? 어느 도시에 있는 공항이에요?‘ 애매한 문제가 떨어졌을 때 에너지가 생기는 사람이 있어요. 자기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거죠. 애매모호한 문제를 푸는 것에 자신이 있는 거예요.”
중앙일보 2018.10.08 <"구글도 5년 뒤는 몰라요. 중요한 건 방향성이죠" 구글코리아 HR 총괄이 전하는 미래 개척의 역량>에서
문제의 원인이나 현상의 원리, 또는 존재의 이유에 대해서 캐묻고 따지며 생각하는 학문을 우리는 철학이라 말한다. 우리의 일상과 가장 맞닿은 학문이지만, 안타깝게도 철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그렇지 못하다. 일부 지식인들만 향유하는 고상한 학문의 이미지라던지 또는 삶과는 동떨어져 취업에 아무 쓸모없는 학과명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어느 때보다 철학이 필요한 때이지만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누가 더 땀을 많이 흘렸느냐로 올림픽 메달의 색깔이 바뀌는 것처럼 문제의 해결방안을 생각하는데 얼마나 시간을 쏟았느냐, 다시 말해 어떤 질문까지 해결해보았는가로 결과물의 완성도가 달라진다. 나의 경우(기획자로서), 그것의 부족으로 인한 결과와 매일 마주하고 있다. 어제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부끄러움 때문에 그동안 힘 쏟은 결과물에 대해 움츠러든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다니 내가 성장했구나'라는 자위가 좀처럼 작동하질 않는다. 그러기엔 드러난 민낯이 꽤 형편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철학의 부재다.
이런 내 고민을 잘 아는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았다. newphilosopher 라는 철학 계간지다. 바뀌는 계절마다 한 번씩 좋은 생각 거리를 선물 보따리에서 풀어놓는다. 해당 주제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말과 글로 '당신은 이 것에 대해 얼마나 사유해보았는가.' 또는 '당신은 이것으로 어디까지 사색할 수 있는가'의 질문을 던진다. 발간되는 권마다 한 가지 주제를 갖는데. 넘기는 종이의 빳빳한 평량만큼이나 아주 무겁다.
시간_newphilosopher korea vol.6 <당신의 시간은 안녕하십니까?>
권력_newphilosopher korea vol.5 <일상이 권력에게 묻다>
놀이_newphilosopher korea vol.4 <워라벨의 시대, 잘 논다는 것>
정기 구독으로 몇 권을 읽어보았다. 관념적인 단어를 글로 풀어내 전달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고, 받아들이는 독자 또한 일시정지와 재생을 반복하며 읽어야 하기 때문에 책장을 술술 넘기기가 쉽지 않다. 다행히 다음 호가 나오려면 계절이 바뀌어야 하기 때문에 독자가 읽고 이해하는데 넉넉하게 여유를 준다.
더불어 잡지의 특성답게 주제에 대한 소재들이 다양하고 구성 또한 고전과 에세이, 비평과 인터뷰 등 다양한 종류의 글들로 풀어내기 때문에 읽는데 (속도는 지체되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한국 판은 창간되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편집 디자인은 다소 투박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각 호 별로 구분된 색의 집합이라던지 주제와 연결된 일러스트들 때문에 한 권 한 권 모두 모아 두고두고 소장하고 싶은 수집욕을 자극시킨다.
그렇게 newphilosopher 잡지가 나의 책 장에 수서 되는 수만큼 사색과 사유의 수준이 높아지길 희망한다. 내 개똥철학의 깊이와 디테일이 다른 이들의 통찰과 혜안에 도움이 된다면 얼마나 멋질까. 매 호마다 속표지 하단에 동일하게 적혀있는 헌사의 문구로 글을 갈음한다.
"For curious people looking for solutions to the fundamental issues faced by humankind"
(인류에게 당면한 본질적인 질문의 해결책을 찾는 호기심 많은(유별난) 사람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