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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재 Jun 02. 2019

안중근 평전

김삼웅 / 시대의창

 책을 펼칠 동기를 위해 굳이 정부 수립 100주년이라는 거대한 기념비를 가져오지 않아도 충분하다. 누군가의 일생이 담긴 두꺼운 일기장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책이다. 그것도 시대적 암운 속에서 자신의 소신을 뚜렷하게 펼쳤던 젊은이의 일대기라니. 바로 안중근 의사의 평전이다.  

<안중근 평전> 김삼웅, 시대의창

 이 책은 여순 감옥에서 그가 직접 저술한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을 비롯하여 주변인들의 그에 대한 평가와 해방 이후 연구가들의 고증을 더하여 다양한 관점으로 안중근의 생을 풀어가는 책이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 행을 결심한 것은 어디에서부터 기인한 것인지, 거사 이후에 일제의 탐문 속에서 그는 어떻게 의연할 수 있었는지 책을 읽다 보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의 면모와 업적 중에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부분은 사형을 언도받고 죽음을 기다리며 그가 보인 행동, 글을 썼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집필하는데 시간을 조금 더 확보하기 위해 항소권까지 포기한다. 죽음과 바꾸면서까지 그가 그토록 글로 남기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허가할 수 있다면 <동양평화론>이란 책을 한 권 저술하고 싶으니 사형 집행 날짜를 한 달 정도만 연기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찌 한 달뿐이겠습니까? 몇 달이 걸리더라도 특별히 허가하도록 할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나는 그에게 감사하고 돌아와 공소권을 포기했다. 

제10장 자서전과 <동양평화론> 등 집필 중에서 

 <동양평화론>은 그가 사형을 앞두고 남긴 두 번째 책이다. (안타깝게도 항소권을 포기하면 사형을 연기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사형이 앞당겨져 <동양평화론>은 미완의 책이 된다.) 그보다 먼저 완성한 첫 번째 책은 그의 전기 <안응칠역사> 라는 책이다. 죽음을 기다리면서 곰곰이 인생을 반추한 것이다.  

<안응칠역사> 안중근

 <안응칠역사>는 1909년 12월 13일에 작성하기 시작해 이듬해 3월 15일 탈고했다고 한다. 글로 자신의 행동을 서술하고 의미를 정리하며, 생각의 과정을 나열한다는 것은 꽤 지난하고 수고스러운 작업이다. 제정신에도 어려운 일인데, 영하 20도가 오르내리는 혹한의 냉실에서 혹독한 심문과 고초로 성한 곳이 없는 몸을 이끌고 일기를 쓰기 위해 한 글자 한 글자를 적어 내려 가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다.  

“자서전이란 자신을 드러내면서 자신을 위장하는 텍스트(필리프 르죈)”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사형 집행을 앞두고 안중근이 쓴 자서전 <안응칠 역사>는 일체의 가식이 들어 있지 않은 담담한 삶의 기록이다. 또 미완의 <동양평화론>은 한 세기를 뛰어넘는 시간과 동북아의 공간을 담아내는 현재형 미래의 가치를 담고 있다. 

제13장 순국, 죽어 천년을 가오리다 중에서 

 물론 안중근의 사상은 거사가 있기 전부터 확고하게 형성되었고, 그 신념이 용단을 불러온 것이다. 하지만 책을 집필한 순서를 비추어보아, 그의 사상이 온전하게 정립된 것은 여순 감옥에서 <안응칠역사>를 펴내면서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극한의 상황에서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묻고 대답하는 치열한 과정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했고, 그러면서 세상에 무엇을 남겨야 하는지에 도달하지 않았을까.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 즉 ‘소명’에 집중한 결과, <동양평화론> 저술을 시작한 것이다. 죽음조차 초연하면서 말이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자신의 성공의 비결을 말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connecting the dots”(연결된 점)이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삶을 표현한다. 과거의 자신을 아주 세밀하게 들여다보니, 수많은 시도와 실패들이 점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 점들이 어느 순간 선으로 이어지고 애플을 만든 자신과 이어져있더라라는 이야기다.  

 잡스의 이야기 겹쳐 보였던 것은 그 또한 자신의 삶을  잘 들여다보니 현재의 이유를 발견했기 때문인 듯하다. (안중근 의사의 숭고함과는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스티브 잡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태어난 날은 기억 못 해도 떠난 날을 기억하며 추모하는 사람 아닌가) 더불어 연설에서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는데, 우리말로 "간절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는 말이 적당할 것 같다. 자신의 삶의 이유를 발견한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삶의 원칙인 듯하다. 기인들의 삶은 관통하는지, Stay hungry Stay Foolish를 몸소 실천한 안중근 의사에 모습이 투영된다. 


 3월 26일 안중근 의사가 형장에 서는 날 비가 많이 왔다고 한다. 그의 고결한 생애와 순결한 죽음을 슬퍼한 것은 비단 사람들 뿐만은 아니었나 보다. 안타깝게도 그는 그렇게 떠났지만, 다행히도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남기고 갔다. 민족애와 인류애, 그리고 평화에 대한 생각들. 이에 더해 ‘당신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나는 어떤 점을 찍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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