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겐이치로/ 밝은 세상
우리는 어떤 일을 직업으로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이키가이라는 단어로 설명하는 온라인에 떠다니는 이미지를 하나 본 적이 있다.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돈 되는 일, 그리고 세상에 필요한 일. 이 네 가지 영역으로 이키가이를 정의한다. 평소 이 분야에 깊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다 보니, 관련 자료의 정보가 있을 때마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그림의 출처는 찾기 힘들었고 대신 서점에 '이키가이'라는 책이 있어, 찾아 냅다 읽어보았다. 물론 책을 다 읽은 후 알게 되었지만, 정작 본문에서는 위 그림과 같이 개념에 대한 딱 떨어지는 설명은 없었다. 대신 일본인들의 행복에 대한 철학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책을 읽고 다시 저 위의 그림을 보았을 때 그들의 정서를 조금 더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이며 보게 되었던 것 같다.
이키가이라는 단어를 풀이하자면 이키는 ‘삶’을 뜻하고 가이는 ‘가치’를 의미한다. 이를 조합하여 '사는 보람'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저자는 우리가 아침에 눈을 뜨는 이유를 이러한 이키가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없다면 찾아야 하는 것이고, 이키가이가 있는 삶이야말로 행복에 가까운 삶이라 말한다.
일본은 유독 노인의 비율이 높은 장수 국가다. 저자는 가장 중요한 비결을 이키가이로 꼽는다. 소소한 행복 추구하며 그것을 누리고 있는 이른바 ‘소확행'의 자세가 신체적, 물리적, 정신적 모든 면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터무니없는 주장은 아닌 것 같다. 토호구 의과대학 연구진들의 연구보고서 <이키가이가 있는 삶의 의미와 일본의 사망률> Ohsaki Study, Sone 외 (2008)를 근거로 위 주장을 뒷받침한다.
책은 이키가이를 실천하는 단계적으로 구체적인 방법을 여러 가지 실제 사례를 들어 친절하게 설명한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일본에 방문하면 들렀던 식당의 스시 장인 오노 지로, 만화의 대가인 미야자키 하야호 같은 실제 인물들 이야기, 이세 신궁이나 목욕 문화, 다례회, 코미케 등 일본의 고유문화 현상들을 풀며 이키가이의 방법을 제시한다. 이키가이가 발현되는 순서다.
1. 작은 일부터 시작하기
2. 자아를 내려놓기
3. 화합과 지속 가능성
4. 작은 일들에서 발견하는 기쁨
5. 현재에 충실하기
일본어로 과로사를 뜻하는 ‘카 로시’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이는 반대로 전 세계적으로 이키가이를 공감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일본 내에 일을 지나치게 많이 하다가 사망하는 사람의 높은 숫자와 최근 우리나라에서 ‘워라벨’, ‘소확행’ 같은 단어가 회자되고 있는 모습이 겹쳐진다. 이 같은 주제의 책이 서점의 가판대마다 베스트셀러로 수놓지 않던가. 삶의 균형과 소소한 행복을 말하는 이런 단어들은 개인과 사회의 필요하지만, 그것마저 여유 없고 초조하기만 하다. 다음 문제를 풀기 위해서 얼른 정답을 구해야 하는 것 마냥 부추기는 모양새가 반갑지만은 않다. 일시적인 유행처럼 반짝거리고 사라지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일에 대한 본인만의 기준과 원칙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꽤 지난했던 스타트업 시기의 수 년동안 '그것'의 필요성을 아주 절실히 느껴왔다. (돌이켜보면 성장의 주된 동력이었지만) 다양한 실패를 겪으면서 나와 조직을 힘들게 했던 것은 달성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아니었다. 바로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라는 생각이었다. 망망대해에서 정처 없이 부유하는 기분이 사람의 정신과 체력을 갉아먹는다. 다행히 좋은 동료들과 책의 도움으로 버틸 수 있었고, 그 터널을 조금씩 빠져나오면서 저기 멀리서 빛이 보일 때쯤, 이런 생각을 최대한 단순화시켜 내가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해서 정리했다. 개똥철학이겠지만 나 나름의 이키가이를 가지고 있다. 이런 (물론 이 터널은 꽤 긴 편이라 여전히 열심히 빠져나오는 중이이다.) 이 원칙은 훗날 처음 내 이름으로 책이 등장했을 때 저자 소개에 옮겨 적었다. 사실 책날개에 나에 대한 쓸 말도 많지 않아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 싶다'라는 다짐을 담아보았다.
첫째, 돌아오는 월요일이 기다려지는 일인가?
둘째, 새로운 무언가를 끊임없이 도모할 에너지가 생기는 일인가?
셋째,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일인가?
이키가이의 저자는 책의 마무리 즈음에 우리에게 동화로 잘 알려진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희곡 <파랑새>를 꺼낸다. 틸틸과 여동생 미틸이 파랑새를 찾아 떠나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실망한 채로 집에 돌아온다. 하지만 마치 쓰려면 없던 개똥처럼, 그렇게 찾으러 다닐 땐 보이지 않던 파랑새가 이미 집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책은 언제는 ‘이불 밖은 위험하고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라고 읽히고, 언제는 '행복은 늘 가까운 곳에 있다'라는 이야기로 읽기도 한다. 하지만 이키가이를 정리하며 이 책을 소개한 이유는 바로 행복을 위해서는 반드시 집부터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파랑새가 있었구나'를 발견하려면 넓은 세상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은 만나야 한다. 수많은 상황 속에 처해보고 또 깨져봐야 한다. 경험 속에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야만 작은 행복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만 초연하고 의연한 삶의 태도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의 뇌과학자, 모기 겐이치로의 책이다. 사실, '일본인이 정답이다'라는 태도가 태생적으로 불편하게 다가오는 민족의 한 사람으로서 '모든 문제의 해결 방식을 일본의 이키가이에서 출발해라’라는 교훈이 가끔 훈수처럼 들린다. 그런 마음을 살짝 누그러뜨리는 데에는 영상(참고: https://youtu.be/IA1biMRa9pw)을 보면 도움이 된다.
일찍이 동경대에서 물리학과 법학을 마스터하고 현재는 유명한 뇌과학자로 대학과 미디어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는 저자의 정보를 믿어보며 ‘뭐, 동네 약장수는 아니겠지’ 하고 잠시 봐주기로 한다. 책은 예쁘고 작고 가벼워 쉽게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