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이 책은 학창 시절 친구들과의 틀어진 관계를 회복해나가는 과정을 담은 30대 남자 회사원의 성장 이야기다. 아픔과 상실을 정면으로 부딪혀 자아의 실체에 접근하고 회복하기 시작한다. 다소 힘겨운 주제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특유의 음침하고 산뜻한 필력이 독자로부터 페이지를 쉽게 넘기게 한다.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는 갑자기 어느 날부터 영문도 모른 채 자신에게 돌아선 친구 4명으로 인해 인생이 달라졌다. 그 이유를 자신의 개성과 매력이 없기 때문이라 스스로 정답을 내리고 이로 인해 언제부터인가 대인에 대한 기피와 무기력이 깊게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런 인생의 굴레에서 당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지만, 작가는 주인공의 유일한 취미인 '기차역 관찰하기’와 볼테르의 인용구(p.69 사고란 수염 같은 것이다. 성장하기 전에는 나오지 않는다.)로 이후 400페이지 너머의 해갈의 결말을 암시한다.
지금 기차가 출발해버려도 괜찮다. 조금만 기다리면 다음 차가 도착한다. 기차 시간표를 가지고 있고 지금이 몇 시인지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과 상황 인식을 통해 자라는 것이 사고(思考)이며, 더 나은 자신을 만드는데 필요한 재료다.
경제학에서 통계를 내는 관점에는 스톡(Stock)과 플로우(Flow)가 있다. '난 돈이 굉장히 많다'라는 의미를 두 가지로 나눠 본다면 스톡은 저량(貯量)의 개념으로 일정 시점. 예를 들면 오늘 내 통장에 찍혀있는 잔고를 의미하는 것이고, 플로 우은 유량(流量)의 개념으로 올해 동안 벌어들인 소득이 많다는 일정 기간의 관점이다. (내가 이해를 잘한 것이라면) 요리를 하기 위해 당근에 칼을 내려친 단면이 스톡이고 전체 당근 한 개가 플로우다. 나는 굉장히 불량한 경제학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두 개의 용어만은 머릿속에 관념으로 남아 무언가를 판단할 때 어떤 척도로 작용한다.
설명을 덧붙이면 국가의 경제 지표로 이 두 가지 관점에 모두 필요한데, 스톡은 연중이나 분기별로 외환 보유액이나 통화량 등을 파악할 때 활용하고, 플로우는 일정 기간 동안의 수출입액이나 생산량 등을 산출하는 관점이다. 이 여러 가지 경제 지표들을 한데 놓고 분석해야 현재 우리나라의 정확한 경제 상태를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다.
갑자기 소설과 아무 관련 없는 경제학의 개념을 꺼낸 이유는 개인을 바라보는 관점도 마찬가지로 이 두 가지 모두를 적절히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특히 스스로를 평가할 때 이런 기준은 건강한 시각으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항상 자라고 있다는 플로우를 이해해야 한다. 생장은 멈췄더라도 성장은 끝이 없다. 성장은 삶에 대한 의연함을 갖게 한다. 이런 플로우의 관점으로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야’라는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뜬 구름 같은 기대감만으로는 너무나 막연하다. 이와 더불어 반드시 이 시점의 나에 대해 정확하게 직시하는 것도 스톡의 관점도 함께 있어야 한다. 무엇이 우선인지 두 가지 순서의 관점은 사람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상황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함께 냉정한 자아 탐색이 반드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