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세요

교육용 보드게임 제작 이야기_인터뷰게임

by 이민재

intro_선배와의 대화


최근 한 선배와 만나 근황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선배의 ‘이직'이 주된 소재였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은 이야기가 있다. 몇 달 전 어느 외국 기업으로부터 좋은 제안이 있었다고 한다. 이 기업이 본격적인 한국 시장 진출을 위해 국내에 사무소를 오픈하려고 하는데, 그곳을 총괄하는 현지인 직원을 뽑는 자리였다. 이를 위해 일본 지사의 일본인 임원이 일대일 면접을 진행했다고 한다. 서로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진행했고, 해당 산업의 다소 어려운 전문 용어들을 써가는 통에 면접의 난항이 있었지만, 자신의 경험을 잘 섞어 대답했고, 나름 만족했다고 한다. 그런데 며칠 후 중개인을 통해 탈락의 메시지를 들어야 했다. 그 이유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질문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이 지긋한 일본인 임원이 이야기하는 아쉬운 점은 그것 하나였다고 한다. 그가 생각했을 때 분명 한국의 이 젊은이는 자신의 회사에 대해 잘 모를 텐데, 더욱이 본인들의 재료와 상품들도 익숙지 않을 텐데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인상 하나가 중요한 판단을 결정지은 것이다. 물론 이 선배의 항변도 일리는 있다. 통상 면접이라고 하면, 대답 속에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것저것 캐묻는 태도가 공격적으로 보일 수도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 노신사의 첨언이 가관이다.


내 말을 끊고, 중간중간 질문을 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intro_G20 정상회담 오바마 연설


우리는 질문하지 않는다. 안 하다 보니 못한다. 질문하는 것이 직업인 ‘기자’들도 어려워한다. 그렇게 벌어진 유명한 해프닝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G20 정상회담 폐회식 때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다. 한국인 것을 감안하며 폐회식에 모인 많은 기자들 중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 발언권을 준다. 하지만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다. 이 정적을 깨고 중국 기자가 아시아를 대표해 질문한다고 하고, 오바마는 잠시 기다려보자고 하며 중국 기자와 서로 실랑이를 벌인다. “no takers?" 재차 한국인을 찾는 이 장면을 보고 얼굴이 화끈해진다면 분명 한국인이다.

EBS 다큐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 >

큰 연설장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도 경험했듯이) 많은 학생들이 질문을 해야 하는 수업 시간에 질문하지 못한다. 아래 이미지는 학생들도 수업에서 위의 영상을 보여주고, 왜 기자들이 질문하지 못했을까 물어보면 으레 대답하는 답이다. 기자들의 모습에서 자신들을 투영했으리라 생각한다.


질문이 필요한 이유에는 무엇이 있을까? 수십만 가지의 이유가 있겠지만 아주 당연하고 그래서 아주 고루할 수 있는 이유들로 줄여 정리해보고자 한다.

질문이 필요한 이유(1) 인식


첫째, 질문은 개념을 명확화 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지하는 과정 속에서 그것이 아는 것인지 혹은 모르는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 수많은 정보 탐색과 교환 속에 우린 늘 질문하고 있다.

혹, 제 글에 이렇게 질문하시는 건 아니겠죠?

뭐든 그렇듯이 문제가 되는 부분은 애매한 경계에서다. 미국 대통령 이름은 잘 아는데, 프랑스 대통령은 긴가민가 하는 것 말이다. 이때,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능력'과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을 깨닫는 능력'이 발휘되어야 한다. 이를 가리켜 메타인지라고 한다. 이 같은 능력을 향상하는 데에도 질문이 중요하다. 스스로 해당 개념과 의미 뒤에 물음표를 붙여보는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유대인의 수업 방식인 하브루타는 두 사람이 짝을 이루어 서로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게 만든다. 개념에 대해 더 명확해지고, 이해도가 깊어질 뿐만 아니라 기억에 오래 남기까지 한다. 질문은 이해_理解로 가는 길 중간중간 세우는 푯말의 역할을 한다. ‘인식’이라는 목적지로 가게 하는 중요한 도구다.


질문이 필요한 이유(2) 호기심


그 과정은 반복적이다. 때문에 질문이 익숙지 않다면 굉장히 고될 것이다. 게다가 넘실대는 정보의 바다에서 힘들게 세웠던 푯말들은 의미 없는 부표가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습관적이고 능동적인 질문의 태도는 개념의 해체와 재배열이 가득한 급변하는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자세다. 많은 사람들이 창의를 부르짖는 시대 아닌가. 질문은 창의력의 원천인 호기심의 현시_顯示이다. 만약 질문하지 않는다면 순간 불었던 호기심일지라도 마치 오래전 피웠던 연기처럼 스멀스멀 사라질 것이다. 이 것이 질문이 필요한 두 번째 이유이다.


무엇이든 질문하라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무엇이든 질문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바로 호기심 아닐까. 이런 관성 속에 발생한 호기심으로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이룬 사람은 아인슈타인만이 아닐 것이다.


질문이 필요한 이유(3) 가치관


질문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이다. 이를 위한 자원은 ‘경험’과 ‘지식' 뿐이다. 결국 스스로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거울을 보며 머리를 손질하고 옷매무새를 다듬듯이, 질문은 자신의 행동과 사고의 프레임이 되어 자기 판단의 기준이 된다.

이 것이 과연 올바른가?
나는 행복한가?"


그래서 질문에는 가치관이 작동한다 할 수 있다.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는 저서 <프레임>을 통해 “평소에 자주 던지는 질문이 인생을 평가하는 주된 프레임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아래는 이를 뒷받침하는 재밌는 심리학 실험이다. 내용을 요약해본다.

A-1 당신은 요즘 얼마나 행복하신가요?
A-2 당신은 지난달에 데이트를 몇 번 했나요?

데이트 횟수와 행복 사이에는 약 0.1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데이트 빈도가 행복에 영향을 끼치지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는 결과였다.

B-1 당신은 지난달에 데이트를 몇 번 했나요?
B-2 당신은 요즘 얼마나 행복하신가요?

순서를 바꾸었더니 행복과 데이트 사이의 상관관계가 0.6으로 높게 나타났다. 행복에 미치는 데이트의 힘은 크다고 할 수 있다. 질문의 내용뿐 아니라 질문의 순서도 중요한 이유는 앞의 질문이 뒤에 나오는 질문을 해석하는 프레임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를 판단하기 직전에 던진 질문이 내 인생을 평가하는 주된 프레임이 된다는 사실이다.

자기 삶에 대한 평가가 시시하다면 내가 시시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답이 안 나오는 인생을 살고 있다면, 질문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무언가 더 나은 답을 찾고 싶은 사람은 세상을 향해 던지고 있는 질문부터 점검해야 한다.

<프레임,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최동철, 21세기북스 p.43-44


지혜의 핵심은 올바른 질문을 할 줄 아는 것이다(존 사이먼)

나 또한 부단히 노력 중이다. 지금 이 순간, 정말 약간이라도 내 삶과 일 속에 보람을 느끼며 열정적으로 살고 있다면 아마 예전부터 세웠던 질문 덕분일 것이다. 이 세 가지 질문은 나에게 행동의 수칙이 되어, 조금이라도 지켜보려고 애를 쓰게 만든다. 그 결과 아래 사진에서의 3가지 질문에 어설프게나마 답을 하며 살아간다. 이 것이 일의 동력이자 이유이다.

답하기 위해 아웅다웅 노력하는 정도다. 선언이기도 하다

질문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 <인터뷰게임>


질문의 방도는 무엇일까. 뾰족한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질문이라는 행위에 즐거움을 느끼고 과정을 익숙하게 만드는 방법뿐. 그런 고민을 안고 기획을 시작했던 콘텐츠가 바로 <인터뷰게임>이었다. 수많은 질문 속에서 좋은 질문, 적절한 질문 구별할 수 있도록 학습자들이 질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하였다.

인터뷰게임 구성품

사전 활동인 '스피드 Q&A'라는 게임과 본 활동인 ‘인터뷰 게임’으로 진행된다. '스피드 Q&A'는 해당 주제어에 대한 질문을 플레이어들이 한 방향으로 돌아가며 서로에게 질문하고, 답변하는 게임이다. 이 과정에서 처음 같은 수량으로 나눠가진 6종의 의문사 카드들을 활용하여 질문하는데, 자신의 수중에 같은 의문사 3장이 모여있을 때 내려놓을 수 있다. 모두 내려놓으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질문이 오고 가는 경험을 제공한다.


익숙한 질문도 규칙을 태우면 대부분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특별히 이 게임을 잘하는 사람들, 즉 질문을 어렵지 않게 하는 사람들의 패턴을 보면 재밌는 공통된 현상이 있는데, 바로 후속 질문_Follow-up questions을 잘한다는 것이다. ‘스피드Q&A’ 이름처럼 빠르게 묻고 대답해야 하는데 후속 질문은 엄청난 생각이나 준비가 필요 없기 때문에 바로바로 질문이 가능하다. 질문을 받는 사람도 상대방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는지 성실하고 풍성한 답변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끔 투머치 토커가 있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모래시계도 주요 구성품 중 하나다.)


스피드 Q&A 튜토리얼 이미지

두 번째 ‘인터뷰게임’은 출제자가 제시한 답을 질문자가 질문을 하며 추리해가는 게임이다. 모두에게 친숙한 놀이인 ‘스무고개'가 모티브가 되었다. 특별한 구성이라면, 정답을 맞히고 찬스 토큰을 가장 많이 획득한 사람이 이기는 승리 조건에 있다. 이 찬스 토큰을 얻는 방법이 게임의 의도를 건들기 때문이다.


질문자는 자신의 차례에 제시어를 맞추기 위해 필요한 질문을 한다. 이때 출제자는 그에 대한 답변을 메모 시트에 적어서 전달한다. 다시 말해 해당 질문의 답은 질문자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이 답변이 궁금하다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찬스 토큰을 지불하여 해당 답을 공유받을 수 있다. 단서를 찬스 토큰으로 구매하는 것이다.


또 정답을 맞힌 플레이어도 게임이 끝날 때까지 자신의 차례에 질문을 해야 하는데, 이 플레이어의 질문에 모두 귀를 기울인다.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궁금한 다른 플레이어들은 역시 찬스 토큰과 답변을 교환하여 자신의 추리에 더해야 한다.

인터뷰게임 튜토리얼 이미지


답을 맞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앞서 말한 대로 답을 찾아가는데 유효한 질문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좋은 질문이 무엇인지는 정의 내릴 수 없지만, 그때마다 가장 알맞거나 뾰족한 질문이 좋은 질문이자 필요한 질문일 것이다. 그것을 게임이라는 몰입의 과정 속에서 경험하게 하는 것이 이 게임의 기획 의도이다. 사회적인 공감의 정도가 깊은 까닭에 <인터뷰게임>은 2018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원사업에 당당히 선정되어 제품화되어 현재 많은 학교 현장에서 수업의 교구로 사용되고 있다.


글을 마치며


비루한 글이지만 감사를 전하고 싶다. 인터뷰게임을 만드는 과정 역시 많은 사람들과의 수많은 질문 속에 만들어졌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의미 있는 대화를 만들어준 팀 원들과 수개월 동안의 질문에 대한 깊은 토론을 함께 해주신 생각수업연구소의 김성경 소장님께도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