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성을 빼앗긴 사진에 남은 것

회화에게서 앗아온 기록성을 상실한 '사진'의 예술

by 이민용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은 사진에 있어 근사한 곳으로의 출사와 좋은 카메라, 좋은 모델만이 좋은 사진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바치는 글입니다.

이 글에는 문자 외 자료를 첨부하지 않았습니다.

사진의 화려함에 글에 대한 집중력을 잃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분명 지루할 수 있습니다.

(글이 매우 공격적입니다.)



상실

기록성을 무기 삼아 회화와 대등하게 섰던 사진은

그 특수성을 상실했다.

2007년 아이폰이 세상에 나오고 이제는 스마트폰 카메라가 일반 디지털카메라보다 화소수가 높아졌으며(센서 크기는 차이가 아직 크지만)

컴팩트 카메라는 점점 발전해 손가락 세 개만 써도 높은 퀄리티의 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이제 사진작가가 아니더라도 기록을 목적으로 하는 사진은 모든 사람이 촬영할 수 있다.

사진작가는 일반 대중, 피사체와

자신을 어떻게 분리해야 할까.


대중성과 진입장벽

구도, 노출, 필름 카메라 물론 공부할 것이 많고 전문적인 분야는 맞다.

그러나 컴퓨터 그래픽만큼 회화만큼 어려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리개와 셔터스피드의 원리를 제대로 알고 있으면

누구나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사진이 어려워 보이는 이유는 회화보다 덜 대중적이기 때문이다.

그림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은 널렸고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은 이미 많다. 집 앞 상가에 가면 취미미술학원부터 입시미술학원, 아동미술학원과 성인미술학원이 널려있다.


아동사진학원이 있나? 아니다.

초등학생도 대충 셔터스피드를 짧게 주면 사진이 어두워지고 조리개값을 낮추면 밝아지며 감도를 높이면 밝아진다는 걸 알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아카데미에서 배우고 가르칠 정도로 난도 있지 않다.


사진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노출값을 조정하는 일은 피아노를 조율하는 것처럼 어려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을 조금만 배우면

노출을 조정하는 일은 금방 능숙해질 수 있다.

사진은 상업사진이 아닌 이상 예술까지의 과정이 회화보다 짧다.

사진은 더 이상 기술로서 전문적인 직업을 요구하지 않는다. 누구나 카메라를 들면 사진작가이며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당연히 여기서 말하는 사진에는 컴퓨터와 보정, 필름 현상에 관한 전문지식을 포함하지 않는다.

이들은 분명 다른 장르로서 사진을 꾸며줄 뿐 '사진'은 아니다.


구별성

그렇다면 사진은 전문적인 '현대 예술'이 될 수 없는가.

물론 될 수 있다. 이미 예술로 실천하는 선두적인 사진작가는 존재한다.

사진은 기술로서의 전문성과 길은 잃어버렸기에 이제는 예술로서의 길이 남았다.

설명하기 위해 미술사를 예시로 활용하자면,

튜브 물감이 발명되고 천적 필름 카메라가 발명되며 전문적이고 기록 중심적이었던 회화는 멸종했다.

누구나 자신의 집 앞마당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가족을 그림이 아닌 사진으로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회화가 죽지는 않았다. 회화는 낭만주의부터 인상파 야수파 입체파 개념 미술 등 예술로 진화해 갔다.


사진의 현 상황과 유사해 보이지 않는가.

사진은 스마트폰의 발달과 사진의 대중화라는 큰 천적을 만났다. 기록의 예술적 가치는 이제 사라졌다.

현대의 사진은 기록을 위한 사진과 예술을 위한 사진을 더욱 확고하게 구분해야 한다.

이제 현대 예술을 위한 사진작가는 일출을 찍기 위해 동해로 가고 자연을 찍기 위해 해외로 나가기보다 내면과 사진 밖 세상을 들여다봐야 할 때이다.

이제 일차원적인 시각적 쾌락으로 사진을 예술에 포함하기에는 더 이상 기록의 사진은 예술적이지 않다.

유화로 아주 잘 그린 인물화는 취미로 하는 직장인도 그릴 수 있고 대학교수도 그릴 수 있으며 유명 미술작가도, 무명 미술작가도 그릴 수 있다. 잘 그린 인물화는 이제는 예술작품이라고 하기 어렵다.

사진도 이와 마찬가지다.

현실의 한 장면을 단순히 '포획'하듯 낚아챈 사진은 이제 예술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에는 당연히 누구나 그림 그릴 수 있고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러나 감상자를 매혹하는 그림은 아무나 그릴 수 없고 끌려온 감상자를 감동시키는 사진은 아무나 촬영할 수 없다. 예술은 감상자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전문업종이다.

자신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자신이 사회를 보며 무엇을 느끼는지 정말 현대미술 작가처럼, 수필작가처럼 사진에 접근해야 할 때이다.



사진은 포켓몬 잡듯 풍경을 포획하는 예술이 아니다. (더 이상은)

가끔 유명한 사진 스팟이라는 곳에 벌 때처럼 모여 텀블러보다 큰 렌즈를 끼워 판화처럼 찍어낸 사진을 볼 때 참 많은 생각을 한다.

물론 행위 자체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멋진 자연을 자신의 카메라에 담는 것 만으로 만족을 느낀다면 오히려 장려한다.

하지만 그런 똑같은 사진들을 내걸며 예술가라는 호칭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사진가들을 정말 예술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첫 단추

미술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그 첫 시작은 보통 실패로 끝난다. 첫걸음을 내디딘 작가는 대부분 죽음 이후에 빛을 본다.

사진도 그런 개척자가 필요하다. 대중에게 큰 울림을 줄 예술가가 필요하다. 장르 내부에서만 화제가 되고 시드는 마이너 한 예술보다 이제는 대중 예술이 되어야 한다.

미술과 사진은 그 궤를 같이 한다. 사진에도 대중에게 알려진 정립된 사조가 필요하고 사조를 대표하는 유명한 예술가가 필요하다.

형태를 뚫고 나와 입체파가 되고 캔버스를 뚫고 나와 개념미술이 된 것처럼 현재 사진에는 새로운 시도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사진은 새로운 시도가 어렵다. 카메라라는 특수한 장치를 통해서만 사진작업을 할 수 있고 현실에 존재해야 촬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개념을 촬영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필요하다. 추상적 촬영이 언젠가는 사진 예술의 장르가 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궤도

회화, 입체미술, 사진은 모두 시각예술이라는 하나의 궤도에서 공전한다.

사진은 이제 미술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며 서로 천적의 관계도 아니다.

사진도 회화처럼 점점 진화해야 할 단계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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