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미술 갱단 '다다이즘'

카페에서 깐 전 세계적 노가리에서 현대미술까지

by 이민용

제목과 소제목 그대로 다다이즘이라는 미술 사조는 스위스 취리히의 한 카페에서 시작된 사조이다.

정말로 '동네 갱'이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여기서 갱은 범죄 무리가 아닌 친구들의 모임을 의미한다.

(카바레 볼테르 현재와 과거)


카바레 볼테르

모든 것이 시작된 공간이다.

1916년 독일 출신 작가 휴고 발이 스위스 취리히에 '카바레 볼테르'라는 주점을 열었고,

프랑스 출신 시인 트리스탕 차라와 독일 출신 시인 리하르트 휠젠베크, 프랑스 출신 조각가 장 아르프 등등을 불러 카바레 볼테르에서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휴고 발, 리하르트 휠젠베크, 장 아르프, 라울 하우스만, 트리스탕 차라)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전쟁을 겪어 반 정도 정신이 나간 사람들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전쟁 때문에 피난 온 가난한 난민 예술가들이 우울증에 걸리기는커녕 주점에 모여 잡담이나 하며 술을 마셨으니까.


취리히 다다

누가 뭐라 한들 그때 저들이 한 잡담이 다다이즘이다.

카바레 볼테르에 모인 예술가들은 기존 형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실험했다. 이들은 예술을 유연하게 확장하는데 노력했고 이는 모든 파생 다다이즘의 근간이 된다.


이렇게 휴고 발의 카바레 볼테르를 중심으로 한 유연한 초기 미술 운동을 '취리히 다다'라고 부른다.

(장 아르프&소피 토이버 아르프 Duo Collage, 마르셀 얀코)
(리하르트 휠젠베크, 에미 헤닝스 Visonary Portrait)



이후 취리히에 모인 예술가들은 카바레 볼테르라는 기억을 안고 자국으로 돌아간다.

다다를 시작한 이들에게 자국의 세계대전 후 혼란스러운 분위기와 기존 예술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자국으로 돌아온 취리히 다다의 예술가들은 반예술 반전쟁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다다이즘을 자국에 퍼뜨리기 시작한다.


휠젠베크와 하우스만은 독일로, 장 아르프와 그의 아내 소피 토이버 아르프, 트리스탕 차라는 프랑스로 마르셀 얀코는 루마니아로 이동하며 취리히 다다는 작은 미술운동에서 세계적 사조의 성격을 띠기 시작한다.


세계적 다다

전 세계적이기에 주요 국가들의 다다만 간략히 소개하자면,

독일의 베를린 다다, 프랑스 파리 다다, 미국의 뉴욕 다다는 대중에게 흔히 알려진 다다이즘이다.

세계적 다다로 자율성에 익숙해진 예술가들은 다다를 진화 시켜 개념미술, 현대미술로 완성시킨다.


독일

"예술은 죽었다. 다다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잿더미가 된 도시, 타국의 경제적 압박은 독일 국민을 가난하게 만들었고

안정된 정부의 부재는 독일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다다이스트들은 독일의 혼란을 먹고 자란 듯 과격하고 폭력적인 다다를 실천 한다. 사회를 비판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독설가가 되어 새로운 예술을 주장했다.


휠젠베크는 베를린으로 돌아와 베를린 다다를 결성한 후 예술이 혁명이 되어야 한다며 정치적 혁명과 예술을 합성하였고

존 하트필드, 조지 그로스, 한나 회흐 등은 예술을 정치적 선전 도구로 활용하며 베를린 다다를 이어 나간다.

(한나 회흐 Cut With the Kitchen Knife Dada Through the Last Weimar Beer-Belly Cultural Epoch in Germany)

(한나 회흐의 위 작품은 한글로 번역하면 '부엌칼로 도려낸 다다, 마지막 바이마르의 맥주 배(똥배) 문화시대'로 다다이즘을 통해 바이마르 공화국의 남성중심주의, 고정관념을 깨뜨리려 했다.)


포토몽타주와 선전, 선언이 주를 이룬 베를린 다다는 반예술, 반전쟁이라는 다다이즘의 기본적인 입장을 가장 확실하고 적극적으로 밀어붙인다.


파리

독일의 다다가 행동으로 보여주는 거칠고 적극적인 다 다였다면 파리의 다다는 그 성격은 비슷하지만

조금 더 지적이고 언어적이라는 특징에서 베를린 다다와 차이를 보인다.


취리히에서 파리로 돌아온 장 아르프는 앙드레 브르통이라는 시인을 만나 파리 다다를 전개 한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시를 쓰고 연극을 하며 기존 문학의 형식을 파괴한다.

고전 방식을 탈피한 그들은 '카페 세르티'라는 카페를 중심으로 파리 다다를 전개 한다.

(앙드레 브르통)

앙드레 브르통이 창시한 유명한 기법이 바로 '자동기술법'이다. 물론 브르통 이전에도 무의식에 펜을 맡기는 작가는 있었지만 명칭을 바로잡고 본격적으로 활용한 시인은 브르통이다.


이렇게 고전을 탈피한 파리 다다는 초현실주의와 고전 예술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뉴욕

미국의 뉴욕 다다는 과장을 조금 보태서 한 명의 예술가를 소개하기 위해 글에 포함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마르셀 뒤샹'이다.

레디 메이드(ready-made)를 아는가

현대 미술에서 사용되는 '오브제'라는 단어는

이 인간이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미술을 모르는 사람도 미술을 욕할 때 소변기를 미술관에 갔다 놓은 게 무슨 미술이냐!라고 욕할 정도니 얼마나 상징적인지는 모두가 알 것이다.

그래도 욕할 거면 조금이라도 알고 욕하자.


고전과 현대의 징검다리 역할로서의 다다

마르셀 뒤샹은 다다이즘과 개념미술 범주에 모두 들어간다.(다다이즘이 개념미술과 유사하지만)

개념미술을 전개하며 다다이스트들과 교류했기 때문이다.

고전 미술은 메시지보다는 회화, 표현에 치중된 예술이지만 뒤샹은 미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주목하여 '개념 미술'을 전개한다.


작품 없이도 미술이 될 수 있을까?

쓰레기도 작품이 될 수 있는 것인가?

개념이 작품보다 큰가?

작품이 범주를 벗어날 수 있는가?


에 대한 고민은 현대미술에 큰 과제이며 뒤샹이 현재의 미술가들에게 준 숙제이다.


사조의 개인화 다원주의

그리고 덧붙이자면 현대미술이 난해하고 어렵다는

생각의 시작이 마르셀 뒤샹이다.

미술 전공생들은 이 인간만 아니었다면..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마르셀 뒤샹 덕분에

'사조의 개인화'가 현대에 더욱 활발해졌다고 생각한다.

현대미술은 개개인의 미술 작가가 각자의 사조를 가지고 활동한다.

다원주의는 현대미술에 있어 근간이자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과제이다.

(데미안 허스트)

시간 날 때 미술관에 가보자.

입체파부터 다다이즘, 다원주의까지 고전 미술사와는 다른 유연하고 느슨한 현대미술의 역사를 맛보며

미술 작가 각자의 사조를 발견하고 뒤샹에게 감사해 보면 어떨까.

(아니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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