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 6-대를 잇는 자(2)>
파란 하늘에 그림 같은 구름들을 보며 오늘 저녁은 뭘 먹을까, 냉장고에 뭐가 남았더라. 하고 있는데 뒤쪽 골목에서 두 여자가 홱 나왔다. 중년 부인은 작고 야리야리한 여자의 손목을 질질 끌면서 강제로 어디론가 데리고 가고 있었다. 아니, 아무리 엄마라지만 딸을 그렇게 다루시면 어떡합니까? 그 딸내미, 나이도 많아 보이는데.
“너 진짜 엄마 말 안 들을 거야?!”
“어머님,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제발요!”
“뭘 알아서 한다는 거야? 알아서 한 게 3년이야! 집안 대를 끊어 먹으려고 작정을 한 거야?”
아. 고부였구나. 그래. 친엄마가 저러지는 않겠지. 쯧쯧. 무슨 일로 저러나 궁금하긴 했지만, 이미 고부갈등의 극치를 본 뒤라서 그런가. 이미 내 관심은 끊어졌다.
아니, 잠깐만. 저 사람들... 설마...?
나는 속으로 제발! 제발! 하고 외치며 그들이 가는 방향을 계속 바라보았다. 여자는 애원하다시피 매달리면서 어떻게든 안 끌려가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시모의 힘이 엄청난 건지 속절없이 질질 끌려갔다. 시모는 우악스럽게 며느리를 끌고 골목으로 들어섰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아니야... 아니야...
아니긴. 역시나 호은당이었다. 나는 담배를 문 채 어슬렁어슬렁 걸음을 옮겼다. 그럼 그렇지. 내 팔자에 휴식은 무슨. 에이.
내가 들어섰을 때, 이미 두 여자와 은미 씨가 상담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접시에 남은 생크림을 싹싹 긁어먹는 연화 선녀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뭐래?”
“자식이 없어. 저 아줌마는 손주 못 봐. 저 여자는 시집 잘 못 왔고.”
아니, 저 두 사람 신점을 보라는 게 아니잖아, 이 꼬맹아.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히 설명이 됐다. 또 자식 보게 해 달라는 사람들이겠지. 제일 많은 유형의 손님이다. 자식 점지 해 달라, 아들을 낳게 해 달라, 딸인데 아들로 바뀌게 해 달라. 말도 안 되는 손님들이 꽤 많은데, 대부분 연화 선녀가 보내는 손님들이다. 저 사람들은 연화 선녀의 손님이 아닌 것 같았지만.
“네 짓이지?”
“아니. 나한테 못 와, 저 언니는. 그 정도 능력 없어. 어디서 주워듣고 왔겠지.”
도대체 너한테 가서 점보고 소개받아서 올 정도면 돈을 얼마나 퍼부어야 하는 거냐? 저 사람들도 명품을 아주 그냥 휘감았던데. 연화 선녀는 전혀 관심 없다는 듯 말끔해진 접시를 내밀었다.
“오빠, 나 하나만 더 해주면 안 될까?”
“그만 처먹어. 저녁 못 먹어.”
나는 접시를 빼앗아 주방으로 들어갔다. 찻물을 올려두고 차통이 가득한 찬장을 열고 뭘 꺼내나 고민하는데 은미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잽싸게 밖으로 달려 나갔다. 대청에 은미 씨가 나와 있었다.
“소사님, 국화차로 부탁드립니다. 다과는 없어도 돼요.”
“네, 약사님.”
약과 관련한 일을 할 때만 약사, 소사라는 호칭을 쓰기로 무언의 약속이 된 덕분인지, 소사라는 호칭으로 나를 불러도, 또 내가 약사라고 은미 씨를 불러도 이제는 어색하지 않았다. 은미 씨는 묘하게 굳은 얼굴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분위기가... 좀 이상한가? 아무래도 검증되지 않은 손님이라 그런 걸까.
나는 말린 국화꽃이 든 하얀 통을 열고 새하얀 도자기 잔을 꺼냈다. 적당히 데워진 물로 잔과 주전자를 데우고, 국화꽃을 담았다. 다이또에서 산 하얀 쟁반에 찻잔과 찻주전자를 챙겨 담은 뒤 상담실로 들어갔다. 은미 씨는 상당히 곤란한 얼굴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찻잔과 주전자를 상 위에 올려두고 밖으로 나왔다. 아. 궁금한데.
마당에 손님이 있을 때는 엿들을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문을 꼭 닫고 나오니 대청의 어르신들이 나를 붙잡았다. 인싸그램을 보여주시며 어서 팔로우 해! 하시는 바람에 나는 웃고 말았다. 그 자리에서 어르신 두 분과 맞팔을 하고 나서야 나는 대청을 내려올 수 있었다.
“오빠, 오늘 저녁에 뭐 먹어?”
연화 선녀는 주방까지 따라와 기웃거렸다. 아니, 저 둘은 뱃속에 거지라도 들어앉았나. 방금 먹고 돌아섰는데 또 먹을 걸 찾아? 워메. 징한거.
“야. 너 방금 와플 먹었거든? 뭐 벌써 저녁 타령이야?”
“아, 왜. 오빠 월급날이잖아. 안 쏴?”
“널 쏘고 싶다. 진심.”
“어머. 사랑의 총이라면 사양하지 않을게.”
“너 손님 안 받냐? 가라, 좀. 법당인지 뭔지도 좀 닦고. 선녀님 화내시겠다.”
나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연화 선녀는 만두가 어쩌고 저쩌고 하며 나갔다.
은미 씨가 상담실로 들어간 뒤, 젊은 커플은 와플 맛있게 잘 먹었다며 인싸그램 아이디를 알려 달라 하더니 팔로우하고 갔다. 와. 인싸그램으로 홍보 좀 해야겠네. 얼마 뒤, 단골 직장인들도 돌아가고 대청에는 어르신들만 남아 있었다.
“어르신들, 수박 좀 드릴까요?”
“박 소사, 그거 우리더러 지금 가라는 소리지?”
“앗! 독심술이라도 하시는 겁니까. 하하하. 장난입니다. 단 걸 드셨으니 입가심 좀 하시라고요.”
“아이고, 됐네. 수박이라면 질리게 먹었으니. 우리도 슬슬 갈 테니 수고하시게.”
어르신들은 내가 소사라는 직함을 받았다는 소리를 듣고 호탕하게 웃으시더니 말투가 변했다. 소사라면 어지간한 장차관 급이라면서 함부로 하면 안 된다며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노비 근성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요즘의 소사는 모임이나 기관에서 잡무를 보는 사람을 칭한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
나는 어르신들의 신발을 가지런히 돌려놓고, 디딤돌로 내려서는 어르신들을 부축해 드렸다. 처음엔 싫어하시더니 요즘은 잡아 달라고 싱글싱글 웃으며 먼저 팔을 내미신다. 소사를 부리니 왕이 된 것 같다 하시더니, 아무래도 재미를 붙인 것 같았다. 진짜 노비가 되고 있다.
손님들이 한꺼번에 나가고 호은당의 마당은 썰렁해졌다. 연화 선녀가 어디 갔나 두리번거리는데, 사랑채 지붕 위로 부연 구름이 흩어지고 있었다. 어우, 저 골초. 저러다 골로 가지.
나는 비워진 자리들을 차근차근 정리하며 상담실 쪽으로 귀를 쫑긋 기울였다. 뭔가 들릴 듯 말 듯, 감질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