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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니 Nov 30. 2020

약방 호은당

<에피소드 15-고향 가는 길(2)>




 전기충격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굴러 떨어진 나는 바닥에서 나와 함께 나뒹구는 전화기를 들고 미친 듯이 달렸다.


 “으으으으, 은미, 은미...!! 차, 차에!! 귀시이이인!!!!”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나는 비명을 질러댔다. 은미 씨는 진정하라며 꽥꽥 소리를 질렀지만 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미친놈 쳐다보듯 보는 시선도 모르겠다. 나는 그저 차에 귀신! 차에 귀신! 하는 말만 반복해서 외쳤다.


 -정우 씨! 정신 차려요! 정신 차리고 설명해 봐요!


 “으허엉! 시발, 저거 뭔데! 뭐길래 고향 가는 길까지 따라오고 지랄이냐고요! 어엉! 미치겠다, 진짜! 내가 뭔 잘못을 했다고! 어떻게 좀 해 줘요! 어허엉!!”


 나는 휴게소 계단에 푹 퍼져 앉은 채 엉엉 울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나는 전화기를 귀에 꼭 댄 채 울기만 했다. 미치겠다. 나 여기서 꼼짝도 못 하겠다. 수화기에 대고 울기만 했더니 은미 씨는 답답했는지 연화가 전화를 받았다.


 -아빠, 걔 봤어? 어떻게 생겼어? 무슨 말했어?


 “어엉. 크흡. 아무, 아무 말도 안 했고... 눈, 눈 뻥... 으허엉... 눈깔 없고! 입 쫙 찢어지고! 시발! 개 무서워! 심장마비로 뒤지는 줄 알았다고! 벨트 매려고 고개 숙이는데! 시발, 그게 얼굴만 쭉 내밀어서 쳐다보고 웃잖아! 피떡 얼굴이! 으허엉! 연화야! 진짜 무서워 뒤지겠다! 연화야아아! 어떻게 좀 해 봐!!”


 -그래? 울 아빠 인기 많네.


 “야! 아빠가 무서워서 사망하시겠다는데 농담이 나와!! 저거 어떻게 좀 해 봐아악!!!”


 -근데 차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더구나 그거 은미 언니 차야. 안에 함부로 못 타. 아빠가 태워준 거 아니면.


 “야! 내가 미쳤다고 귀신을 차에 태...!! 어?”


 -... 아이고, 등신. 또 오지랖 발동했네. 이젠 그 오지랖으로 귀신도 태워줘? 등신아, 등신아. 어이고. 천하에 아빠 같은 등신 또 없을 거다. 아빠가 태워 줬으니 목적지까지 잘 데려다줘! 바보인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네. 어우, 드응신.


 뚝. 연화는 전화를 끊어 버렸고 나는 끊어진 전화기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끊어진 전화기가 대답할 리는 없다. 잔뜩 모여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너튜버야? 미친 사람인가? 어디서 몰래카메라 뭐 그런 거 해? 귀신이 있대! 휴게소에 귀신? 여기 귀신 있겠지! 으스스하다! 멀리 가자! 저 차람 차 뭐야? 빨리 차 옮겨!

 아니, 귀신이 내 차에 탄 것도 억울하고 무서워 뒤지겠는데, 산 사람들도 날 멀리해? 너무한 거 아닙니까? 도와주지는 못 할망정! 하긴. 나라도 도와줄 방법은 없지만...


 사실, 아까 차에서 잘 때 꿈을 꿨었다. 웬 예쁘장하게 생긴 젊은 여자가 문을 똑똑 두드렸다. 창문을 내리고 왜 그러냐 물었더니, 차가 고장이 났는데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차에 대해서 잘 모르기도 하거니와 귀찮은 일에 얽히기 싫은 마음이 더 커서 보험회사를 부르는 편이 좋을 거라고 대꾸했었다. 여자는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보험사에서 지금 바로 못 온대요.라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우물쭈물하다 앞에 보이는 주유소를 가리켰다. 저기에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고속도로 휴게소의 주유소에는 대부분 간단한 정비는 봐주니까. 하지만 여자는 이미 차를 저기 맡겨 두었단다. 아니, 그럼 뭐 어쩌라고!!

 멀뚱하게 쳐다보고 있으니, 여자가 한참을 뜸 들이다 말했다. 어디로 가냐고. 성주로 간다고 했더니 여자는 대뜸 자기도 태워 줄 수 있냐고 그랬다. 어디 가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대구에 간단다. 십 년 만에 고향에 가는데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다면서, 제발 부탁한다며 간절하게 빌었다. 뭐, 그래. 대구라면 조금만 둘러도 된다. 낯선 사람을 차에 태우기는 좀 불편했지만, 눈물까지 뚝뚝 흘리며 부탁하는데 거절하기도 뭣하고. 나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차만 안 밀리면, 두세 시간 정도면 대구에 도착할 거니까. 말동무도 하고 괜찮겠지. 여자는 환하게 웃으며 가방을 가지고 온다며 후다닥 달려 멀어졌고, 나는 잠에서 깨어났었다.


 “아오! 이 병신! 귀신을 태워!! 내가 미친놈이지!”


 나는 내 머리를 잡아 뜯고, 퍽퍽 때리며 절규했다. 주변에 모인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저기... 괜찮으세요...?”


 아까 내게 라이터를 빌려줬던 남자다. 나는 새집이 된 머리를 하고 일어나,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괜찮습니다. 제가 등신이라서... 시끄러우셨다면 죄송합니다...”


 나는 벌게진 얼굴로 주변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좀 민망하긴 해도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흩어지니까. 어쩌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내 간절한 시선은 모두가 외면했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라이터를 빌려 줬던 남자도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멀어졌다. 하... 한국 사람들 착하다는 거 취소. 귀신이 차에 있다는데 도와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결론은, 나는 내 손으로 귀신을 차에 태운 거다. 결국 나는 저 귀신을 차에 태우고, 귀신과 함께 두 시간 남짓 달려, 내 여정과는 다른 대구에 들러, 저 귀신을 모셔다 드리고 나서야 집으로 갈 수 있다는 거다. 와! 씨! 미치겠다! 나는 꼼짝없이 달리는 차 안에 귀신과 단 둘이 있어야 한다! 두 시간 이상을! 고향 가는 이 즐거운 길을! 귀신과 함께 가야 한다고! 시발! 죽어라! 박정우! 이 등신 새끼!


 이제 어떻게 귀신을 데려다 주나. 한참을 계단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톡 쳤다. 나는 화들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죄, 죄송해요!”


 풀쩍 뛰며 돌아보니, 아까 차 문이 열려있을 때 살폈던 그 사람이었다. 그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캔 커피 하나를 내밀고 있었다.


 “이, 그... 저... 토, 통화하시는 거 듣, 듣, 듣....”


 아, 그러니까... 아까 내 차 만졌으니까... 혹시 나한테 귀신 왔을까 봐 무섭다, 뭐 그런 얼굴인데... 맞죠?


 “저, 저, 저, 제가 차 만져서, 호, 호, 호, 혹, 혹시...”


 얼마나 떨어 대는지, 캔 커피 속 커피가 출렁거리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이미 진정되어서 대구의 어느 나들목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귀신 집은 어떻게 찾아 주는지, 대화는 어떻게 나누어야 할지 걱정하는 나와는 차원이 다른 반응이다. 그래.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지.


 “아니, 아니에요. 그런 귀신 아니고... 하.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그... 아무튼, 해 끼치는 귀신이 아니고... 고향에 데려다 달라고 왔어요. 제가 데리고 갈 테니까 걱정 마시고... 커피 고맙습니다. 귀신 줄게요.”


 남자는 귀신에게 커피를 주겠다는 내 말에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것처럼 벌벌 떨었다. 남자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괜히 미안했다. 농담은 아니었는데.


 “예, 예... 우, 우, 운전, 운전, 우운...”


 “예, 저도 조심할 테니 그, 아저씨도 운전 조심하세요. 떨지 마시고요. 정작 귀신 태우고 가는 사람은 전데 아저씨가 그렇게 떨면 어떡합니까? 커피, 아저씨 차엔 가지 말라고 하고 귀신 줄게요. 귀신은 제가 데리고 갈 테니 아저씨는 조심히 가시고,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어쨌거나 귀신, 제가 데리고 갑니다. 그러니 걱정 마세요. 여전히 주변에서 기웃거리는 사람들이나 다 들으라고, 나는 큰 소리로 대답했다. 사람들이 눈에 띄게 안도하는 모습이 보였다. 도대체 저 놈은 무슨 색다른 미친놈이지? 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어깨가 털썩 내려왔다. 그래. 이렇게 된 거, 차라리 귀신 장난 몇 번 겪은 내가 하는 편이 낫지. 이제 와서 다른 차로 보내면 사고만 난다. 내가 그냥 고이 모시고 가자. 차는 튼튼하고... 연화가 나는 더 이상 사고 수도 없고 명도 길다고 했으니, 믿고 가보자.


 그나저나, 귀신 집은 어떻게 찾아주지? 물어보긴 해야 하는데... 걔는 대답 어떻게 하려나?


아! 씨! 목소리 무서우면 어떡해! 막 물건 저절로 움직이면 시발! 나 운전이고 뭐고 던지고 도망갈 거다! 으윽. 발이 무거워. 떨어지지 않는 발을 질질 끌며, 나는 어느새 왕따가 된 흰 차로 다가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안 봐도 알겠다.




 나는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운전석에 올랐다. 뒤는 절대 돌아보지 말자. 절대로. 절대, 절대로! 벨트를 채우면서도 나는 절대 허리를 숙이거나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부르릉. 시동이 걸리고 라이트도 환하게 밝아졌다. 사방이 환하다. 나는 또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하고 아까 그 아저씨가 준 캔 커피를 뒤로 휙 던졌다.


 “거, 저기. 뭐라고 해야 하나. 저, 아무튼. 내가 태워준다고 했으니까 대구까지 가긴 가겠는데... 놀라게 하지 말고 얌전히 있어. 요. 그, 커피는 저 어떤 아저씨가 줬는데, 내 건 있으니까 거... 그, 저기, 댁이 먹고. 알아서 따서 먹어. 요. 난 운전해야 하니까. 그리고 대구 갈 때까지 제발, 제발 얌전히 있어. 요. 나 겁 많아서 끽하면 댁이고 차고 뭐 다 버리고 도망갈 거니까. 그냥 얌전히 앉아 있어. 요. 잠을 자던지. 이따 대구 도착하면... 그... 어디로 가야 되는지... 와, 미치겠네!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이런다고 귀신이랑 대화가 되나? 아오! 이 태평양 오지라퍼! 시발! 진짜. 에라, 모르겠다! 간다. 가자! 귀신이라도 벨트는 해라!”


 나는 혼자 한참을 중얼거리다가 뒤늦게 뒤통수를 때리는 현타에 머리만 뜯었다. 아, 몰라! 대구 근처 가면 어떻게 또 되겠지! 일단 가자! 빨리 가서 빨리 내려주자! 아오! 진짜. 천하의 등신 새끼! 박정우 이 등신!

 나는 휴게소를 빠르게 빠져나왔고, 휴게소 안의 사람들의 시선도 이제는 떨어졌다. 컴컴한 고속도로를 달리며 나는 오직 앞만 보았다. 전방 주시 의무에 아주 충실했다. 규정 속도를 지키다가 가끔 과속도 하고, 뒤는 절대 보지 않았다. 룸미러도 홱 젖혀두고 쳐다보지 않았다. 오직 정면! 아니면 사이드 미러! 딱 그것만! 빨리 가자, 제발!!


 다행히 심야라서 그런지 차는 많지 않았다. 규정 속도만큼은 달릴 수 있었다. 이대로만 가면 한 시간 안에 대구에 도착할 것 같다. 스쳐 지나가는 초록색 표지판에 대구라는 하얀 글자가 선명하게 보였다. 56km라는 숫자에 나는 계기판을 확인했다. 한 시간 안에 가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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