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엄마가 되기 위해
나에게 딸이 생겼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하나 같이 환한 목소리로 축하한다고 말했다. 아들이었어도 축하한다고 말했겠지만 뉘앙스가 달랐을 거라 예상한다. 축하한다 뒤에 덧붙이는 말이, '딸이 최고야! 아들은 힘들어'였기 때문이다. 요즘 딸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만연한데(이런 분위기가 불편하기도 하다. 세상에 멋진 아들들도 많다) 난 내 뱃속의 아기가 딸이라는 걸 알았을 때 불안감이 먼저 엄습했다. 나 같은 딸이면 어떡하지.
난 누구보다 엄마를 많이 생각한다. 오빠가 떠나고 내가 떠나고 덜렁 혼자 큰 집에 남아 외로움을 삼키고 있을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잠은 잘 주무시는지, 끼니를 대충 때우시지는 않는지, 주변 사람들과 즐거운 추억을 잘 쌓고 계신지, 요즘 판단이 좀 느려지셨다는데 증상이 좀 나아지셨는지.
하지만 이렇게 효녀가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내 마음이 조금 잠잠해졌을 때 어쩌면 거의 서른이 다 되어 엄마를 생각하는 딸이 되었다. 그렇게나 큰 충격을 입어서야 비로소 엄마를 위하는 딸이 되었다는 건 창피하고 한탄스러운 일이다. 아빠는 딸의 효도 한 번 누리지 못하고 그렇게 떠나신 거니까.
학창 시절에는 엄마 속을 많이 썩였다. 머리가 나빴나 보다. 공부는 곧잘 했는데, 왜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재주는 이제야 얻게 됐을까. 밤늦게까지 싸돌아다니면서 엄마한테 연락도 안 하고 연락을 피하고 헛짓거리를 하고 다녔다. 누구는 어릴 때 못 놀아본 애들이 20대가 되면 그 아쉬움에 밖으로 싸돈다는데, 모두가 그런 것도 아니더라. 그러니까 굳이 10대를 그리 허투루 보내선 안 됐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딸내미가 날라리가 될까 두렵다는 게 아니다. 그런 유혹에 많이 노출되고 그런 사이 아이가 자신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놓칠까 봐, 혹여나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어 마음에 상처를 크게 입을까 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더 길게 갈 수 있는 인연을 놓칠까 봐 걱정된다는 말이다. 내가 딸이었기에 우리 딸도 나를 닮을까 봐 괜스레 불안하다. 그래서 전철을 밟지 않게 우리 딸에게 난 지혜를 주고 싶다. 굳건한 마음과 용기 그리고 깊이 생각할 수 있는 혜안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