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말을 건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쉽게 생각하면 쉬울 수 있겠지만, 진정한 위로를 전하고 싶다면 생각보다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그리고 때론 어떤 능력까지 필요하다는 결론에 가닿는다. 진심이 담긴 위로는 먼저, 상대방에게 나의 말이 스며들어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기를 기대하는 데서 시작한다(실제로 감정을 편안하게 해주었는가 와는 별개로). 그래서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하게 되고 이를 위해 우리는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기를 자청한다. 내가 상대가 겪은 일을 똑같이 경험했다고 상상하는 거다. 그러니까 단순히 말솜씨가 필요한 게 아니라 내가 그가 되어 보는 상상력과 상상 속에 빠져들어 감정까지 느껴보는 감정 추론력을 갖추어야 한다.
나이를 한 두 살 먹어가며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하는 상황을 이전보다 자주 마주한다. 더 엄숙한 위로, 진지한 위로가 요구된다. 사랑하는 사람을 영영 볼 수 없는 곳으로 보내는 사람들, 혹은 큰 병에 걸려 결국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해 자기 존엄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하나 둘 생긴다. 그가 내 옆에 없다면 그러니까 텍스트로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 때 나는 굉장히 오랜 시간을 들여 위로의 말을 적는다. 아직 내 위로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정말 이 세상에는 마땅한 위로의 단어가 없어서인지 나는 늘 "그 어떤 말로도 지금 당신을 위로할 순 없겠지만, "... 하고 서두를 띄운다.
그래서,
완전한 위로의 말을 찾는 건 어려우니까
가장 좋은 방법은 곁에 있어주는 거라고 결론을 내린다. 내가 얼마나 그와 마음을 함께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것, 옆에서 힘들어하는 그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내는 것. 그의 손을 잡고 같이 왕왕 울음을 터뜨려 내는 것.
더는 친구들이 밉지 않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위로의 말 한마디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어렸던 나의 친구들이 더는 밉지 않다. 그들은 몰랐던 것뿐이다. 나도 이제 와서 깨달은 것을, 그 어린 청년들에게도 별 수 없었다. 그리고 혼자 외로웠던 기억은 나를 위로할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시켰다. 아직 멀었고 한참 멀었지만 위로하고자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더, 잘, 위로하고 싶은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