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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경 Mar 20. 2021

어쩌다 보니 콜롬비아 산맥에 살게 됐다

결단력이 떨어지면 안 좋은 이유 하나: 어쩌다 보니 콜롬비아 산맥에 살게 되었다. 


캐라비안의 해를 마주어 보며, 빛나는 흰 돌이 지켜주는 계곡을 품은 시에라 네바다 산맥. 이 시국에도 해가 무심하게 쨍쨍한 이곳에 살지만, 그저 기쁘지만은 않다. 


삶이 엉키고 풀리고 하는 과정에 떠밀려서 여기에 있는 것 같은 언짢은 느낌 때문이다. 아무리 도덕책에서 나올법한 가치관으로 포장을 해봐도, 가만히 있다 문뜩 몽글몽글 스며 나오는 불안감은 나에게 말해주고 있다.


글을 쓰는 이유도, 내가 여기 존재해도 괜찮다는 것을 증명해보고자 하는 발버둥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저 지금 치는 수많은 발버둥들이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걷어차지 않았으면.




이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돌아가려면 몇 번의 전생은 거쳐야 할 것 같아, 오늘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는 하루의 시작을 어젯밤 꿈을 상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어제는 숨이 벅차오를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목이 뒤로 젖혀진 채로 꿈에서 깨어났다. 만년설로 뒤덮여 뾰족하게 솟아오른 산들 사이 중앙에서 피어난 호수는 너무 빛나고 성스러워서 이 세상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단만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호수 안에는 붉은 오로라가 물안에서 반짝이였으며 생명이 깃들어 움직였다. 하지만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호수는 다른 물체로 변하여 내가 원하는 바는 무심한 채 꿈의 다음 장면으로 이어져갔다.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는 만년설로 덮인 유명한 산봉우리들이 있다. 이곳 원주민분들에게도 성스럽고 영적인 중요한 장소 중 한 곳이다. 가보지도 않은 곳을 꿈에서 보았는지, 아니면 나의 마음속에 헤엄치는 무언가를 보았는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감정은 불쑥불쑥 예고 없이 찾아온다. 가끔, 나는 그저 가만히 앉아있는데, 나를 둘러싼 세상이 녹아내리는 느낌이 든다. 내가 그 자리에서 바라보고 있는 세상이 회용돌이에 빨려 삼켜지는 느낌. 그러곤 용암이 내 마음 한가운데에서 고요히 흘러나오는 느낌. 그럴 때면 나는 이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이해하려다 지쳐 서글퍼진다. 


하지만, 그가 그랬다. 사실 회용돌이 안에서 가장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은 그 정중앙, 회용돌이의 눈이라고. 내가 아는 세상이 무너지고 휩싸여 삼켜지는 동안 나는 여태껏 그래 왔었던 것처럼 그저 바라만 보아도 괜찮다고. 


나에게는 이제 그 회용돌이의 정중앙에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자리 잡았다. 아니,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 내가 이 거친 회용돌이를 피해 머무를 수 있다고 허용해주었다. 




내가 여기에 왜 있는지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나선형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것처럼, 이제는 너무 많이 생각을 해서 무어라 단정 지을 수 없다. 하지만 나의 오늘의 선택도 이곳에 머무는 것이다. 나의 산맥이전에 삶에서는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는 용기를 의지했는데, 지금은 머무를 수 있을 때 머무르는 용기를 내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중에서는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대반인 것을 받아들이기 싫어도 받아들이는 게 마음이 편하다. 내가 콜롬비아 산맥에서의 삶을 선택한 이유가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까닭은, 그것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참 알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은 곧 좋은 나침판이 된다. 내가 생각으로 가 아닌 마음을 따라왔다는 증표이니. 


결단력이 떨어지면 좋은 이유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니 마음을 따라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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