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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경 May 11. 2022

내 몸, 내 마음 가는 대로

진정한 안정감, 찾지 말고 받아들이기  

콜롬비아 외딴 바닷가 마을 팔로미노에 온 지 1년 7개월, 모래시계가 한 줌 흘러간다.


이 시간 동안 마음고생을 꽤나 했다.


더위.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나의 몸은 더우면 에어컨, 추우면 난방에, 불편함 없는 편안함에 익숙하여 이곳 열대 더위와 습기에 적응하는 데에 쉽지 않았다. 농장일 하며 땀을 비 솟아지듯 뻘뻘 흘리는 거나, 오토바이 사기 전 마을에서 걸어 다닐 때 느꼈던 찜통더위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정글과 이곳에서 살면서 자주 느끼는 바는 몸이 편안하면, 마음이 힘들고, 몸이 불편하면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이다. 물론 명확한 흑백은 아니지만, 실제로 몸이 불편하면 그것에 집중해 통상 마음을 힘들게 하는 불안, 두려움, 외로움, 인간관계에 중요성을 덜 쓰는 것 같아 마음이 조금은 덜 힘든 것 같다.


캐라비안 문화.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알지 못했지만 살면서 알게 된 사실은 이 지역은 콜롬비아에서도 제일 부패가 심한 곳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사실이면 나는 세계에서 가장 부패가 심한 곳 중 한 곳에서 살고 있는 샘이다. 오늘만 해도 평소에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마을학교에서도 오늘 수업이 취소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콜롬비아 북쪽 지역을 장악하는 불법 무장 단체의 테러에 대비해 오늘 하루 종일 학교, 상점, 식당 등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사실 크게 놀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세상은 참 희한하게도 부패와 폭력이 난무하는 곳에서 마음이 열여 있고 좋은 사람이 많이 산다는 것이다. 삶을 바라보는 시각은 내가 결정할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


그리고 그중 가장 힘들었던 인간관계. 농장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는 지인들과 1년 반 동안 한집에 같이 살면서 힘든 성장 과정이 많이 있었다. 서로 소통 방식과 비전에 다름에 마음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긴 마음고생 후 지금은 점차 많은 긍정적 변화들이 찾아오고 있는 중이다. 지인들은 이제 옆집에 살아, 항상 타인과 함께 있어서 불편하였던 공간이 이제 온전히 우리만의 공간이 되자 자연스레 우리만의 바운더리가 생겼다.  


파트너 관계 안에서도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의식적으로 챙기고 있어 그만큼 마음에 여유가 생겨났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마시는 차 한잔. 내 마음을 바라보는 명상 그리고 요가. 마을학교에서 아이들과 나누는 배움 공간. 자연과 연결하는 정원 가꾸기. 끈기 있게 실천하려는 운동. 이 모든 것이 나의 몸, 나의 마음에 큰 안정을 심어주고 있다.


 그리고 나와 나의 파트너는 우리가 살았던 집을 사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공간에서 나만의 "자리"를 잡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온몸이 지쳐갈 차에 때마침 찾아온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선물은 나의 몸과 마음을 챙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지혜를 배워갈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눈밖의 시선에서 나의 "자리"를 찾는 것은 어렵지만, 나의 몸과 마음을 정성스래 챙기는 것이 나의 뿌리를 굳건하게 해주고 있다.


픔 없는 성장은 없다. 몸과 마음이 힘들었던 지난 1년 반이 지금 나의 뿌리를 강하게 해주는 빠질 수 없는 밑거름이 되어준 샘이다. "지나고 나면 보인다."는 힘든 시기에 나의 시크릿 만트라였다. 정말로 시간이 지나니 어려운 시간들이 지금의 어떤 힘으로 재탄생하였는지 보인다.


집을 사는 과정이 마무리되면, 집수리를 하고 이곳을 렌트할 생각이다. 지금의 비전은 반년은 이곳에서 자연에서 살면서 정원을 가꾸고, 반년 한국이나 외국에서 일을 하거나 마음수련을 할 생각이다. 정해진 틀에 살았을 때에는 무의식적으로 나 자신과 미래에 대해서 불안함을 지니고 살았다. 그 틀을 벗어나기에 많은 성장과정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틀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난 후, 지금 현재의 새로운 삶을 맞이하면서 오는 안정감은 정말 큰 힘이 된다. 이 안정감은 물질적인 요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믿는 힘이 투영되어 비춰 보이는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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