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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경 Nov 02. 2023

바다에 떠내려간 안경에게

글을 쓰는 이유

한 달 전부터 시작된 우기는 낮에 뜨겁게 지진 땅을 밤이면 다. 열이 쌓이고 쌓이면 미세한 자극에도 주체할 수 없이 정이 터져 눈물이 쏟아 나오듯이, 하늘은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끝을 모르게 울고 있다.

                                           ***

며칠 전 필립과 일출을 보러 새벽 바다 수영에 나섰다. 이른 시간이라 아직 어두운 바닷가는 고요하였고, 우기에만 누릴 수 있는 새벽 바다는 잔잔하였다.

"조금 걸을래?" 누가 먼저 말했는지, 누가 대답하였는지 모르게, 우리는 말없이 모래 위를 걸었다. 평소보다 조금 더 걸어간 지점에서 자리를 잡고, 필립이 새벽부터 준비해 온 따듯한 카카오를 머그잔에 따라주었다. 자연에서 김이 나고 온기를 품고 있는 무언가를 마시는 것은 삶의 숨겨진 최고 호화스러운 행위 중 하나일 것이다.

이에 우리는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후, 나는 바다 안에서 일출을 보려 평소와 다르게 안경을 쓰고 바다 물속으로 들어갔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니나 다를까, 소중한 안경을 바다가 데려가 버렸다.

상황을 인지할 틈도 없이 원하지 않게 갑자기 세상이 흐릿해지자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서러움에 휩싸여 그 자리에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훌쩍훌쩍 이 아니라 엉엉. 흔들리는 파도, 쏟아지는 눈물에 더 북받쳐 소리 내어 울었다.


꼭 이렇게 울 수 있기만을 기다린 아이처럼.


한참을  뒤 바다에서 나와 모래 위에 쭈그려 앉았다. 마음은 가벼웠고 시원했다. 왠지 바다에 떠내려간 안경이 원래 그런 숙명을 타고 나에게 왔다가 떠나 것만 같았다.


                                               ***


나에게 글쓰기란 주체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인지할 수 있도록 비추어 주는 빛이다. 내면의 세계로 연결해 주는 통로이며, 나의 마음을 투영할 수 있는 거울이다. 비밀을 공유하는 친구이며, 사랑을 속삭임을 전달하는 저이며, 좋을 때보다 미울 때가 많은 가족이다.


글을 쓰는 수많은 이유 중에서, 진정한 이유는 아마 더 높은 세계에 잠재 있어 나는 아직도 그를 알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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