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유독 지치고 힘이 드는 날.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시험기간이라 잠을 거의 못 자서,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그래서 버스의 빈자리를 발견하자마자 빠르게 자리를 차지했다. 드디어 살 것 같았다. 이제야 여유가 생겨 자연스럽게 바깥의 풍경을 바라봤다. 하루 종일 책상에 붙어있다가 오랜만에 마주한 바깥은 햇살로 찬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햇살을 맞으니 바로 잠에 들 것만 같은 기분이었지만, 잠이 든다면 정류장을 지나칠 것이 분명했다.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시험이 두 과목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그 생각만 해도 눈을 붙일 수 없었다. 어깨를 누르는 무거운 가방을 느끼며 잠에 들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했다. 그렇게 창 밖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한 학교까지 절반쯤 갔을까,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버스에 탔다. 그러던 중, 바라보던 창을 통해서 한 머리가 하얗게 세신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차마 자리에서 바로 일어날 자신이 없었다. 단순히 몸이 피곤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 순간 '아, 이렇게 피곤한데 내가 오히려 저 할머니보다 사회적 약자가 아닐까?'라는 못난 자기 합리화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냥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세며 한번 숨을 크게 내뱉었다.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그리고는 조용히 일어났다. 할머니는 차마 웃으면서 자리를 양보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학생. 가방 무거워 보이는데 내가 들어줄게요. 가방은 나한테 줘요."
라며 몇 번이나 고마움을 표시하셨다. 그 다정한 말에, 잠깐 떠올랐던 못난 내 생각이 더 부끄러워졌다. 결국은 지친 몸으로 30분은 서서 학교로 가게 되었지만 뿌듯했다. 힘들기는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불편한 마음으로 앉아있는 것보다는 가뿐한 마음으로 서있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날, 작은 실천을 했고 그보다 조금은 더 작은 마음의 변화를 겪었다.
나는 이제 과거의 나보다 조금 더 빠르게 자리를 양보한다. 다른 사람보다 빠르게 자리를 양보한다고 말하지는 못한다. 내 안에는 '못난 나'가 있기 때문에, 아직도 가끔은 '하나, 둘. 셋'이라는 숨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의 작은 실천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누군가가 용기를 내서 먼저 실천하면, 나도 따라서 용기를 내는 순간이.
나도 내가 먼저 자리를 양보하면, 그걸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을 종종 보게 된다. 하물며 ‘숨을 하나, 둘, 셋 세어야만 가능한 실천’조차 누군가의 용기를 보고 따라 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먼저 웃어주기’, ‘쓰레기 줍기’, ‘신호 잘 지키기’처럼 더 사소하고 흔한 실천은 어떨까. 누군가가, 아니 내가 먼저 하면 다른 사람도 그 실천 앞에서 조금은 덜 망설이고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사소한 실천이라도 망설이지 말고 먼저 시작해 보자. 그 실천은 나를 변화시키는 건 물론이고,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일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