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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조금씩은 틀려
완벽한 사람은 없어
실수투성이고 외로운 나를 봐
난 다시 태어난 것만 같아
그대를 만나고부터
그대 나의 초라한 마음을
받아준 순간부터 랄라라 릴라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질 거야
그대가 지켜보니
힘을 내야지 행복해져야지
뒤뜰에 핀 꽃들처럼
오래된 아이폰의 줄 이어폰에서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오면 천을 물들일 물을 끓이기 시작한다. 보통 작업을 할 때는 8~90년대 음악을 듣는다. 김현철이나 김광석, 이상은 혹은 유재하의 음악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과거로 회귀하는 매개체들에는 이상하고 대단한 힘이 깃들어있다. 그런 점에서 옛날 음악과 천연염색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의 음악을 트는 순간 이어폰 너머로 왠지 조금 덜 선명한 음의 질감이 느껴지고 느릿한 통기타 소리와 함께 은유적이면서도 직관적인 노랫말이 마음을 동요하게 한다. 사랑을 말할 땐 강수지의 보랏빛 향기가 가슴을 설레게 하고 이별과 인생을 말할 땐 김광석의 담담하게 한 음 한 음 삼키듯 절절한 목소리가 나를 돌아보게 한다. 이 음악들은 어떻게 그 당시 없던 나를 이렇게 애달프게 하는가. 염색할 때의 나도 마찬가지다. 단지 아름다운 이 결과물에만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작업을 하면서 쉽고 빠른 화학염료 같은 건 없었을 그 시대로 돌아가 고운 옷을 짓는 수백 년 전의 여인들로 돌아가곤 한다. 말려두었던 자연재료들을 꺼내어 천에 아름다운 색을 적시던 시간과 서서히 사라져 세월의 한 페이지로 고이 접혀있을 그때까지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럴 땐 마음이 막 정련한 천처럼 깨끗하고 순수해지며 경건해지어 앞으로의 일들은 잊어버리곤 한다. 지금 나의 현실, 재정상태, 친구나 가족과의 관계, 먹고사는 문제 뭐 그런 것들.
쉬운 것이 좋다. 글도 음식도 그림도 사람도 음악도. 쉬운 것은 시시한 것이 아니라 내게 곧 단순하면서도 가장 순수한 어느 지점을 말한다. 껍데기로 꾸미지 않아 그 존재만으로 아름답게 나에게 다가오는 것들. 이상은의 비밀의 화원이 그렇다. 새벽에는 보통 침체되어 외로운 시간을 지나는데, 하루의 덖은 감정들을 적어 내린 후 잠에 들어 아침에 깨끗한 마음으로 비밀의 화원을 듣는다. 향기 나는 연필로 쓴 일기, 음표가 되어 태양 속을 나는 새, 민트향의 아침 하늘빛, 실수투성이에 외로운 나, 완벽한 사람 없이 누구나 조금씩은 틀린 세상, 사랑하는 그대 덕분에 꿈을 꾸게 되는 나. 아름다운 단어로 엮어진 이 쉬운 노래는 아침의 나를 살아가게 한다. 또 무섭고 무거운 문제들을 마주해 불필요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가라앉히고 쉽게 바라보기로 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문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가게 된다.
오랫동안 살았던 작은 아파트 주변에는 산을 깎아 만든 도서관과 거기에 딸린 작은 공원이 있고 돌아가면 큰 과수원으로 이어지는 산행길이 있다. 염색이 하고 싶은 만큼 식물을 사자니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산책 겸 산행길에서 필요한 만큼 채취하기로 하고 작은 에코백과 가위를 챙겼다. 염색이 잘 되는 식물은 대부분 조금 단단하고 형태가 온전하며 너무 얇지 않은 것들이다. 도통 본 적 없는 식물들을 채취해 작업실로 향했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화는 벌레도 붙어있고 형태도 제멋대로지만 터프하고 멋진 모습 그대로가 아름다워 좋다. 조금 까다로웠지만 나름대로 은은하고 자유로운 색감을 보여준다. 염색을 마친 후엔 항상 과거로부터 온 것을 현재의 내가 어느 작은 곳에서 유지하고 있다는 것에 작게나마 쉬운 감사를 표한다. 내일도 여전히 나의 비밀의 화원을 꾸려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