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이, 좋아요.

by 이나라




혼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7살부터였다. 엄마는 일찍이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에 머리를 박고 있는 나를 아파트 주변에 있는 작은 빌라 2층 미술학원으로 데려갔다. 처음 본 선생님은 사고로 팔 한쪽이 없는 분이셨다. 7살 어린 내 눈에, 오직 한 손과 허벅지를 이용해 창처럼 뾰족한 연필을 깎고 절반쯤 굳어버린 물감을 짜서 고흐보다 훨씬 멋진 최고의 그림을 그려내는 선생님은 나만의 우상이었다. 선생님한테서는 항상 유치원 뒤뜰에 피는 새콤달콤하고 하얀 꽃냄새가 났다. 그 빛깔을 닮은 하얀 피부에 내려앉은 옅은 주황빛 주근깨와 비너스 석고상을 닮은 오똑한 코, 어깨까지 내려오는 곱실거리는 나무줄기색 머리카락이 참 어여뻤다. 미술학원에서 선생님은 나의 두 번째 엄마나 다름없었다. 빠른 년생으로 들어가 또래보다 몸집도 작고 커다란 눈만 꿈뻑꿈뻑 뜨는 수줍음이 많은 여자아이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소변을 참지 못해 실례를 할 때도, 보이는 대로 표현했을 뿐인데 가슴과 근육, 성기를 표현한 그림을 보고 또래 친구들이 놀려댈 때도 선생님은 친구들이 없는 곳에서 나를 안아주시며 말씀하셨다.



"나라는 언젠가 멋진 화가가 될 거야. 어떤 아이가 이렇게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니?"

"다음부턴 쉬야가 마려우면 선생님한테 귓속말해. 아무도 듣지 못하게. 괜찮아."



선생님에게는 꽤 오랫동안 그림을 배웠다. 선생님이 좋을 때마다 그녀의 짧은 팔 한쪽에 코를 부볐다. 그럴 때면 어느새 선생님 같은 어른이 되어있을 것 같았다. 어느덧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다른 학원에 가야 할 때 엄마와 떨어지는 것처럼 많이 울었다. 못 알아듣는 꼬부랑 글씨의 다른 나라 말이나 어려운 컴퓨터 따윈 아무래도 괜찮았다. 그걸로는 세상의 어떤 것도 자유롭게 상상할 수 없었다. 그냥 선생님에게 꼭 붙어서 달큰한 꽃향기를 맡으며 나의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고 싶었다. 하지만 10살도 채 안된 어린아이에게 장래희망에 대한 의견과 생각이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가볍게 지나가는 뜬 구름 같은 것이었다. 나는 곧 논술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더이상은 거기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하릴없이 그림을 그만둔 그 이후로 고등학생 때까지는 간간히 취미로만 나무, 꽃, 풀, 구름같은 걸 그렸다. 손재주가 조금 있는 청소년이 그렇듯, 학급 게시판 꾸미기에 그림 파트를 맡거나 미술부에 가입하거나 흉내 내어 그린 그림에 친구들이 몰려든다던가 그림대회에서 간간히 우승하는 정도였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던 고등학생 어느 학년의 여름방학, 하루는 그날의 선생님 꿈을 꾸었다. 나는 어쩐지 솜털이 보송보송한 유치원생이었고 선생님의 따스한 품과 물감 냄새가 났다. 아직도 생생한 하얀 빛깔 그 꿈은 여전히 그 세계로 데려간다. 그래서 그림 앞에서는 항상 아이가 되어버리고 만다. '나는, 그림이, 좋아요.'





IMG_7043.JPG 30cm x 30cm, digital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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