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의 미학

by 이나라




어릴 적부터 몸집에 비해 손이 컸다. 손목은 가는데 손만 덜렁덜렁 크니 왠지 진화가 덜 되어 원숭이에 가까운 인류 같기도 하고 가느다란 가지에 달린 오동나무잎 같기도 한 것이 어린 시절부터 하도 놀림을 받아 아무렇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다. 다만, 그 나이의 소녀가 그렇듯 어린 마음에 큰 손을 조금 숨기고 싶어 손톱 밑 살이 드러날 만큼 깨끗하게 자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후로는 손톱을 깎는 일이 확실한 일상의 규칙으로 자리 잡게 됐다. 짧은 시간 안에 더 많이 더 빨리 더 잘 그려야 했기에 길어져버린 손톱은 걸리적거리기만 하고 차라리 제발 영원히 더 이상 자라지 않았으면, 하는 골칫덩어리에 가까웠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재수하던 20살까지 물감과 흑연에 물든 손가락은 광산에서 아주 대단한 것을 캐냈을 것처럼 시커먼 색이었는데 손톱까지 기른다면 이 손이 어떤 중요한 기능을 하든지 간에 더 보기 싫어질 터였다. 손톱에 대한 집착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붉은 살을 아래에 둔 손톱을 지나 어느 경계에 다다라 하얀 초승달 같은 모습으로 잘라내도 아프지 않은 정도로 자라난 손톱은 0.1mm의 오차도 없이 깎아냈다.


10대가 지나 문득 친구들의 손톱을 살펴보니 화려한 파츠나 반짝거리는 젤 네일로 꾸며져 있었다. 호기심이 일었고 화려한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름 예쁜 것도 있었다. sns를 켜 가장 가까운 곳의 네일숍을 예약했다. 뭐가 좋은지도 모른 채 일단 가장 무난한 디자인을 선택하고 어정쩡하게 다른 사람에게 손을 맡긴 채 어색한 1시간을 견뎌냈다. 큐티클이 없어지고 하늘색으로 칠해진 조약돌 같은 손톱은 내 것 같지 않게 깔끔하고 예뻤다. 며칠이 지났다. 처음으로 손톱이 조금 자랐다. 걸리적거렸지만 나쁘지 않았다. 며칠이 더 지났다. 네일이 지나간 자리는 다시 새로운 손톱이 자라고 있었고 손가락 중 몇 개는 반쯤 떨어져 나간 네일아트가 남아있었다. 강아지를 씻기고 요리를 하고 세수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노트북이나 펜으로 글을 쓰는 것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무뎌졌다. 어설프게나마 손톱이 손 대신할 일을 했다. 한 달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생각했다.


아, 괜히 했다.


생각이 들자마자 다시 예약을 하고 손톱을 바짝 깎았다. 손가락 끝으로 느껴지는 느낌이 반갑고 생생했다. 그 이후로는 손톱을 다시 기르지 않는다. 내게는 그림을 더 잘 그리고 싶었던 욕심이었고 다시 느낄 이 생생한 감각을 위한 기다림이었고 스스로를 돌본다는 관심이었던 초승달 열개를 오늘도 열심히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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