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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Sep 02. 2019

세상살이의 제1정석;나는 이세상의 주인공이다


엊그제 조카가 응급실에 실려 갔습니다. 자살을 하려고 수면제를 다량 먹은 모양입니다. 다행히 일찍 발견되어 큰 문제없이 치료를 받았습니다만, 그 아이는 이제 18세 그야말로 꽃다운 나이입니다.


험한 세상이라고 하고,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하고, 세상살이 정말 빡세다고 하고, 헬조선이라고도 하고 별의별 말이 많습니다. 물론 살다 보면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고 싶다’는 것과 실제로 ‘죽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입니다. 죽고 싶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각이고 금방 사라지는 것이지만, 죽는 것은 ‘레알’입니다. 그걸로 끝입니다.


“끝내고 싶었어요. 더 이상 이렇게 살기는 싫어요.”


이해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끝나버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한 목숨 끊어서 모든 것이 정리될 수만 있다면 그리 나쁘지 않은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살은 끝이 아닙니다. 더 나쁜 시작으로 이어집니다. 일찍 죽는 습관이 들어서, 어쩌면 하루살이 같은 것으로 수 천 년을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나빠지는 것이 싫다면 악착같이 버텨서, 무슨 수를 쓰던지 그럴듯한 마무리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세상살이의 제1 정석; 나는 이 세상의 주인공이다!


위로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각자는 각각 자기 인생의 주인공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자신이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드라마를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주인공이 아니라 엑스트라라구요? 엑스트라지만 주인공입니다. 엑스트라가 주인공인 드라마인 것입니다. 멋지고 그럴듯한 사람이 주인공인 뻔한 드라마가 아니라, 반전과 감동이 물결치는 깜짝 놀랄만한 드라마를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조카는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데, 아이유 같은 아이돌이 되었다면 좋아했을까요? 그런 바람도 약간 있겠지만, 사실은 그걸 원치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되어 불편하게 사느니 보다 적당히 유명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음악을 하며 살고 싶었을 겁니다. 그랬는데 약간 화살이 빗나가서 원하는 자리가 아닌 곳에 태어나고 자란 거지요. 그게 인생이고, 그게 사는 재미입니다. 인생이란 자기가 원하는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지금 나의 역할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대충 해버리면 안 됩니다. 내가 어떤 연기를 하느냐에 따라서 내 인생의 드라마가 달라집니다. 내 연기가 좋으면 드라마는 활기를 띠고 재미있어집니다. 주인공의 연기가 별로이면 그 드라마는 재미고 없고 시청률도 떨어집니다.


한동안 영화배우 하정우의 먹방이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실감 나고 푸짐하게 잘 먹었거든요. 어떤 역할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무얼 먹느냐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멋있게 먹느냐가 중요합니다. 하정우가 자신의 역할을 멋지게 소화해내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인생의 연 기를 멋지게 해낼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 인생 드라마가 재미있어집니다.


‘더블 롤(Double Role)’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연기를 할 때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해야 된다는 건데요, 한편으로 주어진 역할에 몰두하여 최선을 다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것에서 빠져나와 객관적으로 자신을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연기가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관객의 반응도 살피고, 내가 한 행동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살펴봐야 합니다. 지나친 몰입은 좋지 않습니다. 스포츠나 연기나 노래나 거의 모든 경우에 ‘힘 빼고’라는 충고를 많이 하는 것도 그런 뜻입니다. 지나친 힘, 욕심, 몰입은 착각의 결과입니다.


어떤 연기를 하느냐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입니다. 지금 고난의 순간을 지나고 있을 때, 나는 그 고난을 어떻게 표현해내는 게 좋을까요? 멋지게,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기발한 방법으로 극복해 낼 수도 있습니다. 또는 그 고난을 견디며 눈물 나는 아픔을 표현할 수도 있겠지요. 그 길은 여러 갈래 각자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드라마는 다음 단계,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제 막 고난의 드라마가 시작되는 중에 드라마가 끝나버렸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책임은 전적으로 끝나게 한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자살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식으로 책임을 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육도윤회의 악업에 들어 축생계나 아귀계로 태어날 수도 있고, 더 나쁘게는 지옥 불에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기억나지도 않고 믿어지지도 않겠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역할은 내가 선택한 것입니다. 지금의 나를 긍정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힘이 빠집니다. 욕심이 놓아집니다. ‘더블 롤’이 됩니다. 지금 이 상황을 내가 어떻게 연기하고 싶은지 나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그렇게 연기하다 보면 새로운 상황이 전개됩니다. 포기하면 안 됩니다!


조카는 퇴원을 했습니다. 다시 자신의 생활 속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루 15시간 아르바이트를 하고 틈틈이 음악 작업을 하면서 열심히 자신의 역할을 해나갈 겁니다. 때론 어려운 순간이 올 테고 그 순간이 진짜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멋지게 연기해낼 거라고 믿습니다. 조카 힘내라! 그리고 이모부가 너의 삶을 흥미깊게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마찬가지로, 혹시 세상살이에 어려움을 느끼는 분이 계시다면 잊지 마시길. 당신은 이 세상의 주인공이고, 당신 곁에서, 혹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느 곳에서 당시의 연기를 지켜보는 관객이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 누군가가 당신의 연기에 울고 웃으며, 때론 분노하고 때론 안타까워하면서 당신이 멋진 드라마를 완성하기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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