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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Aug 31. 2020

동생에게 8; 하나님이 코로나를 통해 전하려는 것

    

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던 장마가 끝난 것을 보면, 좀처럼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코로나도 곧 끝나겠지?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은 물론이고, 코로나 때문에 생활에 고통을 받는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파. 제발 끝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전 세계에 코로나가 유행이지만, 우리나라 코로나는 그 확산에 교회가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특이해. 처음에는 신천지가, 이번에는 사랑 제일교회가 온상이 되었지. 정부가 간곡하게 ‘예배를 잠시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한교총 회장은 “예배는 생명”이라며 거부를 했지. 코로나 문제가 종교의 자유 문제와 얽혀 들어가고 있는 중이야.     


물론 대다수 기독교인들이 정부의 방침에 따르고 있으니 전체 기독교를 싸잡아 비난할 문제는 아닐 거야. 갑자기 너에게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다른 데 있어. 이 기회에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다시 한번 질문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거야. 가장 원초적인 질문. 종교란 무엇인가? 하나님은 무엇인가? 믿음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등등...    


언젠가는 너하고 깊게 토론을 해봐야지 했던 문제들인데, 갑자기 하게 되어서 나도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해. 아직 이른 감이 있거든. 믿음의 문제는 항상 예민하게 다루지 않으면 오해의 여지가 많으니까. 어쨌든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니 꺼내놓고 볼게.     


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가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깨부수고 다시 세우라는 하나님의 계시라고 나는 생각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의 문제들이 와글와글 머릿속에서 외쳐댄다. 자기들 문제를 얘기해 달라고. 뭉뚱그려서 한마디만 하자.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의 시 <껍데기는 가라> 중에서)      


그러면 우리 기독교는 무엇이 껍데기이고 무엇이 알맹이인가? 그동안 우리는 교회 예배를 종교의 핵심처럼 생각해 왔어. 그러나 어느 때부터인가 교회는 알맹이 없는 껍데기로 변질되고 말았지. 아니, 솔직히 말하면 교회라는 것은 그 탄생부터가 비극이라고 나는 생각해. 교회는 믿음의 상징이고 표현이지. 믿음을 형식화한 것이 예배고, 그 예배를 형상화한 게 교회야.     


그러나 문제는, 믿음이란 형식화되고 형상화될 수 없는 거라는 점이야. ‘이것이다’라고 규정되는 순간 믿음은 사라져 버려. 그건 요즘 양자물리학에서 말하는 ‘불확정성의 원리’와 같은 거야.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하시지만, ‘이것이 하나님이다’라고 규정하는 순간 하나님은 없어. 이미 하나님이 아닌 거지. 껍데기만 남아있어. 그게 교회지.     


사실 본질을 포착하려는 시도는 예술의 영역이야. 보이지 않는 순간의 진실을 잡아내고자 하는 게 예술가들의 꿈이지. 예배와 교회가 아름다운 것은 그런 점에서 당연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아름다움 안에는 하나님이 안 계셔. 우리 인간들의 착각과 속임수만 있을 뿐이지.  

  

‘오빠 믿음이 약해서 그래. “라고 할까 봐 노파심에 말하는데, 나는 뼛속 깊이 하나님을 믿어. 교회를 다닌 건 1년여밖에 안됐지만, 신이 있다고 믿은 건 훨씬 전부터야. 물론 기독교를, 하나님을 믿었다고는 할 수 없지. 하지만 지금은 하나님을, 기독교를 믿어.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은 뭘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이지. 그럼 예수님을 믿는다는 건 뭐지? 예수님의 생애와 그 말씀을 믿는다는 거지. 그중에서도 예수님의 기적, 예수님의 탄생과 부활을 믿는다는 거야. 세상 모든 종교가 신을 믿지만, 기독교가 특별한 이유는 ’ 기적‘을 믿는다는 점이라고 나는 생각해. 물질의 법칙이 작용하는 이 우주에서, 기적이란 그 법칙을 벗어나는 특별한 체험이지. 암수를 떠나 태어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죽은 자를 살려내고, 중력을 거슬러 상승하고, 그 스스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 영생의 길을 가신 예수는 그 기적의 표본이야. 나는 직접 기적을 체험하는 영광을 얻지는 못했지만, 기적이 분명히 있다고 믿어.     


문제는, 현재의 기독교가 2000년 전의 것을 그대로 믿는다는 거야.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데 왜 기독교는, 왜 종교는 수천 년이 지나도록 똑같은 모양을 지키려고 하지? 영원하고 변치 않는 것은 하나님이고 신이지 교회나 절이 아니야. 사람들의 꿈과 소원을 중개하면서 복비 챙기는데 만족하고 살아온 게 종교인들 아니었나? 꼭 예배에 참석해야 하고 성전에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사, 중들의 마음에 진정 신도들의 영성 충만을 기도하는 마음이 있을까? 나는 없다고 봐. 그건 그들의 먹고사는 수단, 직업일 뿐이니까.    

  

그게 그들의 잘못은 아니지. 교회라는 조직이 생겨나는 순간 이미 하나님은 사라져 버렸으니까. 다시 말해 예수님이 돌아가신 2000년 전에 기독교는 이미 죽었다는 거지. 초기의 박해받던 시대를 제외하면 기독교에는 하나님이 없었던 거야.   

  

코로나 시대를 맞아서, 우리는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봐.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믿기 시작해야 돼. 말이란 그때그때 쓰임이 다르지. 상황 따라 다르게 표현되고 받아들여져야 해. 어제 진리였던 것이 오늘 거짓으로 판명 나는 세상에, 수천 년 전 문서를 금과옥조로 따르는 것이 과연 올바른 태도일까? 수천 년 전 유대인들에게 한 말씀이, 예수님 생전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했던 설교를 지금 그대로 적용하는 게 맞을까?  

   

그 말씀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지금 현실이 변했다는 거야.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왜 손가락을 보냐’는 말처럼, 그 뜻을 되새기려고 노력해야지. 무릇 종교가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을 위해 존재하는 걸 텐데, 깊은 산속에 들어가 목탁 두드리며 찾아오길 기다리는 게 맞는 태도일까? 세상 모두는 하나님의 자식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태어나 살아가는데, 원죄로 속박하고 현실을 부정하며 죄인으로 살도록 유도하는 게 정말 하나님의 뜻일까?

     

내 설명이 부족해서 함부로 아무 얘기나 지껄인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내 말의 요지는 이 참에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자는 거야. 그동안 우리가 옳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코로나라는 걸 계기로 모두 차단되고 중지되어 버렸잖아? 소비하고 소통하고 교류하고 함께 하는 우리의 삶에 혹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자는 거야.     


근래에 다양한 무리의 사람들이 헌법정신을 들먹이며 자신들의 욕망을 정당화하는 걸 많이 봐.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인용하면서 가짜 신앙을 선동하고 거짓 신을 앞세워 자기 이익을 추구해.    

 

믿는다는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 코로나를 통해서, 우리에게 어떻게 살도록 인도하시는가? 믿음이 좋으니 너에게는 답을 주시지 않을까? 진실되게 기도드려서, 답을 얻으면 내게도 말해줘. 죽은 2000년 전 문서에 의지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관례화된 신에 의지하지 말고, 오직 네 안에 존재하시는 너의 살아계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답을...     


(극적 효과를 위해 다소 과격한 표현을 했을 수 있으나, 특별히 악심을 가진 것은 아니니 너그러이 용서하기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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