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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Sep 04. 2020

동생에게 9; 하나님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

   


하나님을 알게 되면서 성경 읽어야 한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가 않았어요. 어느 날 새벽기도 마치고 연습실에 앉아서 무심코 성경을 펼친 뒤로 지금 이 순간까지 성경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어 벌써 13년 지났네.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너무 재미있고 두렵기도 하고, 수십 번 읽어도 새롭고 또 읽고 싶고.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하나님의 영으로 감동받아 쓴 것이 아니고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야.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지금도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지 않을 수 없어요     


나의 믿음을 믿지 말라는 목사님 설교가 생각나네.

수시로 변하는 내 믿음을 어떻게 믿겠어.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를 많이 하고 십일조 드리고 봉사를 많이 하면 믿음이 좋은 줄로 착각하며 살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부족한 대로 예수님 꼭 붙잡는 것. 어리석고 미련해서 성령님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 그것이 내 신앙생활의 전부야.     


시어머니 오신지 일 년 반이 되어 가는데 그동안 가장 많이 한말이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이해가 가지 않으니 하나님 생각을 말씀해보세요"였어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내 안에 질퍽이던 것들이 정리가 되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돼버리곤 했어.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    

 

그리스도인이라 자칭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런 중에도 하나님은 인내하고 계시고, 이 세상을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고 계심을 이 동생을 믿는답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죄인으로 살도록 유도하시지는 않아.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이미 용서하시고 구원해주셨는데?

그저 예수님께 살포시 기대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닐까     


사람들이 자기의 욕망을 하나님이 주신 권능인양 휘두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믿음의 길은 천국 가는 그날까지 계속 힘든 여정이 될 거라 생각해.

힘들지만 기쁨도 있으니 좋아요.

오라버니에게도 주님의 은혜가 동일하게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네가 ‘동생에게 8; 하나님이 코로나를 통해 전하려는 것’에 대해 네가 쓴 댓글이야. 처음 댓글을 읽고는 애매했는데, 두 번째 댓글을 보고 답변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네가 내 마음을 연 거지. 진심 어린 댓글 고마워.  

   

논점을 단순화시키자. 지난 편지에서 나는 ‘과거의 죽은 말씀에 의지하지 말고 현재 살아있는 하나님을 믿자’는 요지의 말을 했어. 너의 댓글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치 않고 살아있다’는 거고.   

  

일단 성경 말씀에 대한 내 경험 하나. 몇 년 전 내가 처음 성경을 완독한 때가 있었지. 어머니의 강권에 못 이겨 쏟아지는 졸음 속에서 겨우 해냈어. 그 과정에서, 구약 어딘가를 읽을 때였다고 생각돼. 구체적인 건 생각나지 않고 하나님이 뭐라고 얘기하는 대목이었는데, 그 말이 환청처럼 내 머리를 감싸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     


‘아! 이건 진짜다. 진짜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말씀을 하신 거다. 절대로 꾸며낸 말이 아니다.’     


그전부터 ‘신이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나는 완전한 유신론자가 되었어. 하나님이 있다는 확신이 생겨버린 거지.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몰라. 중요하지도 않아. 그건 그 당시 상황 속에 있는 유태인들에게 한 말이었으니까. 나에게는 하나님의 실재를 느꼈다는 사실만 중요한 거지.     


네가 13년 동안 성경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고 하는데, 그건 좋은 태도지. 항상 하나님께 의지한다는 뜻이니까. 너의 댓글에서 내가 인상 깊게 본 것은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이해가 가지 않으니 하나님 생각을 말씀해보세요"라고 한다는 거야. 예수님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와 같은 태도. 나를 버리고 하나님을 택하는 자세.     


그러나 성경의 구체적인 자구를 그대로 믿는 것이 과연 하나님을 믿는 태도일까? 그건 다른 문제라는 거지. 예수님이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해서 무조건 그 말을 믿어야 할까? 그 이웃이 내 가족을 죽인 원수라고 해도?     


얘기가 불필요한 논쟁이 되지 않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하나님을 믿는 것’과 ‘하나님 말씀을 믿는 것’은 전혀 다른 거야. 말씀이란 ‘뜻이 말로 표현된 것’이지. 좋은 거지만 한계도 분명해. 말을 믿는 것과 현상을 믿는 것은 다를까? ‘우상을 믿지 말라’고 하면서 말씀을 우상처럼 섬기고 있지는 않나?(부정하거나 믿지 말라는 뜻이 아님을 다시 강조!)   

  

세상 모든 것은 유한하고 현재적이야. 절대적으로 불변하고 옳은 것은 없어. 오직 하나님만 영원하지. 하나님의 말씀도 그때 그 상황에만 옳다고 봐야 해. 물론 사람 사는 게 항상 비슷하니까 언제든 적용이 가능하지만, 어쨌든 그 말 자체를 100% 진리고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해. 일부 교단에서 성경 자체를 한자 한 획 불변의 진리로 섬기는 것은 죽은 신을 믿는 것과 다르지 않지.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시인한다’는 말을 너한테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해. ‘하나님이 존재함을 믿고 시인하는 것’ 그거 하나면 되는 거지. 왜냐? 하나님을 제외한 이 세상 모든 것은 허상이니까. 유한하고 사라지는 것들이니까.   

  

나는 그걸 바다와 파도로 비유하길 좋아해. 우리는 파도처럼 순간적인 시간을 살아갈 뿐이고, 잠시 후면 바다로 돌아가지. 물론 바다란 하나님을 뜻하는 거야. 우리는 하나님에게 나서 잠시 자신의 모양을 만들었다가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파도야. 파도가 하나님과 다른 적이 있나? 아무리 크게 모양을 만들어 벗어나려 해도 파도는 바닷물일 뿐이지. ‘나 바다 아냐. 난 파도야.’라고 주장해도 그건 파도의 착각일 뿐이야.   

  

파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바다에 속해 있듯이, 우리도 항상 하나님께 속해 있지. 파도는 내가 옳고 저 파도가 틀렸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바다는 결코 파도를 차별하지 않아. 바다가 보는 파도는 옳고 그름도 좋고 나쁨도 없어. 네가 13년 동안 항상 가까이했다는 성경도 그래. 그 내용이 옳아서가 아니라, 그 말씀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소중한 거야.      


다시 반복하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파도라는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바닷물 안에서 만들어낸 잠깐의 현상이라는 걸 인정하는 거야. 즉 나라는 것은 없고 바다만 있다고 항복하는 거지. 따라서 우리는 한껏 멋진 모양의 파도를 만들고, 그럴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지. 항복하면 행복하다!(아재 개그, 쏘리!)     


그러므로 믿는다는 것은 ‘나는 없다’고 인정하는 과정이야. 예수님이 극적으로 보여주셨듯이, 우리 인간은 순간순간 나를 주장하게 돼. 그걸 내려놓고, 참회하면서, 우리도 언젠가는 “다 이루었다”라고 하는 자기 소멸의 선언을 할 수 있어야겠지.


마지막으로 네가 쓴 댓글 중 한 대목 수정하고 싶어.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지금도 말씀으로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지 않을 수 없어요.

    

이 말을,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지 않을 수 없어요.’라고 바꾸자고. 잘못하면 ‘하나님은 말씀이다’라고 인식될 위험이 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I am that I am'라는 말이야.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정의해 주셨잖아? “나는 ’ 내가 있다 ‘는 것이다”라고. 하나님은 존재 그 자체인 거지. 바다가 바다 그 자체이듯이. 동해물 서해물이 하나이듯이, 태평양물 대서양물이 똑같은 바닷물이듯이, 우리는 그저 하나님 안에서 하나인 거야.     


(내가 일종의 자생 기독교 신자라서, 보편적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을지도? 너는 정통파 교인이니, 선배로서 후배에게 많은 지도 부탁해.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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