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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Sep 23. 2020

딸에게 쓰는 편지 57; 나는 그럴 수 있었을까?


어제 무심코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랄만한 광경을 봤어. 스페인의 철인 3종 경기에서 일어난 일이라는데 앞선 주자의 착각으로 내내 유지되던 순위가 바뀌어 결승선을 통과하게 된 거야. 불과 결승지점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이었지.     


결정선 앞인데, 그 주자가 들어가지를 않고 뒤에 달려오는 선수를 기다리는 거야. 그 선수는 잠깐 코스를 착각하는 바람에 어이없이 뒤지게 된 선수였지. 앞서던 선수는 그 선수를 먼저 들어가라고 하고, 둘은 잠깐 악수를 나누더니 실수했던 선수가 먼저 들어갔어.     


“그가 길을 잘못 든 걸 보고 멈췄을 뿐이다. 내겐 그게 공정한 결과다.”     


양보한 선수가 한 말이야. 처음엔 그저 ‘훌륭한 사람이군!’ 하고 넘어갔는데, 점점 그 일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보도된 영상을 보면 별로 차이도 나지 않아. 불과 몇 미터 뒤에 가던 사람이, 앞사람이 잠깐 실수하는 사이 앞서게 된 거야.     

스포츠는 경쟁이고, 시합 중에 일어나는 어떤 일도 결국에는 선수가 책임을 져야 해.     


“오심도 경기의 일부분이다. 받아들여야 한다.”     


원래 누구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박지성이 해서 유명해진 말이지. 심판이 실수를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건데, 하물며 선수가 하는 실수는 100% 선수의 책임이야. 다시 말해서 코스를 착각한 선수는 당연히 그 결과에 승복을 해야 한다는 말이지.     


그런데,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스 속의 스페인 선수는 양보를 했어. 아니, 그에게는 양보라는 말이 틀린 말이지. 그게 바른 결과라고 생각한 거니까. 그는 시합 내내 자신보다 좋은 경기를 했고, 따라서 자신보다 나은 평가를 받는 게 마땅하다는 거지. 상대의 실수를 틈타서 더 높은 점수를 얻는 것보다 공정한 결과가 훨씬 중요하다고 그는 생각하는 거야.     


어때? 너는 그럴 수 있겠니? 아빠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게 못했을 것 같아. 이성적으로는 그게 옳다고 생각하고, 보통 생활의 시간이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경기 중이고, 승부가 막바지에 이른 절정의 순간에 그렇게 멈춘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불가능해. 앞선 주자가 길을 잘못 든 것도 그런 욕망의 절정에 있었기 때문이었을 거야. 이겨야겠다는 생각 외에는 보이는 게 없는 거지. 그런데 그 사람은 멈추더라고, 정말 대단해!  

    

그렇게 감탄을 하고 하루를 넘겼는데 또 생각이 나더라고? 왜 또 생각이 나는지 따져봤지. 그 상황의 무엇이 나를 자극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니까. 뭔가 부러운 대목이 있다는 건데, 그게 뭘까? 그의 양보심? 공정함을 추구하는 그의 철학? 아니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사실?     


너는 뭐일 거라고 생각하니? 그 사람의 가장 멋진 대목은 무엇일까? 아빠가 매혹된 부분은 바로 그의 ‘자존심’이었어. 자신에 대한 당당함, 세상의 이목에 흔들리지 않는 뚜렷한 주관, 자신이 믿는 바대로 세상을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지... 자존심이란 나의 세계를 존중하고 믿는 그런 당당함과 주관과 의지의 총합이야. 

    

이제 겨우 스무 살, 막 대학 합격 통지를 받은 새내기 대학생에게 '이 세상은 네 세상이다'라고 말하는 게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아빠도 용기를 낼게. 용기를 내어 더 강조해서 말할게, 이 세상은 네 세상이고, 이 세상의 주인은 너라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세상에 너만이 유일한 존재이고(부처가 말한 '천상천하 유아독존'), 세상의 모든 것은 너의 뜻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배치되고 움직이는 것이라고.     


물론 믿어지지 않을 거야. 아빠가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될 거야. '나는 지구 상 80억 가까운 호모 사피엔스 중 하나에 불과하고, 내가 없어도 이 세상은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그러나 아빠는 그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너는 80억 인류의 중심에 있고, 네가 없으면 인류는 물론 이 우주 자체가 없다고 말하는 거야. 너라는 개체가 눈을 뜨면서 이 세상도 생겨났고, 네가 죽으면 이 세상도 소멸한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그러므로 너는 이 세상 모든 것의 주관자이자 책임자이며, 네 생각 네 행동이 세상의 운동에 결정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해. 세상의 모든 것은 각자의 계획에 따라 배치되어 있어. 엄마 아빠가 너와 가까이 있는 것은 네가 그걸 원하기 때문이야. 아빠가 뉴욕을 좋아하고 이과수 폭포를 그리워하면서도 그렇게 멀리 두는 것은 (구체적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거야. 세상 모든 일은 각자가 그렇게 되기를 원해서 일어나는 거야.     

    --‘딸에게 쓰는 편지 33-축 합격. 이젠 네 세상이다!’ 중에서     


굳이 전에 쓴 편지를 다시 인용하는 이유는 그 선수의 양보가 정확하게 아빠가 말하는 ‘주인공’의 행동이기 때문이야. “세상의 모든 것은 너의 뜻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배치되고 움직이는 것”이라고 한 것처럼, 그 선수는 자신의 뜻대로 철인 3종 경기의 질서를 완성시켰지. 잠깐의 실수로 코스를 잘못 든 선수가 자기보다 앞서는 게 맞다고 보고, ‘주인공’인 자신이 ‘자신의 뜻대로’ 배치를 한 거야. 아빠가 매혹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어. 자신의 삶을, 자신의 뜻대로 살아냈다는 것!     


요즘 아빠가 너한테 편지를 뜸하게 하는데, 왠지 알아? 생각하니 좀 지겹더라고. 내가 하는 말이 항상 똑같은 거야. ‘네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다’‘세상은 너의 중력대로 움직인다’ ‘내가 그렇게 되라고 했다’ 등등... 물론 아빠로서는 가장 중요한 대목이라고 생각해서 말하는 거지만, 말하는 내가 지겨운데 듣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지겹겠어? 재미있는 얘기도 아니고... 그런데 오늘 또 똑같은 소리를 하고 말았네? 쏘리~~~!     


얼마 전 ‘시무 7조 상소문’이 화제가 된 적이 있지? 그거 보고 ‘나도 분발해야겠다. 재미있는 글을 써야지.’라고 생각해서 나름 재미있게 쓰려고 한 게 ‘애들은 가라. 어른도 40 이상만 남고’라는 글이었어. 근데 마찬가지더라고. 역시 반응이 별로야. 그래서 지금은 다시 포기한 상태야. 그냥 아빠 식대로 하려고. 아빠 식으로, “재미있게 쓰시는 분, 먼저 가세요. 나는 다음에 갈게요.” 해야지. 결승선을 양보한 그 선수처럼...

    ----딸이 그 양보한 선수처럼 자기 삶에 당당하기를 바라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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