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하태평 Jan 25. 2021

딸에게쓰는편지58;마라탕과 청국장,싱어게인30호가수

  


사랑하는 딸! 힘든 코로나 시대를 잘 견뎌내고 있나? 아빠는 요즘 JTBC의 <싱어게인>을 보면서 그나마 위안을 받고 있는 중이야.     

그 중 30호 가수 노래를 좋아하는데, 지난번에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불러서 모처럼 옛날 생각이 났지. 대학 1학년 때 아빠의 18번이었거든. 아빠도 너만한 나이 때가 있었다는 말이지.    

 

30호 가수가 노래를 잘 해서 엄청 칭찬을 받았는데, 울더라고? 자신은 경계인이고 칭찬에 익숙지 않다, 깜냥이 안된다, 인제 칭찬을 받아도 되나 싶어서 감격스럽다... 뭐 그런 뜻의 이야기를 했어.   

  

경계인이라는 말은 소외되어 있다는 말이겠지. 자발적인 것 반, 외부적인 것 반 정도 될 거야. 주류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마음이 강한 거지. 아빠의 경우를 보면 ‘너희처럼 살지는 않겠다’는 부정적인 성향이 더 많았던 것 같아.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의 사랑을 바라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 하지만, 그들처럼 되고 싶지는 않은 이율배반...     


30호 가수는 <싱어게인>을 통해서 양지로 나왔고 사랑을 받게 되었으니 해피한 경우지만 여전히 경계에 갇혀있는 이 아빠는 어떻게 해야 하면 좋니? 아빠는 30호 가수에게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었는데, 실제 현실은 완전 딴판인 거잖아. 

    

아빠의 경우를 보자. 30호 가수가 JTBC 음악프로 <무명가수전, 싱어게인>을 통해 사람들 앞에 나왔던 것처럼 아빠도 웹소설 유토피아 <문피아>를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구했어. ‘천하태평2’라는 필명으로 판타지 소설 연재를 시작했지, 야심적으로, 지금의 제목 <좀비는 아니지만 쉽게 죽을 수는 없지>는 세 번이나 바꾼 제목이야. 조금이라도 더 시선을 끌어보려고. 그러나 결과는? 

...     


“사람들은 마라탕을 찾는데 청국장을 내놨으니.”     


아빠가 손님이 안온다고 한숨을 쉬자 네가 아빠를 위로하며 한 말이야. 위로가 되긴 했어. 고마워. 아빠가 실제로 청국장을 좋아 하기도 하고.     

아빠는 마라탕을 먹어본 적이 없어. 엄마나 너도 그렇지? 우리 식구는 대체로 유행에 둔감해. 그렇게 유행하던 노스페이스 옷이 우리 집에는 하나도 없잖아.     


문제는 마음이야. 마라탕을 먹었느냐 아니냐, 노스페이스 옷을 좋아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마라탕 먹는 사람들을 보았느냐 하는 거지. 아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면 ‘그딴 걸 음식이라고 먹어?’ 하는 경멸의 마음이 강했던 것 같아. ‘나는 다르다.’라는 자의식이 지나쳐서 다른 사람들을 적대적으로 대하게 되는 거지.     


30호 가수가 칭찬에 어색해 하는 것도 당연해. 온통 적개심으로 무장한 사람에게 ‘너 예쁘다, 잘한다.’고 칭찬하는 말이 제대로 들릴 리 없잖아? 30호 가수의 눈물은 그 마음의 얼음이 녹고 있다는 분명한 표시지. 세상과 화해하고 세상과 소통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    

 

아빠가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 다들 의아해 했지.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소설을, 그것도 쌩뚱맞게 판타지 소설을? 아빠의 생각은 이런 거였어.      


‘이젠 정말 사람들과 소통을 해보자. 사람들이 재미있어 할 이야기를 하자.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자.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인터넷 공간에서, 가볍게 볼 수 있는 판타지 소설로.’   

  

어차피 마라탕이 나올 수는 없는 거지. 아빠는 마라탕에 별 관심이 없으니까. 그러면 청국장은 잘 되었나? 그것도 아닌 것 같아. 청국장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텐데, 안 찾잖아. 정체불명의, 나만의 요리가 된 거지.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빠가 이제 나이를 먹었다는 거야. ‘세상이 나를 몰라준다’고 할 철부지 시절을 지나고, ‘시대가 나를 외면한다’고 할 패기만만한 청년기도 지나고, ‘운명이 나를 거부한다’고 할 중년도 지나왔다는 것. 이제는 결과를 가지고 남탓하지 않을 정도의 조그만 지혜는 갖게 되었다는 것!     


물론 아빠는 여전히 사랑받고 싶어. 세상 사람들과 화목하게 소통하고 싶다고. 다만 세상이 내게 사랑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을 미워하지는 않는다는 거지. 내가 마라탕을 먹지 않지만 마라탕 먹는 사람들을 존중할 수 있고, 노스페이스를 입지 않아도 입은 사람들을 보고 즐거워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한 가지 바람은, 마라탕도 아니고 청국장도 아닌 내 작품을 보고 즐거워 할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것! 현재 유일한 독자인 엄마 외에도 아빠의 소설 연재를 기다리는 사람이 나타났으면 하는 것! 좀 더 큰 바람은 부디 아빠의 재주가 늘어나서, 아빠가 주고자 하는 재미를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쓰는 것!     

그리하여, 사랑하고 사랑받고 화목하게 소통하는 즐거운 세상이 되는 것!     


사랑하는 딸! 30호 가수가 칭찬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듯이, 세상과 화해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되었듯이, 너도 하루빨리 그런 날을 맞이하기를. 그러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하다? 아빠가 맨날 하는 잔소리, 행동하는 것! 무엇이든 해보는 것!     


너는 젊고, 어쨌든 시간은 네 편이니까. 우리 딸, 파이팅!!     

-- 새로 낸 식당에 손님이 오지 않아 살짝 기운이 빠진 아빠가.          

매거진의 이전글 딸에게 쓰는 편지 57; 나는 그럴 수 있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