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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Dec 23. 2021

딸에게 쓰는 편지 64; 3학년 마침을 축하하며

사랑하는 딸!

마지막 시험을 봤으니 이제 3학년이 끝났네? 다사다난한 시대에 대학생활(사실 코로나 땜에 생활이랄 것도 없지만...)하느라 고생 많았어.

친구들과 영화 보기로 했다니 맘 편히 쉬어. 좋아하는, 손에서 거미줄 쏘는 사람 보면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와.     


“휴학할까 해.”     


휴학? 뭐, 할 수 있지. 요즘 다 한 번씩은 한다고도 하고, 코로나 시대에 뭔가 변화를 필요한 것도 충분히 이해가 돼. 불확실한 미래에 좀 더 신중한 모색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한 일 년, 맘껏 놀아보는 것도 괜찮아. 사실 너 그동안 맘 놓고 쉬어본 적도 없잖아? 막상 대학 졸업하면 맘편히 못 쉰다. 그때부터는 사회인이잖아. 책임을 져야 되거든.”     


아빠의 말에 너는 살짝 눈물을 보였는데, 왜였나 몰라? 물론 뭐하고 놀지를 미리 정해야지. 어떻게 졸건지 정하지 못하고 덜컥 휴학을 하면 그냥 허송세월하기 십상이야.     


“일단 졸업을 해. 나머지는 그 다음에.”     


이건 엄마의 말. 엄마는 네가 구체적 계획이 있는 게 아니면 우선 졸업을 하라는 거지. 여전히 진로가 고민이면 그 때 가서 하고, 놀고 싶으면 그때 놀고. 네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은 일단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생각하라고.     


그러고 보면 너희들하고 아빠 때는 전혀 달라. 아빠는 휴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거든. 빨리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고 싶었으니까. 빨리 나가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었으니까.     


대학 졸업을 어떤 의무 같은 걸로 생각했던 것 같아. 사회인으로 살기 위핸 최소한의 자격증?

마치 대한민국 남자들이 군대를 필히 거쳐야하는 통과의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야.

그래서 아빠는 군대도 일찍 갔다 왔고, 졸업하자마자 현장으로 나갔지. 즐거운 마음으로.     


근데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내 인생은 군대 가기 전과 후로 정확히 나눠지는 것 같아. 대학 1학년을 마치고 바로 군대 갔으니까 빨리 간 건데, 제대 후 복학한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어. 예비 사회인이었지.     


“대학 1학년 시절이 내 인생의 화양연화가 아니었을까?”     


대학 가기 전에는 의무적으로 공부하는 시간이었고, 군대 갔다 온 후로는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시간이었지. 다시 말해서 아빠에게 대학 1학년은 일종의 공백기 같은 거야. 아무런 의무도 없는, 부담없는 완벽한 공백기...     


공부? 아빠는 대학을 공부하는 곳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에 전혀 부담이 없었지. 대학은 그저 거쳐야하는 정거장 같은 곳일 뿐이었으니까.(물론 전혀 직업과 상관없는 전공을 택한 건 전적으로 아빠의 잘못!)     


어쨌든!

남들에게는 한심하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나이가 들수록 아빠에게는 그 때가 아주 소중하게 생각돼. 정말 맘 편하게 놀아본 유일한 시기니까.     


네 친구가 지난 2학기 때 휴학을 했다고 했지? 뭐하냐고 하니까 논다고, 코엑스에서 집까지 걸어갔는데 좋았다고 하더라고.     

그거? 휴학 안 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학교생활 하면서도 충분히 놀고, 원하면 언제든지 걷고 뛰고 할 수 있어. 그거하고 휴학은 아무 상관없는 일이야. 그런 것 땜에 휴학이 좋아보였다면 네가 착각한 거야.     


휴학.

休學.

학업을 쉼.     


쉰다는 건 뭘까?

한편으로는 릴랙스한다는 뜻도 있겠지만, 아빠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미는 정지한다는 거야.

학업은 너의 일이고 일상이지. 휴학은 그 일, 그 일상을 정지하는 거야. 그동안의 관성을 끊고, 타성을 벗어나고, 집착과 욕망의 동아줄을 놓아버리는 것, 그게 쉬는 거란 말이지.   

  

懸崖撤手 丈夫兒(현애철수 장부아)!

<백범일지>에 나왔던 말로 기억하는데, “벼랑을 잡은 손을 놓아라. 그게 대장부다!”라는 뜻이야. 휴학에는 그런 단호함과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고 아빠는 생각해. 그렇지 않다면...?

하지 마. 엄마 말처럼, 일단 졸업을 해.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 줄 거니까.     


시간을 벌기 위한 휴학이라면 필요 없다는 거지. 시간은 항상 있어.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유일하게 공평한 게 시간이잖아. 문제는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지.     


휴학을 하고 싶다는 건 뭔가 다른 곳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는 건데, 그건 현재에 충실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잖아? 현재 사귀는 파트너가 마음에 안 들어서 자꾸 다른 파트너를 생각한다는 거나 똑같아. 휴학을 하더라고 미련이 남고 두려워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게 있어서 해야지.  

   

놔야 돼. 선택하고, 다른 욕망을 포기해야 돼. 벼랑을 잡은 손을 놓듯이, 그렇게 시원하게 놔버려야 해. 아무리 해도 그게 안 된다면?

그 땐 벼랑을 올라가야지. 있는 힘껏,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절벽을 올라가야지. 전적으로 내 욕망에 충성해야지.     


우리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 욕망의 동물이야. 욕망과 감정과 생각에 사로잡히기 쉬워. 뭔가를 원하다가도, 이걸 해도 되나? 하는 반대 생각에 시달리게 되지. 물론 그런 정반합을 통해 발전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그게 우리의 동력을 불완전 연소시키고 말아.     

그러니 선택해야 해. 부정적인 것을 버리고 긍정적인 것을, 망설임과 두려움을 내려놓고 단호함과 과감함을, 주저함보다는 질주를 선택해야 돼.

어차피 선택할 욕망이라면 내게 도움이 되는 걸 골라야지. 따뜻한 이불 속 보다는 썰매나 자전거나 보트를 선택해야지.     


“움직여! 움직이지 않으면 우린 벌레가 된다.”   

  

사실 벌레처럼 살면 또 어때? 그것도 하나의 선택이라면 존중돼야지. 옛날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서      


“우리, 사람은 못 돼도 짐승은 되지 말자.”    

 

라는 대사가 화제였던 적이 있었는데, 짐승이 되면 또 어때? 문제는 그게 나의 선택이냐 하는 점이지. 내가 주체적으로 그걸 선택한 게 맞느냐 하는 거.     


주체란 무엇인가?

우린 이것이냐 저것이냐 규정을 하지.      


돈이 많은 게 좋다... 과연 그럴까?

대학을 나와야 한다... 과연 그럴까?

무엇보다도 건강이 최고다... 과연 그럴까?

대부분 얘기의 끝은 행복인데, 우리는 정말 행복해야만 하는 걸까?

우리는 혹시 돈, 대학, 건강, 행복에 저당 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주체란 그런 저당 잡힌 삶에서 벗어나는 거야. 모든 규범과 속박, 도덕,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지는 거야. 늘 얘기하듯이 ‘그냥’ 사는 것, 지금 이 순간을 완전 연소시키는 것. 그리하여 나로부터, 지금 이 순간으로부터도 벗어나는 것...     


사랑하는 딸!

하버드 대학의 리사 랜들(Lisa Randall) 교수 말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물질의 질량을 다 합해봐야 우주 전체의 5%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 그 나머지는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 암흑 에너지라는 거지.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야. 보이는 물질계 몸뚱이라고 해봐야 5% 뿐이고, 나머지는 마음과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지.     

우리가 물질과 건강에 집착해봐야 겨우 5%에 집착하는 거야. 그러니 그냥 살자고. 어떻게? 열심히. 신나게.     

코로나 와중에 공부하느라 고생했고, 3학년 마친 거 다시 한 번 축하해!     

      --- 딸이 잘 커가는 게 항상 대견한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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