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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Dec 06. 2021

딸에게 쓰는 편지 63; 나는 만 원짜리 사람이다


교회 앞을 지나서 막 카페 쪽으로 올라가는 중이었어.     


어?!     


곱게 접힌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길 한복판에 떨어져 있는 거야. 나는 자동적으로 걸음을 멈추고 바닥을 쳐다봤어.  

   

이걸 어쩐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지. 10여초의 갈등 시간... 오가는 사람이 있었다면 좀 더 판단이 빨랐을까? 혹은 다른 판단을 했을까?

어쨌든 나는 그 돈을 집어 들고 다시 걷기 시작했어. 내 돈으로 삼겠다고 결정을 한 거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돼?”     


저녁을 먹으며 아빠가 한 얘기의 전말이야. 아빠는 그 때 돈을 집어 손에 들고 그냥 카페로 갔어. 뭔가 마음에 걸려서 주머니로 돈을 넣지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얘기를 꺼내 공론화한 거지. 너와 엄마의 의견을 들어보면 좀 나을까 싶어서.    

 

너는 초등학교 시절 신용카드를 주워 근처 소방서에 갖다 준 얘기를 했고, 엄마는 “5만원 짜리였으면 진짜 고민됐겠다.”고 말했어. 두 사람 다 그 만원을 두고 지나가겠다는 뜻이었지. 순식간에 아빠만 부정직한 사람이 된 거야.     


뭐... 인정해. 나는 나 자신을 정직하다거나 도덕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덧붙여진 엄마의 말은 약간 충격이었어.   

  

“옛날에 나하고 가다가 만 원짜리 봤잖아. 그때 내가 집으려고 했더니 그냥 가자더니.”    

 

헐~~! 같이 있을 땐 선한 척하고 혼자 있을 때는 나쁜 짓을 맘대로 한다고?

부정직에다 이중인격, 위선까지? 지킬박사와 하이드?     


“내가 옆에 있어서 그랬나?”    

 

네가 의심의 눈초리와 말투로 아빠를 보자 엄마가 변명을 대신 해줬어. 말하자면, 엄마한테 잘 보이려고 과격한 올바름을 행했다는 거지.  

   

“그건 아니고. 다른 사람이 같이 있으면 그냥 갈 거 같아, 지금도.”     


엄마의 말을 잠시 곱씹어본 나는 정정을 했어. 엄마가 아니라 누구라도 그냥 가자고 할 게 분명했거든. 엄마가 약간 서운한 표정이 됐지만(도움을 거부해서 그러나?) 할 수 없지. 사실은 사실이니까.   

  

신독(愼獨)이라는 말이 있어.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감.’   

  

국어사전의 정의야. <대학>과 <중용>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이라고 하고, 퇴계 이황과 백범 김구의 좌우명이었다고 하니 굉장히 중요한 용어인가 봐.   

  

그러면 아빠가 어떻게 하는 게 ‘신독을 실천’한 것일까? 만원을 그냥 두고 지나가는 게 신독일까? 아니면 주인을 찾아주는 게 신독일까? 주워서 경찰에 신고하는 게 신독일까?   

  

도덕 시간이 아니니 간단히 결론만 말하도록 하자. 아빠는 ‘신독’에서 ‘독’을 ‘본성(本性)’ 혹은 ‘본능(本能)’이라는 말로 해석하고 싶어. 다른 사람과 같이 있다는 것은 이성의 시간이고, 혼자 있다는 것은 본성이 주관하는 시간이 되는 거지. 그러니까 아빠가 다른 사람과 같이 있을 때는 만원을 그냥 두고 가고, 혼자 있을 때는 집어 드는 것은 이성의 시간과 본성의 시간이 다르다는 뜻이지. 그 차이가 아빠의 인격인 것이고.     


그러면 이런 차이가 나쁜 것인가?

그건 아니라고 봐. 이성과 본성 간에 차이가 있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야. 그 차이를 인정하고 둘 사이의 조화를 찾아가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거지. 이성으로 본성을 억압하게나, 본성이 이성을 지배하는 일 없이 상호가 태극의 모양으로 융화되는 것.    

 

“비겁한 변명입니다!”     


그렇게 비난해도 달게 받을게. 이게 아빠의 현재 모습이니까. 아빠는 만 원짜리니까. 곰곰 행각해보면, 아빠는 오만원이거나 천원 오천 원이면 그냥 지나쳤을 거야. 정확히 만원에 걸린 거지. 그 경계의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빠는 일어난 결과를 받아들이려고 해. 오천 원까지는 이성과 본성 다 걸리지 않고, 만원은 본성에 걸리고, 오만원은 이성에 걸리고... 아빠는 만 원짜리 사람이야.    

  

그렇게 사는 거지 뭐. 언제까지? 집착이 없는 대자유를 얻는 그 날까지.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렵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딸이 백지수표에도 걸리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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