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비호감 대선이 드디어 끝났다.
이재명 47.83%, 윤석열 48.56%, 심상정 2.32%
0.73% 247,077표 차이의 승부!
역대 대선 최소 표차의 승부였다고 하니 이재명 측에서는 그 패배의 충격이 더 컸을 것 같아. 아쉬움도 많을 테고. 그런데...
80만 표 획득한 심상정에, 친여 누리꾼들 ‘왜 완주했나’ 비난 쏟아져 (매일경제 기사 제목)
불똥이 엉뚱한 데로 튀더라고? 선거 패배의 책임을 중도사퇴하지 않은 심상정에게 돌리는 건 무슨 논법인지 몰라.
물론 새삼스러운 건 아니지. 아빠도 선거기간 동안 사방에서 압력을 받아왔으니까.
“될 사람 밀어줘야 한다.”
심장정은 어차피 당선과 상관없으니 찍으면 사표라는 것이다. 박빙 승부를 벌이고 있는 이재명을 찍어야 한다는 말이지.
실제로 그렇게 투표한 사람도 많은 걸로 안다. 또 나도 오랫동안 그렇게 투표를 해 왔고.
국회의원 투표 같은 걸 하면, 사람은 민주당 찍고 정당은 정의당 찍는 교차투표를 오랫동안 했었지.
그러다가 한 6,7년 됐나? 민주당 찍는 걸 그만둔 게.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된 건 아니고, 서서히 민주당의 실체를 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을 정한 거였어. 실체가 뭐였냐고?
“양의 탈을 쓴 늑대.”
처음에는 같은 양인줄 알았지. 같은 종이지만 좀 더 심이 세고 능력도 좋은 그런 멋진 양.
그런데 아니더라고. 늑대가 탈을 쓰고 양인 척 행세를 하는 거야. 반대편 늑대를 나쁘다고 비난하면서 세력을 확장하고 이득을 취하는, 양인 척하는 교활한 늑대.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입다.”
보수당은 자신이 늑대인 걸 숨기지 않으니 조심하면 되지만, 이 ‘진보의 탈을 쓴’ 늑대당은 온갖 논리로 사람들을 속이면서 자신의 이익 추구에 매진하는 거야. 필요하면 한 순간에 말과 논리를 바꿔가면서.
아빠가 민주당에 대해 마음을 접은 결정적인 사건은 뭐였을까? 바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자살을 둘러싼 민주당의 대응이었다. 박원순 시장의 자살은 아빠에게 충격이 컸기 때문에 편지를 남기기도 했다. 잠시 되살려 보자.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화나는 이유가 모습을 드러낸다. 내 분노의 근원은 사회 시스템의 부재에 있다. 가정에서부터 직장, 지역, 나라 전체에 이르기까지 체계적으로 작동해야 할 사회적 장치들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 서울시장이라는 최상위직에 있는 사람에게도 전혀 작동하지 않는 안전망 체계가 나 같은 지역 말단 무명인사에게 미치지 않는 것은, 그러고 보면 너무 당연해서 화낼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알아서 책임진다고 해도, 서울시장 같은 중요한 인사를 그렇게 두면 안 되지 않나? 최소한의 사회적 장치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나 같은 우울증 환자는 항상 폭탄의 스위치를 곁에 두고 사는 것과 같다. 죽음과 삶의 경계는 스위치 하나를 누르느냐 마느냐의 아주 간단한 일로 갈라진다. 그러나 서울시장과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의 죽음은 그리 간단치 않다. 아마 백개 정도의 단추가 단계적으로 눌러져야 발사되는 폭탄과 같다. 다시 말하면 백개의 발사과정 중에 하나만이라도 정상 작동을 했더라면 박원순의 자살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거라는 뜻이다. 나는 그게 화가 난다.
박원순 시장은 일을 열심히 잘 해왔다고 알려진 만큼 정신적 스트레스도 당연히 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만약 정기적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도록 제도화되어 있었다면 어땠을까? 부적절하고 비도덕적인 방법으로 위로와 위안과 사랑을 구하지 않도록 주변 사람들과 소통을 이루었으면 어땠을까? 한 사람이라도 서로 마음을 열어서 왜곡된 마음을 쉴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잘못된 선택으로 성추행을 시작했을 때 단호한 거부와 냉정한 비판으로 정신을 차리게 했다면 어땠을까? 계속되는 성추행을 시 당국에 고발했을 때 시에서 정확한 시스템을 작동시켜 문제를 해결했다면 어땠을까? 심지어 고소가 이루어진 날 당일에도 전혀 시스템이 정상 작동하지 않고 취약한 상태의 박 시장을 방치했는데, 그중 어느 하나라도 바르게 처리되었다면 어땠을까? 백개의 과정 중에 하나라도 정상적으로 작동되었다면 박원순 시장은 죽지 않아도 되었다.
박원순 시장은 어느 날 갑자기 죽어버린 것이 아니라, 그렇게 서서히 무너져 간 것이다. 나는 그게 화가 난다. 죽고 싶다고 그냥 죽을 수 있었다면 나는 벌써 수백 번은 죽었을 것이다. 개인적 시스템이 고장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최소한의 사회적 시스템이라도 작동해야 정상적인 사회다. 민주당이 아무리 거대 정당이면 뭐하나? 자기 당의 주요 자원 하나도 제대로 관리 못하는데. 무능한 부실 정당. 죽어있는 조직 서울시... (<누가 그 남자를 무너지게 했는가?> 중에서)
끝인 줄 알았더니 엘리베이터는 여기서 더 내려간다.
민주당 인사들은 피해자를 ‘피해 고소인’이라는 신박한 단어를 만들어내어 불렀다. 그리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이르자, 유책사유로 인한 선거에는 공천을 하지 않겠다는 자신들의 당헌당규를 고쳐가며 선거에 임한다.
나는 그들을 태운 엘리베이터가 땅 속으로 영원히 내려가라고 기도하고 싶었다...
(여기서 잠깐 달콤한 상상.
민주당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약속을 지켜 공천을 하지 않고,
정의당과 단일화로 심상정이 서울시장에 출마해서 여성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이번 대선에서 다시 민주와 정의가 단일화하여 이재명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면...
아서라! 헛된 꿈.)
사랑하는 딸!
원래는 가볍게 선거 후 잡담을 하려고 했었는데 갑자기 우울모드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네?
다시 원래의 의도로 돌아가면 이런 얘기야.
“양이건, 늑대건, 양의 탈을 쓴 늑대건, 우리는 모두 같은 지구 생명체다!”
더불어 살자는 얘기지. 어차피 세상은 경쟁이니, 때론 이기고 때론 지면서 사는 거잖아? 너무 승패에 집착하고 상처받으면 나만 피곤해. 과몰입 금지.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떠오른다.
우리 모두 화이팅!!“
선거 다음 날, 아빠는 가족 단톡방에 문자를 올렸어. 가슴 아파하고 있을 고모와 작은 아빠, 작은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서.
그러나 아무도 답은 없었고,
“당신 참 눈치 없어. 이건 약 올리는 거지.
그거 몰라?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퇴근해서 카톡을 확인하던 엄마가 아빠에게 상황파악을 해 주더라고.
아! 그렇구나!
화가 나서 지금 욕을 하고 있는 거구나!
아빠는 졸지에 보수당보다 더 미운 민주당 신세가 되어버린 거야.
아빠 생각보다 그들은 훨씬 심리적 충격이 컸다는 얘기지.
어쨌든!
일은 벌어졌고, 아빠가 감당을 해야지.
지금이라도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지만, ‘더 약올리는’ 에 될까봐 참고 있어.
너한테 굳이 편지를 하는 이유는 이거야.
“결과는 결과일 뿐이다.
우리가 할 일은, ‘지금 이 순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결과는 신의 영역이지만,
지금의 행동은 전적으로 나의 존엄이 결정하는 거니까.
그러므로 다시 한 번,
우리 모두 화이팅!!!
....고모, 작은 아빠, 작은 엄마의 우울이 마음 아픈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