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돌아왔는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예감할 수 없었던 이별이었기에
무슨 말을 했는지 그저 눈물만 흐르네요
믿을 수가 없었던 이별이었기에
무슨 이유로 떠나야했나요
나보다 더 나를 사랑했던 그대가
왜 나를 떠나야했는지
아직도 눈물이 남아있었나요
내 모습이 정말 싫어요
또 다른 사람을 찾아야 하나요
내 이별에 끝은 어디인가요...
(양수경 노래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 중에서)
아침에 당신을 직장 보내고, 잠시 고요한 집안을 마주하고 있는데 뜬금없이 이 노래가 떠올랐어. 몇 십 년 전에 자주 듣던 노래였는데 왜 갑자기 떠올랐는지 몰라.
그러다가 퍼뜩, ‘아! 우울증 때문이구나.’라고 답이 생각났어. 한동안 숨어있던 우울증이 근래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는데, 이 노래의 가사가 내 우울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었던가봐.
왜 또 우울증이냐고?
나도 잘 몰라. 근래에 특별히 우울해야 할 일이 있지는 않았으니까. 굳이 이유를 대자면 여러 가지가 누적된 게 아닌가 싶어. 3년째 계속되는 코로나 유행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동해안 산불과 최근의 지저분한 대통령 선거까지...
“자기만 신경 써. 바깥 참견하지 말고.”
당신은 항상 잔소리하지만, 이미 우울증을 갖고 있는 네게 그건 쉬운 일이 아냐. 면역력이 약한 사람은 쉽게 감염병에 걸리듯, 우울증 환자는 주변 환경과 분위기에 민감하게 반응해. 우울증은 우울한 환경에서 급속히 힘을 키우지.
우울한 지구촌의 공기가 잠자는 내 우울증을 깨웠다고나 할까?
괜한 걱정 끼치기 싫어서 당신에게 말 안했는데, 이렇게 편지로나마 말은 해야겠다 싶더라고. 요 며칠 리액션이 원활하지 않아서, 혹시 내가 뭐 기분 나쁜가 당신이 오해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당신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내 문제라는 것!
이런 적이 있었어. 우울증이 생기기 전 일이야.
딸이 7살쯤?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딸이 방에 와서 귀찮게 구는 거야. 아이는 아빠더러 같이 놀자는 거지만, 스트레스 꽉 채워 일하고 있는 나는 그럴 겨를이 없지. 나는 아이에게 무심했고, 딸은 그날따라 집요했어.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벼락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 환상이 보이는데, 정말 선명하게 내가 딸에게 소리 지르며 행패부리는 모습인 거야. 내 마음이 그대로 형상화되어 나타난 거지.
나는 너무 놀라서 숨을 몰아쉬었어. 내가 실제로 아이에게 행패를 부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이도 뭔가 이상한 기색을 느꼈는지 잠자코 보기만 하고. 그렇게 있다가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이 부분은 정확하지는 않음) 말했어.
“아빠가 요즘 바쁘고 힘들거든. 그러니까, 아빠가 가라고 하면 가야돼. 알았지?”
내 진심을 알아들었는지, 아니면 평소와 다른 내 태도에 겁먹었는지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을 나갔어.
사랑하는 여편!
나는 딸에게 화를 내는 아빠가 되기 싫어. 마찬가지로 당신에게 다정하지 않은 남편이 되기 싫어. 어떤 경우라도.(만약 그런 일이 있었다면 사과할게. 용서해줘.)
옛날 일을 얘기한 이유는 요 며칠, 불쑥불쑥 짜증이 나를 괴롭히기 때문이야. 당신하고 전혀 상관없이 짜증이 나고, 내 우울증의 대표증상 ‘이제 그만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올라와. 매사가 허탈하고 무가치하게 느껴져.
지금은 그런 정도로 심하진 않은데, 뭘 하는 게(아무리 사소한 행동이라도)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해. 숨 쉬는 것도 힘들 정도로 에너지는 소진되어 있는데 말이지.
아직은 괜찮아. 야생마를 통제하듯이, 나는 내 우울증을 종제하는 중이야. 만약 통제가 어려워지면, 그래서 당신에게 화를 낼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얘기를 할게.
“피해! 폭탄이야!”
그 폭탄이 터져서 비록 나는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당신에게 상처를 입히지는 않을 거야.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발생하면?
분명히 말할게. 그건 내가 아냐. 모습만 똑같지 속은 다른, 진짜 나는 이미 죽고 감염된 좀비일거야. 그러니 무조건 데리고 제주도로 가. 서귀포 고근산 정상 벤치에 데려가면 좋아할 거 아냐? 좀비라고 해도 눈앞의 한라산 전경을 보며 신나하겠지. 그리고 얼른 혼자 내려와. 그건 진짜 내가 아니니까 마음 아파하지 말고.
사랑하는 여편!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몰라. 우울증의 본질이 ‘살 이유가 없다’는 거고, 그 결론은 변하지 않지. 다만 살아야 하는 작은 이유라도 있어야 하는데, 당신은 내 존재의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주었으니까.
당신이 내 존재 이유인데, 당신 마음을 상하게 한다면 그건 내가 아니지.
그러면 나는 혼자 어딘가에 앉아 이런 노래를 부르고 있을 거야.
어떻게 돌아왔는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예감할 수 없었던 이별이었기에
무슨 말을 했는지 그저 눈물만 흐르네요
믿을 수가 없었던 이별이었기에
무슨 이유로 떠나야했나요
나보다 더 나를 사랑했던 그대가
왜 나를 떠나야했는지...
--- 내 우울의 끝이 어딘지 몰라 더 우울한 남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