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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Mar 22. 2022

동생에게 11; 선악과는 남겨두자

 imdb라고 역대 영화 랭킹을 매기는 사이트가 있어. 전 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올 타임 베스트 영화를 집게하고 있지. 그 중 1위는 <쇼생크 탈출>이고, 2위는 <대부> 3위가 <다크 나이트>야.   

  

동양권 영화로 제일 높은 순위는 <7인의 사무라이>라는 일본 영화야. 20위. 그 다음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31위. 그리고 우리나라의 <기생충>이 35위에 랭크되어 있지.    

 

<7인의 사무라이>의 대략 내용은 이래. 마을에 전쟁이 나고, 사무라이들을 고용해서 전쟁을 치르게 되지. 영화는 사무라이의 싸움을 중심에 다루는데, 영화 마지막 전쟁이 끝나고 인상적인 장면이 나와. 마치 비가 그치고 해가 나자 비를 잊은 사람들처럼, 마을은 사무라이를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지. 쓰고 난 휴지를 버리듯이 사람들은 사무라이를 잊어버려. 말 그대로 ‘복된 무관심’이지.     


우리나라도 막 대통령 선거라는 전쟁을 마쳤지. 그러나 우리는 <7인의 사무라이>속 마을사람들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것 같네? 알고 보니 그냥 지저분하고 힘겨운 전투가 하나 끝난 거였어. 지겨운 전쟁은 아직 안 끝난 거고.   

  

“오빠한테 실망이야.”   

  

네가 대선이 끝나고 극심한 충격과 후유증을 겪었다고 할 때 나는 조금 의외였어. 너도 나처럼 대리 싸움을 지켜보는 마을사람인 줄 알았는데 참가자였던 거지. 그제야 네가 이재명을 찍으라고 거듭 말하던 것이 의례적인 게 아니라 네 나름 전투의 방법이었다는 게 이해가 됐어.

그것도 모르고 나는 대수롭지 않게 내 뜻을 말했지. 심상정 찍을 거라고.   

  

미안.

미안해.

솔직히 나는 너처럼 간절한 전투의 심정이 아니었어. 그저, 네가 짬뽕 먹으라고 하는 걸 ‘난 짜장’이라고 하는 정도의 마음이었다고나 할까. 네가 정말 내가 먹기를 원한다면 그게 뭐 어려운 일이겠어? 너를 위해서라면 불짬뽕, 마라탕도 먹을 수 있어.

네가 그 전쟁에 깊숙이 몰두해 있고, 그 승패가 네게 큰 영향을 주리라고 생각지 못한 나의 무심함 사과할게.     

네가 나에게 실망한 이유가 그런 네 마음을 살피지 못한 것 때문이라면, 우리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갈라진 걸 탓하는 거라면 백 번 인정하고 받아들일게. 내가 부족했던 거니까. 100% 수긍!     


그런데 만약 다른 이유가 있다면, 나의 생각이나 노선이 너와 다르기 때문에 실망이라면 그건 문제가 있어. 우리는 마음대로 사고하고 행동할 자유가 있고, 그런 다양성과 역동성이 우리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왔으니까.     


실망했다는 건 마음이 떠났다는 말이고, 사랑이 끊어졌다는 말이지. 가족의 관계성보다 사상적 당파성이 더 중요해졌어. 종종 그렇게 이념은 사랑보다 강하지.  

   

어쩌다 나온 말로 꼬투리 잡는다고 생각하려나? 물론 내가 약간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도 맞아. 어느 정도는 의도적인 도발이라고 할까? 네가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에. 미리 딴지를 거는 거지.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    

 

최근에 윤석열이 청와대 이전 문제로 언급해서 화제가 된 말인데, 나도 비슷하게 말을 해볼게.     


“말이 내면의식을 표상한다.”   

  

‘실망했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라는 거지. 도대체 무엇이 우리 사이에 강을 만들고, 도대체 무엇이 우리 사이를 갈라놓은 것일까?    

 

...야훼 하느님께서는 보기 좋고 맛있는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그 땅에서 돋아나게 하셨다. 또 그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돋아나게 하셨다.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데려다가 에덴에 있는 이 동산을 돌보게 하시며

이렇게 이르셨다.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마라. 

그것을 따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는다."     

여자가 그 나무를 쳐다보니 과연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 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따먹고 같이 사는 남편에게도 따주었다. 남편도 받아먹었다.

       ...창세기 2장 9절, 3장 6절 (공동번역)    

 

선악과는 세상을 옳고 그름으로 분별하는 능력을 준다. 그 능력을 갖는 순간, 세상은 명확해지고 단순해진다. 나와 남, 아군과 적군, 선과 악이 분명해진다. 대충 어울려 두루뭉술 살아가던 삶이 치열해지고 살벌해진다.     


조국 사태가 떠오른다. 진보적 지식인의 표상으로 보이던 사람이 반대파의 표적이 되어 갈가리 찢겨졌다. 그 싸움으로 인해 현 정권은 몰락의 길을 갔고, 그 싸움을 이긴 사람은 다음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불쾌한 이야기는 그만 하자. 내 말의 요지는 이런 싸움의 원인이 선악과 때문이라는 거야. 선악과를 먹은 사람들이 자신의 선악 기준을 내세워 상대방을 재단하려 한다. 내 생각은 옳고 남의 생각은 그르다. 내 생각을 잣대로 상대를 발가벗기려 한다. 좀 적당히 했으면 좋겠다. 벗기더라도 티셔츠 정도 벗기고 속옷은 남겨뒀으면 좋겠다. 강도짓을 하더라도 밥 사먹고 집에 갈 차비정도는 되돌려줬으면 좋겠다. 선악을 분별한 이후 우리는 너무 불행해졌다.     


사랑하는 동생!

네가 먹은 선악과를 뱉으라고는 안할게. 이제 그만 먹고 내려놔. 세상의 옳고 그름은 정치가와 언론에게 맡기고, 시시비비 판단은 역사와 판사에게 맡기자. 우리가 할 일은 서로 아끼고 격려하고 사랑하는 거야. 앞으로 선거 있으면 네가 찍으라는 사람 찍을 테니 이제 그만 아파하고 힘을 내. 나한테는 심상정 천 명보다 너 하나가 만 배는 더 소중하니까.  

   

그리고... 

생일 축하해. 

3월에 핀 꽃!

종합검진도 꼭 받고. 어떻게 아직 건강검진을 한 번도 안 받을 수 있지?

네 아름다운 존재가 나포함 여러 사람에게 큰 힘이 된다는 것 잊지 말고.

건강하게, 신나는 하루 보내기 바래.     

       ...우울증이 심해지니 동생의 존재가 더 크게 느껴지는 오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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