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쓰는 편지7; 어떻게 살 것인가?

by 천하태평

* 이 편지는?


*** 인간이 다른 동물과 가장 다른 점의 하나는 ‘질문을 한다’는 것입니다. ‘왜?’라는 의문...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원동력입니다. 70억의 인간들이 셀 수 없이 많은 질문들을 하며 살아가지만, 그 모든 질문들의 핵심을 정리해보면 거의 세 가지로 모아집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왜 사는가?)”

자본주의가 지구를 지배하는 유일한 이데올로기인 이상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어져버렸습니다. 유일무이한 목표,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근본적인 질문인 ‘왜 사는가?(나는 누구인가?)를 미뤄두고 나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이 남습니다. 자본주의적으로 얘기하면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쓸 것인가?‘입니다.

어떻게 버느냐도 중요하고 어떻게 쓰느냐도 중요합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옛말이 있지만, 이젠 틀린 말입니다. 개처럼 벌면 개같이 살고, 정승처럼 벌면 정승처럼 삽니다. 흙수저로 벌면 흙수저로 살고, 금수저로 벌면 금수저로 삽니다.


배우 황정민이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올렸을 뿐’이라는 수상소감으로 감동을 준 적이 있습니다. 그 감동은 숟가락을 올린 일이 별거 아니라는 그의 겸손함에서 온 게 아니라, 밥상을 잘 차려준 많은 흙수저들에 대한 감사함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는 일은 달라도, 우리 모두 같이 밥상을 차리고 같은 상에서 밥을 먹는 동반자라는걸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함께 갑시다! ***


사랑하는 딸!
아침에 밥 먹으면서 네가 태권도장 친구 얘기를 했지? 그 애 삼촌이 유명 IT회사 부사장인데 아파트가 두 채고, 네 친구한테도 아파트를 주었다고.
그때 아빠는 그게 바르지 않다는 뜻의 말을 했는데, 혹시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다시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해.

아빠 말의 요지는 그거였지.
그런 식의 증여는 부자들이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흔히 쓰는 수법이고, 정상적인 증여라고 하더라도 어린이에게 거액을 상속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 어린 나이에 거액의 재산을 갖고 있으면 누가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려 하겠느냐. 그건 성취동기를 박탈하는 것이다. 오히려 사회에 재투자하거나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재분배하는 방법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반대로 얘기해 보자.
내가 내 능력으로 많은 돈을 벌어서, 내 맘대로 쓰고, 내 맘대로 주는데 그게 무슨 문제냐? 어차피 세상은 능력사회고, 능력만큼 인정받고 대우받는 것이 정당한 거다. 열심히 일해도 조금밖에 벌지 못한다면 누가 열심히 일하려고 하겠느냐. 왜 내가 애써 번 돈을 남에게 나눠줘야 하느냐. 분배의 문제는 각자 해결해야 하는 거고, 부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불합리하다...


이런 입장의 차이를 옳다 그르다의 문제로 돌리면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아.
욕하는 것은 쉬워. ‘가난한 자들의 불평이고 투정’ ‘현실을 무시한 사회주의자 같은 공상’이라거나, ‘부자들의 탐욕’ ‘타락하고 무책임한 부르주아’라고 말한다고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남을 나와 상관없는 타인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으로 봐야 해결책이 나오지. 좌우의 손을 잘 어울려 잡으면 깍지가 되지만, 각자의 입장만 고집하고 잡으려 하면 서로 부딪쳐 소리가 날 수밖에 없잖아.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화합할 수 있을까?
‘좋은 것을 좋다고 인정하는 것’이 우선 중요해. 옳고 그름은 도덕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필요로 하지만, 좋고 싫음은 감정적이고 체험적인 느낌에서 오는 거야.

예쁜 것? 어떤 걸 예쁘다고 느끼느냐는 각자 다르겠지만, 어쨌든 예쁜 건 좋은 거지.


돈 많은 것, 공부 잘하는 것, 키 큰 것, 말 잘하는 것, 몸 건강한 것... 우리가 흔히 좋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좋다’고, 바람직하다고 인정하는 것이 출발점이 되어야 해.

사람은 누구나 부자이고 싶고, 키 크고 잘생기고 싶고, 건강하고 싶고,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 너도 네가 지혜롭고, 유머도 풍부하고, 배려심도 많고, 부지런하고, 창의력도 풍부하고, 머리도 좋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니?


언젠가 TV에서 ‘남자 키가 180cm 이하면 루저(패배자)’라고 누가 말해서 크게 화제가 된 적이 있었어.
좋은 것을 좋다고 말하면 문제가 안되는데, 그것에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나쁘다’고 말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시작되는 거야. ‘선(善)’에 대립되는 ‘악(惡)’이 생기는 거지.

모두 좋은 쪽만 바라보면 120cm의 키도 좋은 거지만, 우열의 개념이 생기면 적대적이 되고 싸움이 나게 돼.

대충 ‘키 작으면 루저’라고만 했어도 욕을 덜 먹었을 텐데, ‘180cm'라고 못을 박으니까 거기에 미달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서 들고일어난 거야. 멋모르고 진실의 봉인을 풀었다가 큰 코를 다쳤다고나 할까?


간단히 정리를 해보자.
넌 부자가 되고 싶니 가난하게 살고 싶니? 건강한 몸이 좋니 병이나 장애를 갖고 사는 게 좋니?

누구나 부자가 좋고 건강한 게 좋다고 할 거야. 문제는 그렇지 않은 쪽을 나쁘다고 보면서 시작되는 거지.

학교가 1등부터 꼴등까지 성적순으로 서열을 매기듯이, 사람도 서열이 매겨지고 우열이 갈라지는 거야.
일단 편이 갈리면 별 수 없어. 자기편을 위해 싸워야 해. 지켜야 하고, 이겨야 살아남으니까.


사랑하는 딸!
어차피 세상은 힘의 논리로 움직이게 되어있어.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으로 이제 자본주의는 이 행성의 유일무이한 진리가 되었고, 그 중심에는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이런 개그, 재미 없나...?)가 자리 잡고 있지.

돈이 곧 힘인 세상이 된 거야. 공부를 하건 일을 하건, 그 최종 목적지는 돈이야. 돈을 잘 버는 직업을 갖기 위해 공부를 하고,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 일을 하지.


잘못된 현상이지만 엄연한 현실이니까 인정을 하자.
모두가 돈을 향해 질주하는 이 달리기 시합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키 180cm 이하는 루저라고 하듯이 월급 300만 원 이하는 루저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해놓고, 내 식구들이 루저가 되지 않게 하려고 갖은 수단을 다해 돈을 모으려고 해야 할까?
그것보다는, 앞선 사람은 겸손과 베푸는 미덕을 배우고, 뒤진 사람은 긍정과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는 자세를 가지면 좀 더 세상이 좋아지지 않을까?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할 수는 있어도,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사랑하기는 힘들다는 말이지.

우리의 달리기도 마찬가지야. 우리의 삶이 평화롭고 행복한 달리기가 되기 위해서는 앞선 사람이 뒷사람과 보조를 맞추려는 자세를 가져야지, 뒷사람에게 빨리 따라오라거나 알아서 쫓아오라고 하면 살벌하고 거친 달리기가 될 수밖에 없어.


부자가, 기득권자가, 자본가가, 권력자가 여타 이웃을 배려하고 도와주려는 자세를 가져야 비로소 세상은 아름다워질 거야.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아파트 한 채 더 사두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여유돈을 어떻게 사회를 위해 쓸까를 고민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얘기지.


전에 경주 최부자집 얘기를 한 적 있는데 기억나니? 그 집에 가훈이 여섯 개가 있다고 해.

첫째,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마라.
둘째, 만석 이상 재산 모으지 마라.
셋째, 흉년에 남의 땅을 사지 마라.
넷째, 과객을 후히 대접해라.
다섯째, 시집 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여섯째,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아름답지 않니? 꼭 시를 읽는 기분이야! 부디 너도 이런 아름다운 마음을 간직하고 살기를...!
아빠의 가훈을 들자면 ‘네 재주로 남을 이롭게 하라’와 ‘애쓰지 마라’ 두 가진데, 최부자집 가훈에 비하면 정말 썰렁하고 초라하네. 그래서 아빠는 부자가 아닌가봐...^^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돈 많은 것이 좋은 것이고, 키 큰 것이 좋은 것이고, 공부 잘하는 것이 좋은 것이고, 달리기 잘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문제는 그 좋은 것을 가졌을 때 어떻게 하느냐야. 자동차를 잘 사용하면 아주 편리한 교통수단이지만, 잘못 사용하면 위험한 살상 흉기가 되는 것과 똑같은 거지.

우리가 도덕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도덕이 바로 자동차 운전의 규칙과 같기 때문이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좋은 것을 가지고 바르게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표현한 말이야. 부단히 공부하고 반복해서 닦지 않으면 더러워지고 썩게 마련이라는 거지.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딸!
아빠도 네가 부자로 살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 애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어차피 네가 최부자집 딸로 태어난 게 아니니까, 그냥 아빠의 가훈대로 살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
네가 가진 좋은 재주로(그게 뭘지 아빠는 정말 궁금해!)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도와주고, 즐겁게 살 수만 있다면 부자가 아니면 또 어때?

능력 밖의 일을 하려고 애쓰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면 그걸로 족하지.

사랑하는 딸이 그 재주로 남을 이롭게 하는걸 빨리 보고 싶은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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