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쓰는 편지9; 사람이 어떻게 변하니?

by 천하태평

* 이 편지는?


*** 딸아이한테도 늘 하는 얘기지만, 저희 딸의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적극성’이라고 말합니다.

적어도 중학교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변했습니다.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를 거치면서 소극적이 되고 말이 없어졌습니다. 가장 큰 장점이 사라졌습니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유지태가 절망하듯 내뱉던 그 심정에 공감합니다. “사랑(사람)이 어떻게 변하니?”


어쩌면 변한 것은 아이가 아니라 저희 부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제 여편은 엄마이고 초등학교 교사이기 때문에 좀 다릅니다만), 어려서 아이가 하려는 모든 것을 막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생명에 지장을 주는 게 아니라면 허락하겠다’는 게 나름의 원칙이었거든요.


그러다가 가기 싫어하는 영어학원을 보내면서 아이를 강제하기 시작했지요.

아이는 나름 열심히(적극적으로!) 저항을 했습니다. 억지로 떠밀어 학원에 보내면 수업에 들어가지 않고 계단에 앉아 있다가 발각되거나, 잘 다니던 학교를 갑자기 안 가고 잠을 자며 버티거나, 밤 10시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아서 경찰에 신고하고 온 동네를 찾아다니게 만들었습니다. (다시 그 때를 돌이켜보니 제가 잘못했다 싶네요. 아이를 위해서 한 일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이에게 상처를 주고만 건 아니었는지...)


어떻게 하는 게 가장 아이를 위한 일일까요? 저희는 아이가 하나뿐이라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가 셋쯤 된다면, 그리고 지금부터 둘째를 키우게 된다면, 이번에는 그냥 아이 하려는 대로 놔두고 싶습니다. 그렇게 커서 마흔쯤까지 별일 없다면, 다음 셋째는 그렇게 키우고요.


...그렇게 안될까요? ***


사랑하는 딸!
오늘 합창대회는 어땠니? 아침에 그 얘기하면서 ‘설레임’ 때문에 같이 웃었는데, 오후에 보니 또 ‘설레임’ 먹데?

이번엔 왜 학교에서 안 먹고 집에 가지고 왔을까?


어제 수업시간 중에 교실로 ‘설레임’이 배달되어 왔다고 했지. 너희 반에는 합창단원이 너밖에 없었으니 당연히 ‘설레임’도 한 개!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을 테고, 엄마와 아빠는 그때 네가 어떻게 먹었어야 하는지 흥분해서 떠들었지.

‘최대한 천천히’ ‘잘 보이도록 높이 들고’ ‘마지막 한 방울까지’ ‘음미하면서 맛있게’ 먹었어야 한다고...!
정작 먹은 너는 그냥 웃기만 했으니, 실제로 어떻게 먹었는지는 알 수가 없네? 어쨌든, 그 ‘설레임’은 네가 열심히 학교생활을 한다는 증거이고 격려이고 상품이니까 얼마든지 뽐내면서 먹어도 된다고 생각해.


엄마가 항상 말하지? 네 가장 큰 장점은 ‘적극성’이라고. 학교에서 선생님이 ‘이거 할 사람?’ 하면 넌 항상 손을 들잖아. 아빠가 공개수업 가봐도, 선생님의 질문에 너는 항상 번쩍 손을 들어 대답을 하려 하지. 게다가 너는 공부 이외의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해. 이번 합창대회도 그렇고, 작년 운동회 때 치어리더도 그렇고. 5, 6학년 20명 정도 되는 치어리더 중에서도, 너의 춤솜씨는 단연코 최고였어!

이건 냉정하게, 최대한 객관적으로 하는 얘기야.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다면 증거를 댈 수도 있어. 촬영한 게 있으니까! 보통은 음악에 맞춰 배운 동작을 흉내내는데, 너는 동작을 완전히 네 것으로 만들어서 음악에 몸을 실었지. 오죽하면 네 작년 담임선생님께서 ‘깜짝 놀랐다’고 말씀하셨겠니.이번 합창대회 역시 훌륭하게 잘했으리라고 믿어.


가만히 생각해보면, 너의 적극성은 태어날 때부터 증명이 된 거였어. 원래 네 출생예정일은 6월 중하순쯤(잘 기억 안남. 엄마한테 혼나려나...?)이었는데, 아빠는 계속 6월 6일에 나오라고 강조했지. 6월 6일은 현충일이고 공휴일이잖아.

아빠의 말대로 너는 일찍 나왔지. 그런데 6일이 아니라 5일에. 좀 더 적극적으로...

태어나던 때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였어.
밤중에 산통이 시작돼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 말씀이 ‘아직 멀었으니 나중에 다시 오라’는 거야. 그래서 다시 집으로 왔지. 집에 와서 얼마지 않아 산통이 심해져서 다시 갔는데, 그때 의사 선생님 말이 뭐였는지 아니? 그 사이 진행이 많이 됐다고, ‘아이가 액티브하다’는 거야!

세상에! 네가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들은 소리가 바로 ‘액티브하다(적극적이다)’는 말이야! 대단하지 않니? 너는 그야말로 ‘내추럴 본 액티브 퍼슨’이야!


사랑하는 딸!
인생이 두 바퀴로 가는 자전거라면, 한 바퀴는 분명히 ‘적극성’ 일 거야. 적극성이 있어야 움직이는 힘이 생길 테니까. 그렇다면 다른 한 바퀴는 무얼까?


아빠는 ‘목표의식’, 혹은 ‘꿈’이라고 생각해. 꿈과 목표가 있어야 방향이 정해지니까. 방향이 없이 움직이면 사방으로 헤매다가 끝나버리고 말지. 분명한 꿈과 목표가 있을 때, 인생이라는 자전거는 힘차게 앞으로 달려 나갈 수 있어. 부디 너의 꿈과 목표를 잘 찾아내기를...!

이제 밤 열두 시를 넘겼으니 6월 5일, 네 생일이 되었네? 우리 딸의 열세 번째 생일을 제일 먼저 축하하게 돼서 아빠는 행복하다.
생일 축하한다! 생일 축하 선물로 시 한 편 전해줄게.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13년 전 오늘,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된 딸아... 사랑한다!!!

늦게나마 적극적으로 딸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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