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농담 삼아하는 얘기 중 하나가, 중고등학교에서 제일 중요하게 가르쳐야 할 것은 입시과목이 아니라 요리법과 대화법과 성교육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사는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게 또 있을까요?
성교육 문제는 참 심각합니다. 학교에서는 형식적인 지식교육만 하고 있고, 아이들은 비정상 경로를 통해서 성에 대한 정보를 습득합니다. 거기에다가 각종 매체들은 자극적인 성적 표현으로 민감한 아이들을 흔들어대지요.
그렇다고 부모가 직접 성교육을 하는 것도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일단 엄마 아빠들도 성에 대해 잘 모르고, 알고 있는 것도 막상 얘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어떤 엄마 아빠는 아이들에게 직접 성행위 장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교육 삼았다고 하니 그 상황의 심각함을 짐작할 만합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남자는 화성인이고 여자는 금성인입니다. 다른, 전혀 다른 종족입니다.
결혼은 화성인과 금성인이 같이 사는 일이고, 섹스는 그 두 사람을 연결시키는 통로입니다. 서로 다른 둘이 소통하고 화합하는, 그래서 궁극적으로 하나가 되려 하는 과정인 거지요.
하지만 그게 잘 될까요? 대개의 경우 잘되고 있지 않고, 오히려 더 나빠지고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이가 사춘기를 통과하여 어른으로 자라 가는 요즘, 그래서 걱정거리가 하나 늘어납니다. 성 문제는 잔소리로 거들기도 난감한 문제 아닙니까?
더군다나 제 아이는 딸이고 저는 아빠입니다. ***
사랑하는 딸! 여성으로서 생리를 시작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야.
인간 삶의 사건을 생물학적으로 나눈다면 단 네 가지밖에 없어. 태어남, 초경, 출산, 죽음... 너는 벌써 생물학적 인생의 절반을 완수하고 있는 거잖아! (여성에게 초경이 새로운 출발이라면 남성에게는 몽정이 될 거야. 초경이 난자가 만들어졌음을 알리는 신호인 것처럼 몽정은 정자가 만들어졌음을 알려주는 거지.)
생리를 한다는 것은 출산을 할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야. 출산은 생물체로서의 인간이 가진 최대 의무이기도 하지. 종족을 유지해야 할 의무. 출산을 하기 위해서는 임신이 필요하고 임신은 난자와 정자가 수정을 해야만 성립이 되지.
교미, 성교, 섹스, 짝짓기 등의 용어가 사용되는 것도 이 때야. 대개의 동물들은 본능에 충실해서 주어진 의무를 이행하지만 우리 사람은 그럴 수 없지. 사회적 규범과 도덕과 이성과 감정이 본능과 충돌하고 여러 복잡한 문제들이 생겨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잖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흔히 섹스라고 말하는 인간의 성교(性交)가 문제 되는 것은, 사람은 여타 동물과 달리 생식을 목적으로만 섹스를 하지 않는다는 거야.
임신을 위해서가 아닌 순수한 성적 쾌락을 위해서 섹스를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고 더 중요해. 조물주의 입장에서는 본말이 전도됐다고 할 수 있지. 종족 번식을 위해 남녀가 섹스를 하게 만들었고, 혹시 안 하는 일이 생길까 봐 성적 쾌락을 주어서 섹스를 유도했지. 약에다가 달콤한 사탕을 발랐다고 할까?
그런데 인간이 달콤한 사탕만 먹고 속의 쓴 약은 버리는 경우가 많아진 거야. (그래서 가톨릭의 경우는 여전히 쾌락을 위한 섹스는 금하기도 해. 당연히 피임도 금지야.)
육체적 본능과 성적 쾌락이라는 이중구조는, 마치 두 마리의 야생마가 이끄는 마차를 타고 달리는 것처럼 다루기 힘든 상황을 만들어냈어. 때로는 육체가 정신을 불러내고, 또 때로는 정신이 육체를 유혹하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은 시도 때도 없이 성적 자극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을 맞이한 거야.
(이러한 시달림은 남성의 경우가 훨씬 심한데, 이 또한 생물학적 특성 때문이야. 수정을 하려면 정자가 난자에게 가야 해. 애초부터 남성이 공격적이 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얘기지. 사춘기 청소년의 경우에 생물학적 능력은 급격히 증가하는데, 이를 컨트롤하는 정신력이 미처 성숙하지 못해서 애를 먹게 돼. 자칫 잘못하면 비행 청소년으로 빠지게 되는 거야.)
더 단순하게 얘기해 볼게.
본능은 생각이나 감정이 없어도 저절로 작동한다. 사람의 몸은 생식 본능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섹스가 가능하다. 생각과 감정이 반대하더라도 몸이 강력하게 성적 욕망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이지.
(사랑 없는 섹스가 가능하냐는 논쟁을 가끔 하는데, 아빠의 생각은 ‘당연히 가능하다’야. 본능은 타고난 거니까. 문제는 그 본능을 어떻게 컨트롤할 것인가 하는 점이지.)
여기에다가 쾌락의 추구가 미의 추구와 함께 인간의 독특한 미덕으로 칭찬되면서, 섹스의 3종 세트가 완성되는 거야. 본능과 쾌락과 사랑이라는 3종 세트.
사랑하는 딸!
두 개의 상영관이 있네? 하나는 18금 성인관이고 또 하나는 청소년관. 아직 너는 성인이 아니니 오늘은 청소년관만 살펴보기로 하자.
성문제는 워낙 복잡하고 다양하기 때문에 나누어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 각종 사회적 이슈들(동거, 결혼, 자위, 동성애, 성폭행, 강간, 매매춘 등등...)이 모두 이 3종 세트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니까.
먼저 섹스에 대해서.
아빠는 청소년의 섹스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청소년은 육체적으로는 성인에 가깝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 불안한 시기지. 그러한 불균형 상태에서는 섹스의 경험을 충분히 컨트롤하기 어렵다는 게 아빠 생각이야.
섹스는 기본적으로 임신을 전제로 하는 거야. 당사자들이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생물학적으로 섹스는 임신을 위해 만들어졌으니까. 그런데 청소년기의 섹스는 대부분 충동적이고 즉흥적으로 이루어지기 쉽기 때문에
임신에 대한 대비가 어렵지. 원치 않는 임신의 위험성이 매우 클 수밖에 없어.
인간의 여러 본능 중에서도 성본능은 가장 강력한 본능이야. 임신을 해야 하니까. 아니면 멸종이 되니까.
그만큼 강력한 파워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섹스의 경험이 주는 충격 또한 강력하지. 그러나 그 충격을 잘 흡수하기에 청소년기는 아직 취약한 시기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잖아. 어느 정도 정신적으로 안정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해. 기다리라는 말을 ‘무조건 참아라’라는 말로 해석하지는 말아줘. 참는 것은 억압이지만 기다리는 것은 행복한 거야.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사막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이렇게 말하지.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행복해지겠지."
심리학에서 말하는 ‘욕구 충족 지연(delayed gratification)’으로도 설명이 가능해. 달성 가능한 욕망을 일정한 시기까지 의식적으로 미룰 수 있는 정신력.
머시멜로 이야기 알지? 눈 앞의 머시멜로를 먹어버리면 그걸로 끝이지만, 먹지 않고 기다리면 더 많은 머시멜로를 얻을 수 있잖아.(그러면 성욕이 성인이 되었을 때 오지 않고 왜 사춘기에 미리 오느냐고?
세시라는 신호지. 앞으로 한 시간 동안 성인이 될 준비를 하라는 신호...)
본능(생식)으로서의 섹스는 성인이 되어야 가능하고 쾌락으로서의 섹스는 자기통제의 훈련이 더 필요하다면, 사랑으로서의 섹스도 성인이 될 때까지 유보되어야 할까? 청소년은 흔히 말하는 ‘플라토닉 러브’만 해야 하는 걸까?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섹스에 관한 한 남자를 믿지 말라는 것!
남자는 종족번식의 임무를 안고 태어났기 때문에 기회만 있으면 임무를 완수하려고 하게 되어 있어. 결정적인 순간에 믿음을 배반할 가능성이 늘 존재한다는 얘기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그럴 기회를 아예 만들지 않는 게 좋고, 부득이하다면 가벼운 입맞춤 정도가 가능한 애정표현의 방법이 아닐까 해.(지나치게 보수적이라고 비난해도 할 수 없어. 생리를 한다는 것은 임신이 가능하다는 말이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여성 자신이 질 수밖에 없거든.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게 남자라는 얘기지.)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딸!
생리를 한다는 것은 성인이 되어간다는 것이고, 성인(成人)이란 말뜻 그대로 완성된 사람이란 뜻이잖아. 생리는 육체적으로 완성되고 있다는 신호인 셈이지.
생리에 대해서 비하하는 말을 가끔 듣는데 아빠 생각은 전혀 달라. 불편할 순 있지만 그게 열등하다는 뜻은 아니지. 오히려 그 불편함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환기시켜주고 몸과 마음과 생활에 대해 살펴보는 계기가 되니까 좋은 거라고 봐. (자동차라고 치면 군데군데 설치된 신호등이라고 할까. 생리라는 신호등이 없는 남성은 과속하기 쉽고 사고의 위험이 아주 크지.) 자부심을 가지라는 얘기야.
아빠는 생리를 하지 않으니까 사실 네가 느끼는 감정이나 생각을 제대로 알 수가 없어.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보면 이런 말이 나와.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아빠는 기껏해야 애정을 가질 수 있을 뿐이지만, 엄마는 너하고 입장이 동일하잖아. 최고 형태의 관계에 있는 거지. 이 문제에 관한 심도 있는 얘기는 엄마하고 나누도록!
딸과 최고의 관계에 있는 엄마가 문득 부러워지는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