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쓰는 편지21;지금이라도 말할게요 ‘고맙습니다'

by 천하태평


지금이라도 말할게요
‘어머니 고맙습니다’


* 이 편지는?


*** 중학교 땐지 고등학교 땐지 확실치 않은데 제가 나쁜 짓을 하다가 정통으로 걸린 적이 있습니다. 성적 호기심이 한창 솟아오르던 때라 이웃집을 엿보다가 정말 ‘딱!’ 걸렸습니다.
밤에 잠이 안와서 마당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옆집 부엌에서 촤르르 촤르르 물소리가 나는 겁니다. 누군가 목욕을 하고 있었던 거지요. 집 마당으로 옆집 부엌 창문이 나있었기 때문에 의자정도만 있으면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현관에 있던 작은 거울을 이용해서 옆집 부엌을 보기 시작했는데, (불행히도!) 처음 순간에 목욕하던 옆집 아줌마 눈에 딱 걸리고 말았습니다.

부리나케 방에 들어와 자는 척했지만 제 마음은 이미 지옥이었습니다. 불행중 다행으로 당장 쳐들어와서 한밤중 소란을 일으키진 않았지만, 다음날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불을 보듯 뻔했습니다.
트라우마처럼, 어려서 아버지에게 호되게 맞은 기억이 있는데 저는 이번에도 그럴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거짓말한 죄였는데 이건 거짓말보다 더 험한 죄 아닙니까? 밤새 고민한 저는 만약 다시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땐 가출하리라 결심했습니다.

다음날이 휴일이었는지, 옆집 아줌마가 집에 찾아왔을 때 저는 제 방에 있었습니다. 아줌마는 어머니에게 ‘바로 이 거울이다’ 뭐 그러면서 얘기했고, 어머니는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던 것 같습니다.
혹시 불려나갈까 조마조마했으나 저를 부르시지는 않더군요. 그리고 그게 끝이었습니다.

정말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한번도 그것에 대해서, 심지어 아줌마가 왔었다는 얘기도 한 적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시치미 뚝’이었습니다. 출발선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육상선수처럼 가출할 준비를 하고있던 저는 몇일 눈치를 보다가 평소 모드로 돌아왔습니다.

사실 오랫동안 궁금했습니다. 어머니는 왜 저에게 아무 말도 안하셨는지, 아버지에게도 얘기를 안하셨는지, 일부러 그러셨는지 바빠서 잊어버리셨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다보니 조금씩 알아지는게 있습니다. 그건 ‘부모님은 자식들에 대해 자식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알고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모르는 체 할 뿐인 거지요.
잘한 것은 열심히 말씀하시지만, 잘못이나 흠은 되도록 감추는게 부모님들의 마음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 은혜가 크게 느껴지나 봅니다.

코스모스를 좋아하시는 우리 어머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말할게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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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빠가 무뚝뚝한 사람인거는 사실인가봐. 보통 가까운 사이에는 특별한 용건이 없어도 전화를 자주 하는데, 아빠는 용무가 없으면 거의 전화를 안하니까.
고모부는 고모가 할머니댁에 와 있으면 수시로 전화를 해대서 할머니한테 흉잡히고(‘저렇게 전화 하느라고 일은 언제 한다니?’), 이모부도 근무 중에 자주 전화를 하시잖아. 근데 아빠는 밖에서 엄마나 너한테 괜히 전화하는 경우가 별로 없지.

아빠가 용건없이 전화하는 유일한 사람은 할머니야. 매일 문안 전화 드리니까...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니까 일년 반 정도 됐네?
처음에는 할머니께 위로가 될까해서 전화를 드렸는데, 이제는 할머니 목소리를 안 들으면 아빠가 마음이 안놓여. 할머니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빠 스스로를 위해서 전화하는 셈이지.

이번 할머니 생신때였나? 할머니가 너한테 그러셨지. 빨리 대학생 되어서 할머니하고 같이 살자고...
너는 그냥 우스갯소리처럼 받아넘겼지만, 아빠는 그 말 듣고 한동안 우울하고 슬펐어. 외롭다는 뜻이잖아.
말씀 하시기는 같이 살면 불편해서 혼자 산다고 하시지만 사실은 자식들하고 같이 살고 싶으신거야. 오죽하면 손녀딸한테 같이 살자고 하시겠니? 너 대학 가려면 아직 6년이나 남았는데.

할머니 모시는 문제는 현재 아빠가 안고 있는 가장 큰 숙제의 하나야. 아빠 마음으로는 당장이라도 모시고 싶지만 상황이 그렇게 쉽지 않아.
할아버지 돌아가신 후 합치자고 했을 때 할머니께서 말씀하셨지. 혼자 사시는게 편하다고. 나중에 몸이 아파서 혼자 지내기 힘들어지면 그때 합치자고.

아빠는 할머니 뜻대로 하시라고 물러났지만 사실은 그게 할머니 뜻이 아니라는걸 알지.
할머니는 자식들하고 같이 살고 싶지만 짐이 될까 두렵고 관계가 나빠질까봐 겁나시는 거야. 견딜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혼자 살아보려고 하시는 거지.
너더러 같이 살자고 하신 것은, 그래도 손녀가 제일 편하고 사랑스럽고 아직 기력이 있을 때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서 하신 말씀이야.

그런데도 합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네 학교문제 때문이야.
할머니는 교회라든가 수십년간 살아오신 터전이 있으니 갑자기 낯선 환경으로 이사하시긴 어려워. 우리가 할머니집 쪽으로 가야 하는데 너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거야.

(엄마가 다시 이쪽으로 이사오기로 한 결정적 사건, 잊지는 않았겠지?
2학년때 우리는 할머니댁 근처로 이사를 갔고, 너는 거기서 2,3학년을 보냈어. 2년동안 너는 열심히 놀았고, 늦게 들어오는 날도 있었지.
그러던 어느날, 너는 10시넘어까지 아무 연락도 없이 집에 오지 않았어. 휴대전화는 꺼져있었고, 같은 반 친구 2명을 몰고 함께 행방불명이 됐지. 요즘같이 험한 세상에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 셋이 10시 넘어서 안들어오면 그건 대형사고야.
경찰에 신고하고, 담임선생님께 연락하고, 아파트 단지에 방송하고, 엄마 아빠들은 경찰들과 함께 온 동네를 찾아다니고...
다행히 별 탈없이 찾긴 했지만, 그날 엄마는 다시 이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지.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 알지?)

구차한 변명이라고, 모시기 싫어서 대는 핑계일 뿐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어.
아빠는 단지 네가 착실히 공부를 하기를, 그래서 원하는 학교에 가기를, 그동안 할머니가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사시기를 기도할 뿐이야. 삼년이란 세월이 길다면 길지만 또 짧다면 짧은 시간이니까.

지난번에 할아버지 산소에 성묘가면서 왜 성묘를 해야 하는지 얘기한 적 있지?
너는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고, 아빠는 기억하기 위해서라고 고쳐 말했어. 할아버지는 우리집의 역사고, 아빠의 역사고, 너의 역사니까.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뭐겠어? 옛날에 이런 저런 일이 있었다는게 뭐가 중요해?
중요한 것은 옛날이 아니라 지금 현재야. 역사를 통해서 현재의 나를 살피고 돌아보라는 거야.
기념은 기념하는 대상이 중심이고(과거), 기억은 기억하는 내가 중심이지(현재).
온고지신(溫故知新)... 과거를 배워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 역사가 필요한 거야.

할아버지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야. 이미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역사를 거울삼아 나를 돌아보기 위해서야. 할아버지가 잘 살고 못 산 점을 살펴서 내가 보다 나은 삶을 사는 토대로 삼으려는 거지.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살아계신 할머니를 잘 모시는 것이, 사실은 나 자신의 인생을 존중하는 표시인 거야.
‘공부는 내 인생에 대한 예의다’라는 책의 제목처럼, 효도는 자신의 인생에 대한 예의라는 말이지.

사실 우리나라 노인문제는 정말 심각해. 어쩌면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인지도 몰라.
자식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사회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고, 당신들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려고 애쓰면서 매일매일을 살아가지.
보호받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뭐? ...돈이지. 늙어가는 나를 지켜줄 수 있는 것은 돈뿐이라고 생각하고, 내 재산이 내 수명만큼 살아남을 수 있는지 노심초사하면서 살아가는 거야.

사람의 인생은 포물선과 똑같아. 태어나서 가파른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올라가다가 30대에 이르면 완만한 각도로 상승하지. 4,50대가 되면 정점을 찍고 하락하기 시작해.
문제는 처음 올라가는 포물선은 10대까지 완전한 보호를 받지만, 하락하는 포물선은 7,80대가 돼도 보호받지 못한다는 거야.
(초등학교 무상급식이 한동안 선거이슈였던 것 아니? 초등학생 무상급식에는 대단한 관심을 보이면서도, 노인 무상급식 하자는 얘기는 전혀 없어. 요즘은 75세 이상을 노인으로 분류한다니까, 그 분들에게 점심을 무상급식하면 어떨까? 그러면 조금은 존중받는 느낌이 들텐데. 사회가 나를 보호해주는구나 하는 생각에 약간은 안심이 될 것 같은데...)

하다보니 우울한 얘기가 되어 버렸네? 하지만 너하고 살자는 할머니 말씀을 생각하면 아빠는 여전히 우울해.
할머니하고 같이 살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마음이 가슴 아파. 그 외로움이, 주고 싶고 받고 싶어도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그 마음이 아빠를 슬프게 해.
나중에 아빠가 없고 엄마가 혼자 살 때, 네 딸이 네 나이가 되었을 때, 할머니인 엄마가 네 딸한테 쓸쓸히 웃으며 같이 살자고 하면 넌 어떤 기분이겠니?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는 딸!
언젠가 큰이모가 한 얘기가 생각난다. 어떤 회의에서 총장님이 큰이모에게 자신의 출신대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더래. 큰이모는 소위 일류대학 출신이 아니었고, 그 총장님 역시 같은 학교를 나오셨지.
자칫 난감한 상황! 잠시 망설이던 큰이모는 ‘제 현재를 있게한 밑바탕이 된 학교여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라고 대답했대.
그 말을 듣고 아빠는 감탄을 금치 못했지. 절묘한 대답 아니니? 일류대학이 아니니까 자랑스럽다는 식의 얘기는 상투적인 거짓말이고, 부끄러웠지만 극복하려고 노력했다는 말은 부정하는 대답.
그때 아빠는 큰이모의 머리를 다시 한번 쳐다봤어. 어떻게 그 순간 그런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저 머릿속에는 무슨 생각이 들어있는 것일까?

너의 역사에 대해, 너의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해, 너의 엄마 아빠에 대해 큰이모와 같은 대답을 할 수 있기를!
자랑할 역사는 아니라고 해도 고맙게 생각하는 마음은 간직하기를!!
할머니를 사랑하고 기쁘게 하는 것이 너 자신에 대한 사랑의 증거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할머니의 생신을 보내며 잠시 우울해진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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