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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Jan 23. 2019

딸에게 쓰는 편지 34-스페인 여행④ 영원하라 바르셀로

사랑하는 딸!

마드리드에서 2일간의 짧은 미술관 투어를 마치고 우리는 바르셀로나로 왔어. 바르셀로나에도 이런저런 미술관들이 있지만 핵심은 역시 가우디! 하루를 가우디 투어에 투자하고, 나머지 시간들은 이것저것 보며 즐기기로 했지.


결론 삼아 말하자면, 아빠는 바르셀로나가 마음에 들었어.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어. 겨울인데 춥지도 않고, (여름에 얼마나 더운지 겪어봐야 알겠지만) 이상할 정도로 편안한 느낌이 드는 거야. 옛날 유럽 여행을 갔을 때 프랑크푸르트와 비슷한 느낌. 굳이 구분을 하자면  프랑크푸르트는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고, 바르셀로나는 친근함이 주는 편안함이라고나 할까?

아빠가 성격이 급하고 감동을 잘 받기는 하지만 어쨌든 바르셀로나, 딱 취향에 맞는 도시야. 엄마한테 '지구가 멸망하기 전까지, 뉴욕 하고 바르셀로나는 남아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는데, 진심이야. 이런 도시는 절대로 없어지면 안 돼!


바르셀로나가 없어질 수 없는 분명한 이유 두 가지.

하나는 넓게 펼쳐진 바르셀로네타 해변이고, 다른 하나는 가우디의 (그리고 그의 사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건축물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이야. '바르셀로네타 해변 정도는 여기저기에 셀 수 없이 많다'라고 말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잠깐 말을 멈추라고 해줘. 가우디와, 가우디의 건축물과, 무엇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바르셀로나 이외의 지구 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으니까. 이제까지 유일무이했고 앞으로도 유일무이할, 전무후무한 건축물이니까.


가우디 투어는 '카사 밀라'에서 시작했어. 사실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 '구엘 공원' 등 가우디의 건축물들은 너무 유명해서 보기도 전에 식상할 정도로 익숙한 것 들이지. 아빠는 '지나치게 기교적'이고, '예술가의 고집이 너무 앞서서' 약간 유치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었어. 그러나 막상 본 가우디의 작품들은 나쁘지 않았어. 낯설어 보일 것 갔았던 카사 밀라의 곡선은 자연스러웠고 우아했지. 집이 자연과 이어진 공간이어야 한다는 아빠의 지론('딸에게 쓰는 편지 23- 위대한 유산')에 매우 합당한 그런 건축이었어.


'예상보다 괜찮네' 하는 정도의 마음으로 보게 된 가우디 투어 일정의 마지막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세상에는 '경이롭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건축물들이 있지. 이집트의 피라미드, 인도의 타지마할,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잉카의 마추픽추 등은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을 줘. 굳이 우열을 따진다면 (어쩌면) 사그라다 파밀리아보다 더 훌륭한 건축물들 인지도 몰라.


아빠는 앙코르와트를 보던 때의 느낌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대체로 그 감동의 근원은 '나'라는 개체적 존재를 넘어서는 '신'적 존재 때문이야. '사소하고 별 것 아닌, 보잘것없고 금방 사라지는 나라는 존재'를 넘어서서 '영원하고 아름답고 절대적인  신이라는 존재'를 느끼게 하는 거지. 감동은 그러한 '조복(調伏)' '하심(下心)'에서 오는 거야. 대단하고 엄청난 것을 보면 느껴지는, '깨갱!' 하는 기분?


그런데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보면서 아빠가 느낀 감동은 그런 건축물들과 전혀 달라. 질적 양적으로 압도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한 땀 한 땀 쌓아 올린 그 정성과 진심이 아빠를 감동시켰어. 물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가우디 혼자의 작품은 아니야. 시작도 가우디가 한 게 아니고, 가우디가 죽은 지 100년이 더 지난 지금도 건축이 진행 중인 그런 작품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는 가우디의 마음, 가우디가 이 성당을 만들던 그 가득한 신앙와 경건함이 충만하지. 이름 그대로 '성 가족'에 대한 절절한 믿음과 경배...


그걸 '초심'이라고 말하도록 하자. 사람은 누구나 초심을 가지고 시작하지. 불교에서는 '초발심 시 변정각'이라고 해서 초심을 계속 유지하면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고 할 만큼 중요하게 생각해. 우리도 흔히 '초심으로 돌아가자' 든지 '초심을 잃었다'든지 하는 말을 많이 하잖아?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지난번 편지에서 얘기했던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을 다시 떠올려 보자. 작가가 '프랑스 군대의 침략과 학살만행을 규탄'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고 했을 때, 작가는 어떻게 그걸 관철시켰을까? 어떤 이는 세밀화로 꼼꼼하게 그 참상을 기록하려고 했을지도 몰라. 어떤 이는 당하는 스페인 국민의 분노를 강조해서 표현했을 수도 있지. 그러나 고야는 프랑스 군인의 시선을 무효화시켜버림으로써 어떤 시도보다 훌륭하게 자신의 의도를 그려낼 수 있었어. 대체로 모든 욕망의 시작은 '보는 것'에서 출발해. 보면 갖고 싶고, 거기서 모든 싸움이 시작되니까.)

물론 아빠는 가우디의 초심이 뭔지 몰라. 굳이 책 등을 통해 찾아보지도 않았으니 더욱 그렇지.

그러나 그의 작품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통해 가우디의 초심을 유추해 볼 수 있어. 건물 전체 구석구석, 한 땀 한 땀에 그런 마음이 가득 담겨 있으니까.


그게 뭐냐고?

말하지 않을 거야. 네가 직접 가서 느껴봐. 지난번 편지에서 얘기했듯이, 모든 감동은 직접 느껴보는 수밖에 없어. 말로는 설명이 안되지. 다만 앙코르와트 등과는 다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만의 독특함에 대해 말해볼게.  다른 작품들이 '개인의 존재'를 소멸시킴으로써 감동을 준다고 했지? 그런데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가우디라는 존재가 워낙 확실해서 그런지 몰라도) '나'라는 개인을 소멸시키지 않아. 신에 대한 경배는 똑같은데, 다른 건축물들이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면 사르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거야. '나'라는 주체가 확실하게 살아있는 거지.


아빠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보면서 '기적이다! 기적 같은 건축물이다!'라고 느꼈던 것이 아빠만의 생각은 아니었나 봐. 다음날 새벽, 일찍 잠에서 깨어 엄마와 어제의 일을 얘기하는 중에 엄마가 말했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안에서 햇빛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있는데, 혹시 신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아빠가 보기에는 이거야말로 기적 같은 일 아닌가 싶어. 엄마 같은 완고한 무신론자가 뜬금없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가우디의 진심이 그 순간 엄마의 마음에 어떤 작용을 일으켰다고 밖에 말할 수 없지.

엄마의 말을 들으며 아빠는 예술의 위대함을 다시 느꼈어. '신이 있다!'라고 천 마디의 그럴듯한 말로 만번 강조해 말하는 것보다 진실한 작품 하나가 그걸 스스로 느끼게 만드니까.

가우디 만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만세!! 바르셀로나 만세!!!


사랑하는 딸!

여행이란 어쩌면 '여분의 행복'이라는 말의 줄임말 인지도 몰라. 모든 일정을 마치고 다음날 저녁 귀국을 앞둔 밤에 우리 일행은 또 하나의 기적,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여분의 행복'을 맛볼 수 있었으니까.


흡족한 탓에 마음이 흐트러졌기 때문일까? 저녁을 먹는 중에 일행 중 한 명이 가방을 잃어버렸어. 여권을 비롯한 중요한 모든 것이 들어있는 가방... 여행 중에 절대로 발생하지 않아야 할 일이 일어난 거지.

망연자실... '지금 당장 마드리드로 가서 여권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등 흉흉한 말들이 들려왔어. 이쯤 되면 내일 저녁 비행기를 타는 것은 불가능하고, 일행 중 몇 명은 다시 여권을 받을 때까지 귀국을 미뤄야 하는 상황이 된 거야.


그런데! 놀랍게도! 그로부터 한 시간여 후, 모든 상황이 깨끗하게 수습되었어. 가방을 다시 찾았으냐고? 그럴 리가 없지. 그건 스페인 도둑들을 우습게 보는 얘기야. 스페인은 유럽에서도 험하기로 이름난 곳이니까.

아빠는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이거야말로 기적 아닌가?' 싶어. 하루 전부터 바르셀로나에 영사관이 개설되었고, 휴일인데도 출근해서 새로 여권을 만들어주기로 했어. 스페인 경찰서에서 '폴리스 리포트'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도 쉽게 받을 수 있었지.(물론 거기에는 큰 이모의 영어가 도움이 되었고!)


어쨌든 우리는 밤에 호텔방에서 맥주를 마시며 호호 깔깔 즐거운 후일담을 나누며 마지막 밤을 보냈어. 여행이란, 이렇게 험한 불행마저도 행복으로 만드는 마법의 시간인가 봐. 얼마 남지 않은 너의 일본 여행도 그런 마법의 시간이기를 바랄게.


   -- 여분의 행복이 아직 남아서 즐거운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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