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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하태평 Jan 21. 2019

딸에게 쓰는 편지33-축 합격. 이젠 네 세상이다!

사랑하는 딸!

어젯밤 12시 넘어 자러 들어갔던 엄마가 다시 나왔지. 네 방으로 가더니 '합격 발표났대. 들어가 봐.' 라고 말했고, 그 말을 들은 아빠도 급히 네 방으로 갔어. 너는 불안한 표정으로 핸드폰 검색을 하고, 엄마와 아빠는 긴장감 속에서 결과를 기다렸지.


합격을 축하합니다!


미소를 지으며 네가 내민 핸드폰 화면에 떠오른 이 한 문장. 이 순간을 위해 너는 1년을 재수까지 했지. 한밤중 2시가 되었지만 우리 셋은 포도주로 합격을 축하했고, 기분 좋은 엄마는 인증샷까지 찍었어. 고2말 12월부터 공부를 시작했으니 꼬박 2년의 고생으로 얻은 값진 결과.



물론 최상위 대학은 아니니 어떤 이는 '웬 호들갑?' 하고 비웃을수도 있겠으나 우리로서는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결과이고, 또 이번에는 어떻게든 대학을 가야하는 입장이므로 벼랑끝 다급함이 있었기도 해. 무엇보다 네가 가고 싶어하는 대학이었다는 것도 위안이 되고... 제 눈에 안경이라고, 누가 뭐라 해도 네 마음에 들면 된거 아니니?


홀가분한 마음에 수다가 길어질 것같으니 짧게 한 마디만 할게. 그 동안은 정해진, 주어진 틀에서 살아왔지만 이제부터는 네가 주인공이 되어 살아야 한다는 것. 네 스스로 인생을 계획하고, 목적을 세우고, 구체적으로 행동해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이 세상의 주인은 너고, 모든 것은 너를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 '이 세상은 내 세상'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


이제 겨우 스무살, 막 대학 합격 통지를 받은 새내기 대학생에게 '이 세상은 네 세상이다'라고 말하는게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아빠도 용기를 낼게. 용기를 내어 더 강조해서 말할게, 이 세상은 네 세상이고, 이 세상의 주인은 너라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세상에 너만이 유일한 존재이고(부처가 말한 '천상천하 유아독존'), 세상의 모든 것은 너의 뜻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배치되고 움직이는 것이라고.


물론 믿어지지 않을 거야. 아빠가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될 거야. '나는 지구상 80억 가까운 호모 사피엔스 중 하나에 불과하고, 내가 없어도 이 세상은 아무 문제가 없다' 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그러나 아빠는 그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너는 80억 인류의 중심에 있고, 네가 없으면 인류는 물론 이 우주 자체가 없다고 말하는 거야. 너라는 개체가 눈을 뜨면서 이 세상도 생겨났고, 네가 죽으면 이 세상도 소멸한다고 말하고 있는 거야. 그러므로 너는 이 세상 모든 것의 주관자이자 책임자이며, 네 생각 네 행동이 세상의 운동에 결정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해. 세상의 모든 것은 각자의 계획에 따라 배치되어 있어. 엄마 아빠가 너와 가까이 있는 것은 네가 그걸 원하기 때문이야. 아빠가 뉴욕을 좋아하고 이과수 폭포를 그리워하면서도 그렇게 멀리 두는 것은 (구체적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거야. 세상 모든 일은 각자가 그렇게 되기를 원해서 일어나는 거야.


옛날 중동에 어느 현자가 있었어. 그는 사람들에게 멀리 있는 산을 자기 앞으로 불러오겠다고 했지.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했고, 현자는 그럼 눈 앞에서 보여주겠다며 산을 불렀어. '산아, 나에게 와라!'

그러나 산은 꿈쩍도 하지 않았지. 사람들은 '그것 봐라.' 하며 현자를 비웃었고, 산이 오지 않자 현자는 '그럼 내가 가겠다' 면서 산에게 걸어갔어...


이 일화는 '이 세상은 내 세상이다'라고 믿는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야. 그는 정해진 객관을 믿지 않지. 객관의 세계에서는 상대가 오는 것과 내가 가는 것이 전혀 다른 거지만, 내가 주인공인 세상에서는 둘은 같은 거야. 주관과 객관이, 나와 대상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산이 내게 오는 것'과 '내가 산에게 가는 것'은 같은 거지. 변명이나 핑계, 남탓이 끼어들 틈이 없어.


사랑하는 딸!

네가 원하는 세상이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생활동안 그 설계도를 잘 만들기를 바래. 물론 여러군데 실수가 있고 이리저리 버그도 생기겠지만, 우리는 신이 아니잖아? 그런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즐기는게 휴먼이지. 근본적인 시스템적 오류만 만들지 않기를 바랄게. 설령 네가 그걸 재미있어 할지라도, 아빠 입장에서 딸이 만신창이로 고생하는 걸 보고 싶지는 않지. 엄마가 말한 것처럼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그 부분도 가볍게 여기지 말고.


오늘은 기분 좋은 날!

다시 한번 대학에 합격한 걸 축하하고, 멋진 너의 세상을 꾸며 나가길 기원할게!


  --- 이제 막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 딸이 대견한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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