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갈 곳 없는 이야기들
소년은 기기(奇奇)하게 간다.
그 주는 괴기스런 일들이 백귀야행(百鬼夜行)의 행렬 속 귀신들처럼 태연자약하고도 뻔뻔스럽게 이어졌다. 소년은 순탄하게 삶을 살진 않았지만 그처럼 와류에 휩쓸리는 일은 이제껏 없었다. 소년은 그 의미에 대해서 곱씹어보았지만, 그 시도의 매순간 의미는 괴기들 사이서 와해되고야 말았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고로 소년은 자신의 걸음을 기기하게 고쳐 잡았다. 원하였건 원하지 않았건.
1.
노르스름한 등광이 들고 투명한 창 너머로 휘황한 불빛이 점박이처럼 흩어져간다. 소년은 묵과하고 있다. 분명 뭔가가, 심지가 두터운 물건이 타는 내음이 난다. 콘크리트내부의 철근이나 그와 엇비슷하다. 말하자면 심지의 분신(焚身)이다. 창 가까이엔 뚱뚱하고 검은 딱정벌레 한 마리가 붙었다. 그것은 굳게 다리를 펼쳐 뻗대고 있다. 결코 날지 않는다. 소년은 골목 너머의 화려한 간판들은 색상의 규격 없이 눈을 어지럽히고 있는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오래된 네온등 아래의 한 여자를 보았다. 그 여자는 입에 불씨를 머금고서 몇 번 빨아내곤 욕설과 함께 뱉어버렸다. 그리고선 누군가를 기다리는 양, 오랫동안 그 골목길에 멍하니 서서 흙바닥에 운동화 밑창을 몇 차례 문질러놓았다.
이제 노르스름한 등광은 서서히 존재를 꺼뜨려 보다 인공적인 것들만이 남았다. 기름 냄새조차 나지 않는다. 소년은 좁은 덧문으로 그 모든 것을 내려다보았다. 막다른 골목 끝자락에 관조하도록 난 그의 방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덕분에 소년은 많은 사람들의 은밀한 모습들을 자주 목격하였다. 연인, 걸인, 약상, 왈패, 패싸움. 그 골방의 유일한 환기창이 그 좁은 들창밖에 없었으므로 처연히 그것을 열어두었고, 소년은 당시 세상에 환멸을 머금고서 있었으니 그 모든 은밀한 장면들은 그저 불편한 구경거리에 불과했다.
창을 열어 딱정벌레를 들인 소년은 고놈을 손바닥으로 짓눌렀다. 그놈은 비명조차 없었다. 단단한 견갑의 연약한 놈은 그저 벌레이다. 등광이 마저 빛을 완전히 삼키자, 소년은 방금까지 초조하게 신발코를 구기던 여자가 작은 종이 쓰레기 하나 남기고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작은 영수증을 구겨 만든 작은 구체가 네온등 아래의 흙바닥에 잘게 눌어붙었다. 유리파편처럼 등광을 받아 빛난다. 그것은 딱정벌레처럼 무력하다. 생의 여부와는 전연 상관없이 그것은 무력하다.
기약하는 일 없이 밤공기는 옅어진다. 소년의 방에 희뿌옇게 찬 연기를 딱정벌레 주검과 함께 들창으로 내보내면 오롯이 새벽이 남는다. 손바닥을 비벼 오물을 떨면 그 시야각의 목격담은 봄날의 이끼처럼 벗겨지고야 만다. 납작하게 짓이겨둔 딱정벌레를 방문의 틈으로 밀어 넣다가 어김없이 문간에 놓인 누런 봉투를 발견한 소년은 주춤했다. 누군가가 다녀갔다. 기척도 없이. 방문을 열어서 봉투를 집어 젖히니 빳빳한 새 지폐 몇 장의 감촉과 약간의 온기마저 느껴진다.
이렇듯 골목의 풍경과 연결되는 부분 없이 방은 그 자체로 놓여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하더라도 소년의 방엔 네온등 아래에서 서성이던 여자가 껍질을 벗고 덩그러니 돌아누워 있었다. 숨소리도 없는 깨끗한 잠이 그녀의 어깨에 허리춤에서 오르내리는 모습이 소년의 눈에 선하다.
저녁땅거미가 질 무렵, 여자는 예고도 없이 불쑥 어슷한 층계를 소리 없이 올라선 문지방 없는 조악한 소년의 방에 노크했다. 소년은 당황을 넘어 두려움을 느꼈다. 골목의 사람들 중에서 그를 아는 사람이라곤 없다. 때문에 그는 바닥 가까이 엎드리곤 혹여나 본 적 있는 사람인지 살폈지만 전혀 짚이는 바가 없었다. 소년보다 조금 나이를 먹은 성년기의 여성이었다. 그리고 소년은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녀를 들였다.
여자는 소년을 보고선 잠시 눈을 떨고 심박을 추슬렀다. 주저함과 침묵이 한 이불속서 뒹구는 것 같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리곤 결심한 듯 슬그머니 방의 내용물인 소년에게 다가와, 옷가지를 떨구곤 애벌레 같은 알몸을 내어 보이는 것이었다. 그렇게 소년과 손님은 살을 섞었다. 처음에 소년은 영문을 몰랐다. ‘무엇인가 착각한 것이 아닐까?’ ‘경계해야만 한다…’ 과정 중에 소년은 내내 되뇌었지만, 이윽고 피가 쏠리고 그는 모든 껄끄러운 생각들을 묻어버렸다.
심박의 풀무가 지핀 불과 한창 어린 치기는 이성적인 판단을 헝클어트렸으며, 소년은 반사적으로 여자를 안았다. 분명 바람직한 형태는 아니었다. 소년은 여자를 처음 보았다. 여자를 안는 내내 그녀가 그의 방에 오기 전 손바닥으로 짓이긴 딱정벌레와 싯누런 안쪽 골목의 등광이 겹쳤다. 그렇게 소년의 시야는 쾌(快)로 젖었다.
희푸른 새벽이 오자, 여자는 부스스 잠을 깨이곤 멍하니 궐련을 빼물었다. 소년을 처음 보는 사람 보듯 뚫어져라 응망하곤 다시 견갑과 같은 옷가지를 하나둘씩 걸쳤다. 매무새는 이전의 모습보다 조금 흐트러진 채로 잊고픈 무엇을 떠올리는 양, 멍하니 궐련을 달아 물었다. 여자가 그렇게 연기를 빨아내고 나면 쾌청한 공기란 잊어버릴지 몰랐다. 소년은 족족 보랏빛을 닮은 현기증이 함께 일었지만, 당시엔 들창을 열어둘 엄두도 내질 못했다. 단순히 그녀의 기분을 해칠까 염려되어서였다. 코끝에는 개운치 못한 매캐한 내음이 걸려있었다.
곧 좁은 걸상 위로 은박접시가 놓이고, 그곳에서 입술만 남은 궐련들이 별처럼 뭉쳤다. 그 장면에 소년은 지금보다 어린 시절 외조부의 기원(棋院)을 떠올렸다. 기원의 중년들은 하루에 일곱 갑을 태웠다. 손가락으로는 자개 빛의 흰 공깃돌이 들려있었고 공깃돌은 누른 손가락의 때 묻는 일도 없이 깨끗한 빛을 유지했다. 좀 더 어린 시절의 소년은 그 자갯돌들이 포석에 맞게 정갈하게 늘여질 적엔 성운(星雲)처럼 포개어진 풍경에 홀리곤 했다. 한 손에는 담뱃불과 한 손엔 잘그락거리는 자갯돌.
여자도 그 초로들과 같이 끊임없이 궐련에 불을 이어 붙여갔다. 한 개비, 두 개비. 덕분에 방은 보랏빛의 현기증으로 일렁였다. 그리고 그 순간 소년은 멀끔하게 꾸민 그 인형들 또한 내면이 썩어가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자는 새벽 중에 급히 생각난 용무가 있다는 듯 번뜩이듯 일어나 방문을 나섰다. 한 마디의 말도 나누지 않은 채였다.
소년은 자각하고 있지 못하지만, 그가 여자를 들인 것은 소년의 머릿속 깊숙이 숨어사는 다리 많은 벌레가 그를 부추겼기 때문이다. 소년이 황홀경이라 여겼던 쾌감은 벌레의 환상이다.
소년은 당시 꿈을 꾼다고까지 여겼었지만, 그 꿈이라는 것은 몸을 단속적으로 껍데기를 뒤집다가 결국은 현재 추한 뒷모습만을 보인다. 소년은 나비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번데기를 뒤집고 어설프게 유영하다가 깨어나면, 벗어던진 거친 주검이 살아나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껍데기와 알맹이 중, 소년 자신의 모습은 번갈아 갈마드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소년의 감각은 젖빛의 림프액에 담가졌다가 꺼내진 것처럼 몽롱했다. 그리고 그 모든 꿈에서 아주 떠나갔을 적엔 소년은 그의 구역질나는 몸뚱이가 더욱 구역질나고 퀴퀴하게 변해있는 것만 같아 뜨거운 가슴을 부둥키곤 몸을 웅크렸다. 욕탕이라도 들러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소년은 섭한 마음도 없이 개운해졌다. 손바닥을 털어내듯 쉽게 떠나간 것이다. 여자가 아주 떠나버린 것을 절감한 소년은 들창을 열어 놓았다. 들창으로 보랏빛의 연기 빠지기 시작하고 동시에 소년은 그 자신의 추악함에 대해서 상고했다. 그의 몸에 난 티끌 같은 흉과 득시글거리는 병균과 이(蝨)에 대해서 곱씹고서 그 흉물스러움에 대해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분명하게 소년은 추했다. 머리통 한 구석이 생긴 흉은 좀이 슨 것처럼 뒷목까지 번져 있었고, 걸음은 절룩거렸다. 밤이 내린 들창은 거무죽죽한 웅덩이처럼 그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 모습을 보며 소년은 속으로 뇌었다.
‘그녀가 누군가와 착각한 것이 아닌가. 벌레의 얼굴은 비슷비슷하니까, 여자는 그보다 외면이 깨끗한 어느 한 벌레와 자신을 착각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벌레도 소년처럼 다리를 접질리듯 걷고, 얼굴에 좀이 슬어 있지나 않을까.’하고. 때론 사람들은 사람 그 자체보다는 향수를 일으키는 장소와 상황에 치우쳐서 과오를 치르곤 하는 법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