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기기(奇奇)하게 간다.(2)

오갈 곳 없는 이야기들

by 나무느을보

2.


골목을 밝히는 유일한 광원인 노르스름한 등불은 이상하게도 한밤에 겨우 불을 밝히고 새벽너머 해가 상천에 걸려서야 눈을 꺼뜨린다. 등광이 점멸하다 수그리는 새벽이 오면, 골목은 또 다른 길손님을 맞는다. 고양이들이다. 그것들은 보통은 친밀하게 사교활동을 하지만, 무리 외에서 찾아오는 힘센 녀석이 있노라면 사납게 노려보며 영역을 다투곤 한다. 이번의 하찮은 쌈 역시 들창에서 내려다보이는 골목에서 벌어졌다. 소년은 그것들이 하도 시끄럽게 울어대는 통에 잠깐 붙인 잠을 깨었다. 짜증이 치민 소년이 들창을 열고 소리라도 왁 지르려던 찰나, 그 괭이들이 꽤나 골목싸움에 열중하고 있기에 그도 모르게 싸움구경에 정신이 팔리고야 말았다.


골목의 패권 도전자인 얼룩고양이는 덩치가 훨씬 더 컸다. 꼭 너구리같은 체구였다. 그에 반해 밤과 같이 검푸른 털가죽을 지닌 대장고양이는 비교적 몸집이 작지만 몸놀림이 날래다. 소년은 녀석의 날렵함을 알고 있다. 검은 대장고양이는 들창이 있는 복층까지 단숨에 뛰어오를 만큼 민첩했으며, 소년은 종종 그 힘찬 뜀박질에 감탄하곤 했다.


노른 등잔불이 껌뻑대던 짧은 순간에 대장고양이는 특유의 민첩함으로 단숨에 얼룩고양이의 목덜미 아래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얼룩고양이는 반응조차 않을 정도로 순식간이었다. 그러나 얼룩고양이는 픽 하고 비웃는 내색을 하더니, 모가지를 깨물든 말든 아랑곳 않고서, 녀석의 머리통 귓바퀴를 콱 물어다 전봇대의 오물통에 힘껏 던져버렸다. 내던져진 대장고양이는 비틀거리며 균형을 잡으려다 그대로 쓰러졌다. 얼룩고양이가 골목의 새 주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얼룩고양이는 입안에 구(舊) 대장고양이의 귓바퀴를 벗긴 왕관처럼 툭 뱉어놓곤, 몇 번 해죽거리며 개가를 부르더니 자리를 훌쩍 떴다.


소년은 바위골짜기의 주인자리를 두고 혈투를 벌이는 산군의 다툼을 목격한 것 같았다. 검은 고양이는 모두가 킁킁대다 떠나가고 나서야 몸을 일으켜 더욱 비좁은 골목 틈의 안온한 곳으로 홀로 향했다. 그렇게 녀석은 한쪽 귓바퀴를 째로 잃어버렸다.


이처럼 골목은 갖은 소란이 자주 눈에 밟히는 공간이다. 물론 유쾌하지 않은 장면들도 많지만, 소년의 눈에는 익어서 더는 혐오를 조장하지 못한다. 고양이들이 썰물처럼 빠지고 소년은 팔베개를 하고선 미뤄놓은 잠에 들기로 했다. 소년은 옅은 잠에 빠지는 그 순간에 마저도 얼룩고양이가 떨어놓은 귓바퀴와 어젯밤의 여자에 대해서 떠올렸다.


골목 너머의 사람들은 아름답다. 여자는 명백히 골목 너머의 부류였다. 그들은 소년이나 골목과는 별개로 살아가는 것처럼 마저 느껴진다. 골목엔 생기 있는 것들이 적다. 이렇듯 소년의 세상은 골목의 벽으로 철저하게 단전되어 왔다. 소년의 세상에서 아름다운 사람들과 오물들의 이분법은 절대적이었으며, 소년에게 그들과 오물을 연결 짓는 일은 결코 용인될 수 없었다. 불문율이자 무례한 짓거리인 것이다. 소년은 명백히 골목의 안쪽에 처해있었고, 여자는 바깥쪽의 인물이었다. 그런데 지난 저녁에 이상한 교합이 벌어졌다. 분명 괄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결코 좋은 의미에서의 표현은 아니다. 여자와 소년은 서로 섞여 들어서는 안 되는 별개의 기물들이었다. 그 둘의 교합관계에서 차차 희끄무레하고도 미심쩍은 것을 낳을 것임은 불 보듯 뻔하다.

골목의 누런 등광도 소년의 웅크림과 함께 불씨를 꺼뜨렸다. 소년의 넋이 전원이라도 달려 소등되듯 한 차례 번쩍이고는 먹빛이 되었다. 이렇듯 단절된 등잔불은 경고도 없이 또다시 연결될 것이다.


기운 흰 햇살이 지저분한 들창의 표면과 비비대어 콧잔등에 떨어졌다. 동시에 열감에 소년은 몸을 까뒤집었다. 등허리에 마루자국이 패어있다. 축축하고 불쾌한 늦여름더위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소년은 납작 엎드러지곤 마루서 짓눌린 행세를 했다. 바닥을 타고 약간의 거무죽죽한 습기가 느껴졌다.


이 방에서 그를 짓누르는 손바닥은 없다. 소년은 딱정벌레가 아니다. 소년은 다만 촛농이 떨고 굳은 것처럼 뻐근할 뿐이다. 떨어져 굳은 촛농에 내리누른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추락만이 있었다. 추락과 동시에 납작한 웅덩이의 형태로 고개를 떤 것이다.


마루에 눌어붙은 소년의 흉한 몸뚱이가 괴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비에 해진 낙엽 같은 몸뚱이를 씻어내야 했다. 문지방 없는 방을 나서고 좁고 들쭉날쭉한 층계를 뒤뚱거리며 다다른 골목에서 소년은 귓바퀴 없는 검은고양이가 위태로이 골목 안쪽을 걸어 다니는 것을 보았다. 이전의 위용은 없고, 어젯밤 짓이겨 내보낸 오색의 딱정벌레를 닮은 것들이 녀석의 귀와 왼쪽 머리통을 파먹고 있었다. 기름기가 흐르던 털빛은 푸석푸석하고 호박(琥珀)을 닮던 눈은 멀어가는 듯 탁하고 희뿌옇게 흐렸다.


골목을 나서 욕탕으로 뒤뚱대며 걷던 소년은 불현듯 벽담 근처로 여자와 마찬가지로 매운 연기를 피우는 젊음들이 제자리 굴뚝처럼 붙박아 있는 장면을 보았다. 그리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퀴퀴하긴 하던데 무슨 맛인가, 맛이기는 한가. 상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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