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갈 곳 없는 이야기들
3.
시비를 붙었다. 골목이란 늘 그렇다. 소년은 발을 저는 불구고, 상대는 허우대가 멀쩡한 사내다. 멀쩡한 데다 짧은 칼을 찼다. 손바닥만 한 쇳조각에 화물칸에서나 쓸법한 고무노끈을 감아놓았다. 얼굴은 탁하지만 술기운이 올라 발긋하다. 소년은 풀빛의 옷을 입은 그가 가시세운 장미 같다 생각한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깨끗하고도 무력한 그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보통의 울분은 저자세에서 받들려지기 때문이다. 보통의 울분을 가진 남자라면 불구의 그 구푸림에 마음을 조금은 놓는다. 하지만 사내는 보통의 울분을 지닌 남자는 아니었다. 놈은 순종보단 굴종을 필요로 했다. 누군가를 꿇어앉히기보다는 자신의 손에서 무력하게 울분을 맞고 죽어갈 짚 인형을 필요로 했다.
그의 목울대가 분노로 울컥울컥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곤 소년은 뛰었다. 성치 않은 발목으로 뛰었다. 다행히도 사내는 거나하게 취하여 비틀대며 갈지자로 여기저기 부닥치며 그를 쫓았기에 속력은 엇비슷했다. 곧 골목이 보인다. 깊숙한 벽. 무신경한 사람들. 들창. 연기. 본적 없는 검은 고양이주검. 그 모든 것들을 지나 소년은 그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사내는 무어라무어라 욕설을 읊조리며 고함치다가 길 에서 마주치는 사람 중, 자신보다 덩치 작고 턱이 약한 이들에겐 ‘뭘 보냐’고 시비를 걸다가. 층계참까지 다가섰다.
소년의 골방으로 이어지는 층계참은 높고도 들쑥날쑥하다. 그것은 균질함을 흉내 낸 보통의 비탈길이다. 소년은 그 험절한 구간들을 알지만 취객은 다르다. 고로 그 나한이 그곳서 굴러 떨어진 것은 뻔한 일이었을 수 있다. 소년이 둔탁한 소리에 돌아본 순간, 사내는 모가지를 꺾고 거품을 물고서 푸릉대고 있었다. 소년은 그게 무엇인줄 안다. 소년 자신도 저 자리서 굴러 발목이 온전히 돌아갔다. 소년은 발목이고 놈은 운 나쁘게 모가지였을 뿐이다.
층계 맡에는 분명 바람이 들었다. 섣부르게 구는 것들은 뭐든 꺾어놓고 보는 바람이다. 유연하지만 정해진 구간으로 구푸리게 되어 있는 힌지(hinge)는 의도하지 않은 방향을 허용하는 순간에 끊어진다. 온전히 끊어진 관절부는 수복되는 바 없이 본래의 기능을 잃게 되는 것이다. 소년은 발목을 꺾던 그날, 피로에 몰려 서둘렀고 남자는 분풀이대상을 쫓아 서둘렀다. 다른 점이라곤 취객이 제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의 험한 불길을 지녔다는 부분과 조금 더 운이 나빴다는 점 정도이다.
겁에 질린 소년은 귓바퀴 잃어버린 고양이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녀석은 골목의 더욱 으슥한 모서리에서 죽음을 기다렸을 수 있다. 소년은 문지방 없는 방으로 급히 들어선, 얇은 차렵이불을 머리를 덮도록 둘러매고 오들오들 떨었다. ‘다 꿈이다. 한낮이라 나쁜 꿈을 꾼 거다.’하고. 들창을 굳게 닫아놓은 채였다. 소년은 오래전에 들은 적 있는 자장가를 웅얼웅얼하며 가슴을 도닥거렸다.
달 없는 밤. 별 없는 밤.
층계 맡에 그림자.
앉은뱅이 그림자.
잊은 것이라곤 꿈뿐인 잠.
걸어놓은 자물통 너머.
송아지 곤잠 든 구유 너머.
쟁기 걸어 논 판자벽 너머.
풀빛 얼굴로 우는 아기 하나.
소년이 자장가를 부르며 떠는 사이에 파리의 날갯짓 닮은 웅성거림이 오갔다. 난봉꾼은 건장한 사람들의 손을 거쳐 도심 외곽에 위치한 소각장으로 향했다. 하나같이 그가 살아있었더라면 차마 시비를 걸지 않을 것 같은 목과 어깨가 두터운 사람들이었다.
경관의 목소리와 시끄럽게 떠드는 아낙네들의 대화소리가 몸을 부둥킨 소년의 귓전으로 날아 붙었다. “…매번 취해서 난동피우더니.” “이 위로 누가 살아요?” “예전엔 인쇄소 사람이 살았는데, 흉흉한 일 있고부터는 아무도 안 살아요!” “…환장할 노릇이네.” “이 사람, 가족은 있어요?” “…없지, 재작년에 그 아내가 죽었어, 그러곤 사람이 망가지더니..”
소년은 다시 잠을 청했다. 비갠 후의 진흙보다는 짙고 철물에 슬은 녹물보다는 옅은 채도의 잠이었다. 소년의 시꺼먼 한쪽 발목이 새삼 시큰거렸다. 그렇게 한밤이 지나고 모가지 꺾인 사내는 사라지고 없었다.
긴긴 낮을 건너니 어느덧 소년에겐 다시 까마귀를 닮은 아청빛의 밤이 내렸다. 문지방이 있을 공간에 먼젓번 본 것과 같은 노란색 봉투가 밀어 넣어져있고, 그 내부로 지폐 몇 장이 들었다. ‘누구일까?’ 문지방 없는 방은 바깥의 기척을 쉽게 빨아놓는데도 소년은 여전히 발자국소리조차 듣지 못한 채였다.
소년에게 낮 중의 일은 꿈결 속에서나 본 듯 아득했다. 정말 다 나쁜 꿈이었나보다 하고 뒤뚱대며 층계 맡까지 내려오는데, 어젯밤에 험악한 사내가 겨눈 고무노끈 감아놓은 날붙이가 그대로 동그라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칼이라고 생각했던 기물은 길쭉한 끌이었다. 소년은 어리둥절해졌다. 기척을 되새기는데, 지푸라기로 얽은 노새처럼 하찮아서 그만두었다.
소년의 방문은 그르칠 빗장과 덧대어놓은 힘센 문지방조차 없다. 때문에 그 사내가 층계를 간신히 올라, 그의 방문을 뜀박질하듯 걷어차기만 했다면 그것은 손쉽게 열렸을 것이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 바닥의 공백을 살피면 겁에 질려 바들거리는 기색조차 느껴졌을 것이다.
마음이 갑갑해진 소년은 간만에 정해둔 행처 없이 밤 산보에 나섰다. 발에 채는 것이란 바닥뿐인 거리서, 시비 붙지 않게 사람들이라곤 없는 거리서. 소년은 걷고 또 걸으며 생각했다. ‘다음엔 바닥서 납작하게 기자. 그렇게 걷고 떨어내다보면 그는 어느덧 껄끄러운 이들을 모두 사랑하게 될 것이다. 용서를 받을 수도 있다. 한낮의 악몽에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