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기기(奇奇)하게 간다. (4)

오갈 곳 없는 이야기들

by 나무느을보

4.


한적한 공원엔 버려진 교회의자가 있다. 그 물건은 뒤편에 작은 수납공간을 둔다. 그을음이 묻어나온다. 소년이 비틀대며 골목에 자리 잡기도 이전, 그러니까 골목의 가벽이 세워지기도 이전에 공원 인근으로 교회에 큰 불이 났었다. 큰 불은 십자가를 태우고, 주일마다 울리는 새벽기도소리를 태웠다. 새벽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부르짖으며 서럽게도 울었다.


그리고 제 한 사내가 있었다. 소년과 같이 협소한 방에 사는 남자는 발이 멀쩡했다. 평소 술을 먹거나 층계참에서 발을 접질리는 일조차 없던 그는, 다만 꼴깍꼴깍 새까만 생각들을 삼켜왔다. 사내는 소년과는 달리 온전하게 노동을 했다. 인쇄소의 잡일꾼 노릇을 하며 부지런히 살았다. 소년과는 달리 발이 온전한 그 남자는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균질하게 어깨를 흔들며 걸었을 것이다.


다만 그의 좁은 방은 십자가와 너무 인접해있었고, 새벽의 신도들은 참으로 갸륵한 정성을 쏟았다. 새벽마다 잠을 깨이던 삼은 수차례 담임목사를 찾아가 고통을 호소했지만, 목사는 천상의 논리 속에서 천상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기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그 온전한 발의 온전한 업(業)을 지닌 온전한 남자는 새벽이 미처 밝기도 전에 교회건물을 기름질의 폐잉크와 함께 건물을 째로 태워버렸다. 다들 그 근처로 타이어 타는 냄새가 났다고 했다.


한편 교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작은 단칸서 살던 목사는 불 냄새를 맡고는 화들짝 놀랐다. 소방사들을 부르곤 그 자신도 스스로 불길에 뛰어들어 회랑의 물건들을 하나, 둘씩 나르기 시작했다. 십자가, 성물들. 그러다 자신의 몸도 태워먹고 말았다. 타이어와 같은 진득한 인공물이 타는 냄새와 살과 머리카락이 타는 냄새가 그 근방으로 진동했다. 행인들의 목격담에 의하면 목사는 교회 앞에서 지옥불을 입고 적나라한 춤을 추었고 했다. 물건들을 나르는 도중 옷가지와 팔뚝에 기름잉크의 유분기가 묻었던 탓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불을 지른 이 악한은 극악무도하게도 자신의 삐뚜름한 들창이 달린 방으로 돌아와, 엎어져 밀린 새벽잠이나 몰아 잤다. 인쇄를 맡긴 업체에 견본을 전달하기로 하였으니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야했다. 폐잉크는 방금 버려두었으니 시외의 화학약품처리장까지 들를 필요는 없다고 곱씹었다. 삼은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자택을 방문한 경관들에게 얌전하게 붙잡혔다. 저항하는 기색도 없었다. ‘그래, 이렇게 되겠지.’하는 뻔뻔스런 태도로.


‘불순한 악마 하나가 천국의 창구에서 일하던 천사를 불사르다.’


사건은 지역신문에 특필되었지만 바쁜 도시민들은 한번 눈길을 흘깃 주고 혀를 한번 찼을 뿐이었다. 그 일이 있고부터 새벽기도회랑 주위로 높고 두터운 방음벽을 둘러졌다. 일주일도 채 흐르기 이전에 소리를 먹는 커다란 벽이 교회의 회랑과 남자가 살던 죽은 상가건물을 홍해처럼 갈라놓았으며 그 사이로 좁다란 골목이 형성되었다. 그 이후로 골목은 눈에 띄지 않는 틈바구니를 좋아하는 담뱃불이들이 사랑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들은 골목으로 몰려들어 멍하니 연기를 마시고 뿜고선 소리 먹는 벽을 벌서듯 쳐다보았다. 소년이 사랑하는 골목이 태어나던 순간이었다.


좁은 골목을 나서면 다섯 등분으로 이어지는 광장이 나온다. 또 그 광장에는 눈에 띄지 않는 이슥한 공간에 장의자가 하나 버려져있다. 그렇게 보이지 않겠지만, 장의자는 목사가 온몸으로 나른 물건 중의 하나이다. 그 하고많은 주요한 물건 가운데 중, 왜 하필 흔해빠진 장의자였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는 세 차례 불에 뛰어들었다. 처음 뛰어들어서는 십자가나 세례반(洗禮盤) 같은 물건을 건져왔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지금은 작고하신 그의 은사님이 남겨주신 작은 은거울이었고, 그 다음이 장의자였다.


장의자는 무척이나 무겁다. 연판처리를 한 통나무나 다름없다. 십자가처럼 무거웠을 것이다.


산보를 나선 소년이 생각 없이, 그을음이 가득한 장의자에 앉았을 적에 그는 그 안에서 지저분한 종이상자를 발견했다. 소년은 큰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저 버려진 의자였고, 소년이 그곳에 앉아 쉼을 청했던 것은 순전한 우연이었다. 당연히 서랍내부론 그을음이 빼곡했다.


소년은 불이란 원래 여기도 저기도 쉬이 붙는 놈이니 그러려니 생각했으며, 그 내력에 대해선 전혀 몰랐다. 더구나 그는 굶주린 들짐승처럼 억척스레 버려진 것들을 뒤지는 일에 슬슬 손이 익던 과정 중에 있었으며, 그 안에서 흐물거리는 상자를 집어든 것도 큰 의미가 있지는 않았다.


소년은 서랍을 뒤적거리다 발견한 종이상자를 그의 외투 품에다 감추었다. 주변을 기웃거리며 누군가의 시선과 마주치지는 않는지 살폈지만 늦은 밤의 행인들은 결코 지저분한 소년을 살필 여유라곤 없었다. 기껏 눈이 마주친 이들은 맞은 편 벤치에서 술기운이 올라 몸을 가누지 못하고 서로 부둥킨 남녀 둘과, 소년과 비슷한 처지의 더부룩한 더벅머리의 초로였다. 그 너저분한 초로는 잠에 든 척 흥미진진하게 둘을 구경하고 있었다. 코끝이 발긋한 것이 취기가 있는 것 같았으며 얼굴은 보르조이나 하운드 종류의 강퍅한 개의 인상이었다. 개남자의 손이 바지춤 아래로 빠지는 것을 보고선 소년은 황급히 자리를 떴다.


둥근달이 깊숙이 가려져 거무죽죽하다. 달무리가 진하게 낀 것으로 보아 비가 올 것 같았다. 날은 조금 으슬으슬해지기 시작했다. 낮은 찌고 밤은 쇳덩이처럼 차다. 마치 삭막한 사막 같다. 소년이 비를 생각하기 무섭게 부슬비가 조금씩 떨기 시작했다. 뭔지도 모르는 종이뭉치를 품에 넣고 골목으로 돌아온 소년은 비가 들지 않는 골목의 그늘에서 너절한 종이상자를 살펴보았다. 약간의 기대심을 품은 채로, ‘이 안엔 분명 잘 장정된 성경 같은 물건이 들지나 않을까?’하고.


그러나 안에는 우스꽝스럽게 상모를 돌리는 호랑이가 그려진 성냥갑이 하나 들었을 뿐이었다. 실망한 소년은 뒤뚱대며 발을 절며 그의 방으로 돌아갔다. 지금 소년의 방과 들창 건너선 십자가와 기도소리는커녕 흉한 벽과 함께 고작 보잘것없는 골목이 하나 나 있다. 그 위로는 다시 미색의 등이 껌뻑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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