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4
14.
검게 그을린 비가 내렸다. 유난히 어두운 아침놀에 연거푸 하늘을 살피다가 거리에 나섰다. 처마물이 떨어지는 작은 집과 콘크리트를 발라놓은 계단, 쌓아놓은 박스들을 살피다가 누군가 알아보았을 수도 있을 얼굴 하나를 흘려보내었다. 유난히 사람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나에게는 미심쩍은 기색만이 남았다. 다양한 얼굴들과 오해를 풀지 않고 내버려놓으니 나는 무정한 인간이 되어 있었고, 나는 대체로 남의 말을 따라 껍데기를 벗고 변태를 거듭했다. 별 수 있을까. 휘둘리는 것은 내 정신이고 정체성이다. 사람들은 남의 껍데기를 원한다. 알맹이가 어떠하건 그것은 중요치 않다. 결코 서로를 알 순 없으니 그것을 알맹이인 셈 친다. 그것이 그 사람의 전부였다고 말하여 자신을 지킨다.
빗방울에 젖은 보도에는 사람들과 새의 발자국이 남았다. 저마다의 걸음걸이가 다르다. 그처럼 시선을 재단하는 법도 다르다. 오해를 풀고 맺는 법도 다르다. 고로 별 수 없다. 서로는 서로를 알 수 없다.
차갑고 엷은 비가 떨다가 그쳤다. 해가 암막을 걷고 고개를 내민다. 사람들은 이제 모두 떠나고 없다. 텅 비어버린 공간엔 적적한 기운만이 맴돌 뿐이다. 전신주에 몸을 맡긴 채 빗방울을 맞던 비둘기들은 이제 떠나고 없다. 그들은 마치 이전에 그래본 듯이 부조처럼 빗방울을 견뎠다. 비를 피할 나무그늘을 찾기보다는 그 자리서 버티고서 비가 멎기를 기다렸다.
15.
잘 봐. 똑똑히 봐. 내 얼굴을 잡고선 이모는 물었다. 누군지 알겠어? 내 얼굴 똑바로 보고 있어? 나는 그제야 내가 사람 얼굴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잊고 싶으면 무정하게 잊어버리는 기질이라 여겼건만. 기색 만으로만 사람을 알아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상한 일에 휘말리는 것은 그 탓이다. 오해를 받고 얼굴을 흘려보낸다. 나는 무정한 인간인가보다 하고 자갯돌 같은 마음을 던져놓는다. 도로에 죽은 동물들을 보면 저것들이 무정한 바퀴에 짓이겨지면 얼마나 가슴이 미어질까 싶어 맨손으로 핏방울을 묻히며 옮기던 인간의 결함이 그렇다. 저것들이 바퀴에 속 것들이 이겨지고 흩어지면 제 어미라도 못 알아볼 텐데 하고 마음 두는 이상한 인간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그것이 언제부터 그러했는지는 모른다. TV에 나오는 사람들 얼굴은 다 똑같이 생겼어. 어릴 적 부터 그리 생각했던 것 같다. 멋진 사람들. 하나같이 똑같이 생긴 말끔하고 멋진 얼굴을 달고 있던 멋진 사람들.
차가운 비가 멎었다. 이제는 지나는 투로 흐르는 얼굴들도 볼 수 없는 시간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