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3
12.
큰 이파리가 바스러지던 겨울이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뻐걱거리고 움직임이 굼떠질 즈음하여 해도 몸을 느릿하게 일으켜 세웠다. 사람들은 굳세게 살아간다. 추위를 견디고 정해진 시간에 몸을 부둥키고 일어서 곧바르게 걷는다. 무엇하나 제대로 끝내지 못한 인간은 방안에 짐승처럼 웅크렸다. 그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연기했던 것처럼 지친다. 자신이 뭐가 되어가고 있는 줄도 모른 채로 그 안에서 열병과 엇비슷한 것들을 앓았다.
끔찍한 무력감과 가시처럼 찌르는 시야가 두려운 그는 유리처럼 빛나고도 연약하다. 고로 그는 누군가 자신을 밟지 않도록 웅크리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굳세게 뻗는 두 발에 하나의 흠결이 되지 않도록 그렇게 웅크린다.
이윽고 몸을 일으킨 짐승은 옷가지를 갖춰 입고 얼굴을 씻었다. 이미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앉은 자리를 찾아간 그 늦은 시각에 짐승은 스리슬쩍 자신의 몸을 옆 건물 사이에 섞어 놓았다. 사람들의 말소리에 늦게 깨어난 자신의 죄의식을 씻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그는 아직까지 사람이 되지 못한 채이다. 연기를 벌이고 단막극을 벌일 뿐이다.
네 살배기의 얼굴처럼 커다란 이파리가 오래된 커튼처럼 걷힐 즈음하여 그는 다시 홀로 되었다. 입엔 미처 뱉지 못한 울음이 물려 있고 멀끔한 손톱에는 핏기가 가셨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다시 홀로 된 그는 깔끔해진 길섶을 들여다보다 그 사이에 지난 빗물의 흔적을 발견하였다. 포대에 잘 담긴 낙엽쓰레기들은 어디로 향할까. 소각장으로 향하거나 거름이 될 채비를 하겠지. 허기가 진 짐승은 먹고, 졸음이 오는 짐승은 잠을 잔다. 그처럼 솔직하게 행동하는 인간은 없다. 고로 그는 짐승이다. 모두 저마다의 짐승을 품고 산다고 했다. 하지만 모두가 저마다 울타리에 그것들을 잘 간수한다.
13.
목청과 혀가 굳은 그는 깊숙한 허파로 소리를 낸다. 숨소리가 가빠오면 그는 그것을 말소리로 듣곤 한다. 버즘나무의 껍질처럼, 혹은 매미의 허물처럼, 겨울 강가에 붙은 살얼음처럼 자신의 허물을 흔적 없이 벗어던질 생각을 하던 그는 방법을 몰라 갈피를 헤맨다. 우선 사람다운 말을 해보자. 그게 그의 결심이었다. 그렇게 그는 말을 벼르다가 사람인지 사랑인지 듣기 알아듣기 어려운 단어 한 줌을 내어 놓았다. 조악한 발음에 허파와 목청을 타고 올라 혀에서 둥글려졌다. 봄의 새싹처럼 따듯한 음성이었다.
큰 이파리는 다시 길섶에 쌓일 것이다. 길섶에 쌓여 쓸리고 바스러지고, 치워질 것이다. 그의 허파처럼, 목청처럼 얼룩을 남긴다. 짐승은 다시 낙엽처럼 쓰러지고 조금 이른 해처럼 일찍 어스름이 되어 불꽃을 꺼뜨렸다. 차가운 녹색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