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2
10.
사람들이 불어나 몰렸다. 저마다의 울분을 토로하고 토로된 울분은 하나의 맥을 갖추어 강처럼 흘러간다. 약간의 가름을 타고난 이들은 그것들을 담아두었다. 새롭게 장마를 맞으면 범람하여 새로운 장을 마련할 것이다. 외따로 떨어진 인간 하나는 멍하니 끔뻑거리며 그 모습을 구경하다가, 자신에게 남은 따듯하고도 부드러운 가슴에 대해서 생각했다. 언젠간 빳빳하게 시체처럼 굳을 가슴과 뛸 일이 적어질 심박에 대해 생각하다 문득 마음이 미어진다. 무엇하나 남는 일 없이 사람들이 철새처럼 떠나가면 그는 홀로 되어선 들은 이야기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자식들의 장래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서, 길가다 얼굴을 붉혔던 사람들에 관해서 그들은 서로의 것을 끊임없이 내보였다. 머리가 아득해지는 것 같아서 헤아리기를 그만두고서야 나는 멈추어 설 수 있었다. 판단하지 말자. 그것이 최선이다. 어떠한 사건은 그 자체로 주어진다. 그것을 내보였을 뿐이다. 무엇인가 잊었는지 생각하지 말자. 망각 또한 하나의 사건이다. 그 뿐인 것이다. 사람들은 강처럼 흘러간다. 강은 바다로 향하고 그 이전에 바닥을 쓸었던 강바닥 따윈 기억하지 않는다. 바다는 광활하다. 이따금씩 자신이 미비하다 여겨지는 것들을 집어삼키고, 공허로 되돌려놓는다.
차가운 공허는 고독처럼 홀로 남겨진 이들에게 ‘돌아가라’ 책한다. 스스로 무너지라 말한다. 자신의 몸이 한갓 모래로 되어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렇듯 고독은 위험하다. 그것은 낭만적 사고를 증폭시켜 자신에게도 몸이 있음을, 물살에 휩쓸리지 않을 견고한 성채가 있음을 망각하게 한다.
11.
우리는 견고한 성채이다. 무엇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약해보이겠지만 우리는 하나의 성채이다. 다만 쉽게 휩쓸리는 성채이다. 저마다의 성채가 이곳에 있다. 지켜야 할 것들을 벽돌담으로 막아놓고 내주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망루가 그곳에 있다. 하지만 당신은 종종 잊는다. 강물에 현혹되어서 자신 또한 언젠간 바다로 돌아가야 한다는 하나의 철학에 성채를 스스로 부수어놓는다. 그 자체론 아름답지만 자기파괴는 괴상하기 짝에 없는 짓이다. 당신의 성채는 어제까지 견고했다. 그깟 물살 따위에 무너질 것이 아니었다.
차가운 밭에 홀로 서 있는 우리는 멍하니 있다 땅이 완전히 얼어붙지 않았는지 살핀다. 그 견고한 건천 위로 다시 도탑고 두려운 강물이 쏟지나 않을까. 그러나 발음한다. ‘우리는 성채다. 당장 무너지지 않을 성채다.’ 고개를 틀면 서로 웅크리고 견디는 고독들이 보인다. 고독은 그 자체로 강인함의 증표다. 홀로 우뚝 선다는 일은 쉽게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다. 강물 떠밀고 사라진 흔적에도 우린 지킬 것들을 찾는다. 겨울이면 죽은 것 같은 나무들이 봄에 살아나는 것은 그것이 잠을 자기 때문이다. 피어날 봄을 기다렸다가 잎사귀를 틔우는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