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

20205/12/21

by 나무느을보

8.


줄곧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으로 서로를 말미암아 살아가는지. 나는 내가 무엇인지 모르게 될 때 즈음까지 생각을 거듭하다가 세상에 아직 나지 않은 것들까지 입안에 머금고 있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사람들은 다들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타인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그러다보면 자신이 누군지 잊게 된다. 자신이 무엇을 진정으로 원했던 무엇을 잊게 된다.


거무죽죽한 빗방울이 떨었다. 차갑게 식은 땅 위로 먼지를 머금은 우박 같은 비가 내린다. 회색의 분진이 가라앉고 일순 물안개가 피었다. 사람들이 결코 보지 못할 구간에서 사람들은 전봇대처럼 서 있었다. 비둘기 몇 마리가 모여 앉은 가로등에 그들은 이전과 같이 영활한 비행대신 축조물의 부동을 보인다. 그 무리들은 사람들이 모이면 보란 듯이 날아올라 함께 앉은 횃대를 옮겼다. 하지만 비가 내리고부터는 녀석들은 차가워진 깃을 움츠리곤 서로의 몸을 부둥키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외따로 떨어져 걸었다. 오히려 서로의 온기가 방해가 되는 것처럼. 빗방울은 그들의 우산사이로 흩어져가고 몇은 비를 맞는다. 대개 그들이 지닌 짐은 적다. 비가 모두 떨고 나서 어스름이 피어날 즈음 보통의 주말을 맞은 사람들은 눈을 떴다. 붉은 질그릇 같이 희약한 해가 떴다. 해는 머무름 없이 하늘로 뛰쳐나갔고 일정이 없는 이들은 이부자리 속에 머물렀다. 전날 멍하니 서있던 사람들은 버스 첫차를 타고 떠나고 없었다.


그들은 타인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타인들에 대한 여유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서로의 온기를 필요로조차 하지 않을 수 있다.


9.


별반 다르지 않다. 분에 잠기고 겁에 질리고, 하지만 그 실체를 모르므로 잠깐 떴다가 지는 해처럼 흘려보내는 것이다. 타인들의 시선은 바늘이 아니다. 그것은 찌르지도 않는다. 잠깐 지나는 바람처럼 내 뺨과 이마를 스치고 지날 뿐이다. 희뿌연 낮이 밝고 나면 나는 적적한 몸을 이끌고 인근의 건물서 무엇인가를 쓰고 있겠지만 그 모든 것들은 쉽게 잊힐 것이다. 사람들이란 그러하다. 쉽게 상기시키고 쉽게 잊는다. 잊었다는 사실조차도 쉽게 상기시키고 잊는다.


빗물이 길바닥에 고이는 일 없이 마른다. 천변의 얼음은 낮 중으로 풀어지고 오리들이 모일 것이다. 나는 어떤 존재인가. 문득 자신을 타인 다루듯 하는 데에 너무 익숙해져 있지 않은가. 타인이라는 것을 배제시키고서 나는 대체 어떤 존재인가. 물음에 대한 답은 공란(空欄)이다. 늘 그러해야 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니 별 수 없는 것이다. 떨던 비둘기가 횃대로 삼던 곳에서 뛰어내렸다. 하늘을 야트막하게 날아올라 내 짧은 머리칼을 스치운다. 불쾌하다기 보다는 쾌청하게. 뿌옇게 흐린 하늘에 무색무취의 해가 떠올라서 두루 비추고 있다. 직시하는 통에 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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