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0
6.
사람들은 종종 무디다. 왜소한 사람 하나가 큰 리어카를 밀고 가도 그것은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하지 않는다. 남자인지도 여자인지도 모를 한 사람이 머리를 감싸고 울고 있어도 그것은 그의 시간이 필요한 법으로 단정된다. 그렇게 사람들은 늙어간다. 사람들의 수다소리 끝에 걸린 알게 모를 적막이 쓰다. 사람들은 뭔가를 말한다. 잊고자 말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이렇듯 사람들은 무디다. 안개도 아닌 것이 하늘 아래 자욱이 깔려있다. 그 희뿌연 연기에 하늘은 탁하게만 보인다. 뜨는 해는 불그스름해지다가 천정처럼 누렇게 변했다. 나는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을 손가락으로 곱씹다가 가슴에 작은 불을 피워놓았다.
가끔 원초적인 감정으로 납치된다. 죽음, 겁, 폭력, 그리고 화에 이르기까지의 짧은 스펙트럼이 지나면 그것들은 나를 부수면서 지나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하나의 감정이 통하는 관(管)인 셈이다. 그리고 언제나 나는 체하여 소화불량에 시달린다. 그 끝에 감정을 수납하는 법을 배웠다. 그것을 멍하니 마르길 기다렸다가 개켜서 고이 넣는다. 그게 내가 얻은 하나의 방편이었다.
리어카를 밀던 노인의 끝에는 누더기 개가 있다. 꼬질 하고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녀석이다. 녀석은 사람에게 사랑받는다. 그 사랑이라는 감정이 누더기 개의 마음을 관통하고 있다. 하나의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가 부럽다. 갈대박수처럼 하늘거리며 나부끼는 그의 꼬리가 부럽다. 나의 것은 진즉에 퇴화되었다. 오롯이 앉기 위해서 쓰기 위해서 그것은 기물로서의 지위를 잃었던 셈이다.
사람들은 무디다고 생각된 만큼 무디지는 못하다. 무던하고자 하지만 쉽게 되진 않는다. 그들은 저마다의 가시를 내비친다. 속에 얹힌 응어리의 가시를 내보이고서야 그 발작은 잦아든다. 그것이 유일하게 감정을 틀어막는 방법이다.
7.
가시나무는 진물이 많다. 이파리를 작게 틔울수록 그러하다. 피를 많이 가진 풍선 같은 인간은 종종 현기증을 겪는다. 부드러운 이파리와 털을 가진 개는 기껏해야 울음을 울 뿐이다. 나는 그가 부럽다. 가시 없이 보드라운 털을 가진 짐승. 아늑하게 품을 누릴 줄 아는 짐승. 그것이 부럽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사람으로 남고 싶기도 하다. 사람은 개보다는 세운 가시에 가깝다. 나부끼는 갈대 같은 꼬리도 얽는 뿌리도 없다. 우리는 뿌리 없는 나무들이다. 그런 족속들이다.
나무가 쐐기를 박고 거점을 내리듯이 우리도 하나의 구심점을 잡는다. 그리고 어떠한 것들은 존재만으로 지탄받는다. 그곳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동반되고서 뿌리를 박는 식물은 없다. 그러니 그것은 저항하는 수밖에 없다. 지켜본 바로는 저항이야 말로 생의 발로다. 여지껏 생이 생일 수 있는 유일한 구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