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서리

2025/12/31

by 나무느을보

28.


새털구름 앞으로 모서리 진 건물들이 드리운다. 그 첨단(尖端)들은 무엇을 베어 가르려는 듯 버티고 서 있다. 문득 지나는 사람들의 걸음이 세모꼴로 느려질 즈음하여, 나는 무엇인가 생각에 빠졌다. 지난 꿈이던지, 지나간 사람이던지. 행인들이 구름처럼 흩어지면 비로소 머릿속이 명료해져서 그것을 작게 노트 귀퉁이에 써놓았다. 나는 웅크리는 습관 덕에 글씨는 한쪽으로 구푸린 꼴이다. 적어 놓은 생각이 제법 둥글고 괜찮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못내 한참 못 미치는 낙서가 되어 나동그라졌다.


귀퉁이가 드는 창문은 풍수에서 흉하다지만 귀퉁이 없는 집을 요즘은 보기 힘들지 않은가. 그것들이 날이 되어 달려드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귀퉁이 자리는 늘 흉하다면서 앉은 자리조차 피하라는 말이 있던데, 바둑에서는 예외다. 귀 부터 타고 오른다. 그럼 혹자는 말할지 모르겠다. ‘바둑은 자리싸움이지 지하철 상행선에서 막다른 자리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과 같은 논리야!’ 그래 혼자 자리하는 방에선 애써 귀를 차지할 필요는 없다. 그 공간의 주인이 되는 법을 익혀야 하니까. 도리어 모서리 자리에 집착하면 중앙을 꿰차고 어떤 험한 것이 들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가끔은 모서리에 앉아서 웅크리고 싶은 심리를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천정이 짓누르는 것 같을 때에, 혹은 문간에 도깨비라도 서 있는 것 같을 때에, 쥐가 비좁은 굴을 찾듯이 모서리로 파고들고 싶은 때가 있다. 벽에 양 어깨를 구푸린 채 밀착시키고 있노라면 저 낮은 천정이 무너져도 버텨줄 것 같고, 그 자체로 하나의 공간이 완성되는 것 같기도 하다.


29.


가슴처럼 둥글린 것은 또 어떠한가. 갈빗대가 감싸 안은 나의 장기들, 유약한 심장이 자리한 그곳엔 우는 작은 카나리아가 있다. 매캐한 공기를 참지 못하고 죽는 광부들의 기민한 카나리아가 있다. 그 심약한 것은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지도 못한다. 항상 말을 거는 것이다. ‘저 깊숙한 곳에는 유해한 가스가 차 있다’고 말이다. 그 유해한 것이 내 숨통마저 틀어막을지는 결코 모르지만 나는 내 핏덩이 카나리아를 사랑한다. 그러나 도리어 비좁은 곳에 박히도록 만든 것도 그 아이니 우린 애증의 관계인 셈이다.


지난 날 카나리아가 우는 통에 가슴앓이를 했다. 어찌나 녀석이 우는지 나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다 탈진하고야 말았다. 이렇듯 겁쟁이 나의 새는 운다. 무엇이 그리 두렵고 싫은지 나는 아직도 녀석을 잘 살펴야 알 것 같다. 가만 보면 녀석은 조금 외로운 것 같다. 어머니의 심장박동을 들었던 태내에서부터 멀어져 그 음성을 따라 공명한 적 없으니 당연하다. 둥글린 것들은 이렇듯 유약하고도 보드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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