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30
26.
묽게 펴진 하늘이 판판하게 흘러간다. 높은 가로등 위에 붙은 새들은 날지 않는다. 그저 꼼짝 않고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그에 반해 사람들은 바삐 움직인다.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얇은 날개가 붙은 바람이 일고 그 바닥 가까이엔 먼지가 풀썩 일었다. 천정 곁에 잘 말려놓은 꽃을 매달아놓았다. 그것들은 점점 본연의 색들을 잃어간다. 흙빛에 가깝게 변해가는 그것들이 소각장으로 향할 즈음엔 봄이 올 것이다.
보도블록 사이에 낙엽을 덮어놓은 곳엔 민들레가 살아남았다. 그러한 방식으로 겨울을 나는 파초를 본 적 있다. 낙엽에 잘 덮여 겨울잠을 자듯이 봄이 오길 기다리는 파초를 보곤 여름에는 좀 더 시원스럽게 잎을 틔우겠구나 싶었다. 누군가의 주검은 이렇듯 누군가의 자양분이 된다. 썩은 것이라 여긴 것들은 어쩌면 가장 따스한 것들이었을 수 있다. 의미라는 것은 바라보기 나름의 것이다. 고로 가장 알맹이에 가깝게 여겨졌던 것들도 그저 쓰이지 않는 아름다움일 수 있는 셈이다.
천정에 늘어선 것들을 걷어낼 즈음엔 봄바람이 불까. 아니면 그저 이것과 저것을 연관 짓는 바보의 억척스러움인가.
27.
저마다 침묵 속에 소란을 안고 있다. 다문 입술 내부로 윙윙거리는 바람이 빠지지 못한 채로 날벌레처럼 나돌고 있다. 머리에 든 바람은 말과 행동이 되어 새어나가고 그 사람을 만든다. 각자의 소란이 각자를 만드는 꼴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각자의 도기파편들은 그 날카로움이 전체라 여겨지기 십상이지만 그것은 부서진 단면일 뿐이다. 본래 둥글지 않은 인간이 있던가. 그러나 사람들은 날카로움을 본질로 여긴다. 그 비관 속에서 살아가는 세상이 따갑지 않을 리 없다.
바람은 부드럽고 공순하게 흘러간다. 오만하게 선 아스팔트 협곡에서는 세차게 흐르지만 부드럽게 선 언덕은 포근하게 감싸 비를 뿌린다. 머릿속에 든 소란이라는 바람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나는 머릿속에서 침묵하는 벌레를 가장 두렵게 여긴다. 그것들은 어떤 바람도 썩어가는 것들도 없이 누에의 식사처럼 야금야금 나를 벌레의 일부로 바꾸어놓는다. 그렇게 비대해진 벌레를 보곤 나는 말할 것이다. 이젠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다고.
그 들끓는 무대에 차라리 큰 바람이라도 불었으면. 차라리 흰개미 집 같이 오만하게 솟구친 모든 것들을 낮게 엎어뜨리고 새로이 시작할 봄을 말하였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