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8
22.
귀신조차 옴 붙지 못하는 적막한 방안에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악몽을 거듭하다가 멍하니 면벽을 한 채로 서있다. 꼭 정신을 놓은 사람처럼. 마치 그 너머에 누군가의 소리를 훔쳐들을 수 있다는 셈 머리를 기울여 벽에 기대었다. 뜨거운 이마의 감촉이 느껴졌다. 그는 홀로된 인간이다. 벌레 하나가 따듯한 훈기를 찾아 그의 방에 들 적에도 그는 그것을 사물로서 바라볼 것이다. 심지어 넋이 들 때에도 그는 그것을 하나의 물건으로 바라본다.
그는 책상위에서 무엇인가 두리번거리며 글씨를 쓰고 그 글씨들은 느릿하게 흐르는 강이 된다. 질곡 많은 냇가의 느린 강물이 될 즈음에는 남자는 탈진한 채로 다시금 악몽 속으로 기어들어갈지 모른다. 작은 굴에 사는 토끼처럼 여러 갈래를 놓은 그의 꿈은 간편하게 분간되지 조차 않는다.
토끼들을 잡는 방법은 지독한 번갯불을 피우는 것이다. 아주 지독한 방법이다. 그들은 그 일에 대비하진 않았지만 다른 입구를 여러 군데에 파 놓았다. 그을음이 얼마나 지독한지 알면서 시시덕대면서 불을 피운다. 그렇게 남자의 토끼를 닮은 악몽들은 번갯불을 피해 몰려나갔다.
23.
차가운 낮에 몸을 떠나간 넋들은 차가운 강에 붙었다 떨기를 반복한다. 그것들은 하나의 흰 가운을 걸친 한기로 남았다. 남자는 외로운 넋들을 보곤 그것들이 어른거리는 장면이 마치 향불이 피어올랐다가 지는 장면과 비슷하다 생각한다. 낯선 악취는 익숙지 않은 나머지 본능적으로 시취(屍臭)와 그것을 연관시키기 마련이다. 남자는 얼음을 깨는 아이들 곁에 서서 넋들이 깨어지는 장면을 멍하니 구경했다. 흰 것들을 찾는 남자의 눈은 이제 빠르게 흘러가는 구름에 못 박혀 이끌려간다. 시선으로 쫓을 수 있는 것들을 누가 두 발로 따라잡을 수 있다 말했던가. 시선은 그 정도로 빠르다. 빠르게 쫓아 그 모든 것들을 손쉽게 포착해놓는다. 그러나 그 뿐이다.
아이들이 모든 얼음을 깨기 전에 돌다리를 넘어 작은 건너동네에 다다른 그는 얼음을 밟는 감촉에 대해서 떠올려 보았다. 마치 잘 마른 낙엽을 밟는 일처럼 경쾌한 그 감촉. 가볍게 언 웅덩이를 밟는 것은 그렇듯 가볍고 사랑스럽다.
희게 든 해가 중천에 걸리기도 채에 기운 없이 눕고. 서랍에 감추어 놓은 작은 몽당연필처럼 얌전하게 남자는 자리에 다시 앉아서 무엇을 쓴다. 조금은 쾌청해진 기분이 든다. 떠도는 넋이 들 수 있는 틈이 방 안에 조금은 났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