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3
32.
일상 중 마주하는 것들은 하나같이 반복적인 것들이다. 그 반복 속에서 무엇인가 의미를 찾는다면, 하나의 안온한 알껍데기의 부화를 떠올리게 한다. 안주하는 것. 따듯한 품. 그리고 저도 모르게 변해가는 것들 사이에서의 조응은 너무나도 격렬하게 서로의 세계를 부수고 재건축하기를 반복한다. 오롯이 반복되는 것들은 드물다. 초침 같은 것들과 한 사람의 정갈한 걸음걸이처럼 리듬을 갖는 무언가. 그래서 사람들이 음악을 사랑하는가 보다.
요즘은 똑딱거리는 시계 침이 드물다. 안방에 한 때 걸려있던 오래된 시계는 그런 시계였다. 태엽이 돌고 침을 퉁기는 그런 아날로그풍의 물건. 아버지는 그 소리가 싫다면서 잠을 이루지 못하셨던 터라 그 물건은 거실로 옮겨갔다. 밤이면 그 소리는 올빼미의 동공처럼 불거지는데 나는 그 소리를 퍽 좋아했다. 적어도 시간이 흐른다는 관념을 오감 중의 하나로 가져온다면 그것은 청각이어야 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귀밑으로 흘려버리고서 그 소리에 집중하고 있노라면 시간이 걷는 걸음이 연상되었다.
시간이 흘러 그 시계가 탈이 나서 멎고, 버려졌을 적엔 다시 그 소리를 닮은 것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메트로놈이라는 것을 알았다. 주로 악사들이 자신의 연주의 속도를 조율하기 위해 발명된 물건. 그것은 과도하고 조금 더 강렬하긴 했지만 분명 새벽 중의 소리와 닮아있었다. 나는 악기를 연주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어서 그것을 구할 까닭이라곤 없었다. 그렇게 시계소리는 뇌리서 서서히 잊혀 갔다.
톡톡. 알껍데기를 두드리는 작은 새의 부리. 모두가 잠든 새벽에 칭얼거리는 핏덩이 아기처럼 뒤척이는 그 소리가 가끔은 그리워지곤 한다.
33.
겨울이면 아이들은 얼음 깨기를 하며 놀았다. 가끔 던지는 돌은 인도로 튀어서 노인들은 성을 내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그 때에 흩어졌다 모이기를 마치 비둘기 떼 같았다. 강물이 녹은 부분에서 뜨는 물수제비가 반대편 인도에 닿기엔 힘이 역부족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조마조마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비둘기들은 영리하다. 비둘기가 영리한 새라는 것을 사람들은 종종 잊는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를 사시안 덕에 그들의 악동은 가려진다. 얼음이 깨어지면 아이들의 바지춤은 젖고 왁자한 소리가 오간다.
천변에 얼음이 언지 얼마 되지 않았다. 얼음은 깊지 못할 터였다. 아이들이 떠나가고 나면 더 작은 아이들이 큰 아이들을 따라했다. 얕은 얼음은 이미 깨어져서 새로이 굳기 시작한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