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

2026/01/02

by 나무느을보

31.


언 발을 모은다. 작은 약동이 느껴진다. 그곳엔 피가 맺혀 돌고 있다. 자명한 사실. 또 하나의 비명처럼 가닿는다. 그것은 정해진 방향동안 수십 년간 흘러왔다. 정해진 방향으로 돌고 살갗에 혈맥을 늘리는 식으로 그것은 살아왔다. 한기에 저항해 가면서, 작은 약동과 함께. 언 발이 녹기 시작하면 나는 다시 바닥에 맨발을 딛고 어디론가 향할 수 있다. 정좌하는 것이 불가능한 마음가짐과 뒤엉키는 머리카락처럼 너저분한 생각들이 나를 이끈다. 그것이 바닥에 대한 내성을 기를 수 있다.


불안증에 겨워 막힌 방을 떠돌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곳은 그저 공기처럼 순환할 뿐이다. 바닥에서 가라앉은 것들이 발길질에 차고 올라 다시금 어지러운 머릿속을 식히고, 식은 머릿속은 다시 뜨겁게 달아오른다. 단순한 증기기관이 완성된다. 가닿는 선로와 침목 그 아래 깊숙이 자리한 돌덩이 같이 굳은 땅이 있다. 긴 손톱의 땅벌레도 가닿지 못하는 그런 단단한 돈대(墩臺)같은 땅이 있다.


녹은 발을 펴서 걷는다. 약동은 멎고 그곳에 피가 돌고 있다는 자각은 무뎌진다. 어쩌면 말굽처럼 감각에 대한 자각마저 흐려질 수 있다. 무뎌진 발을 놀리면 이어진 선로를 향하고, 같은 공간을 빙빙 돌고 있다는 자각에 이르면 멈춘다. 그것이 하나의 정거장이 되는 셈이다. 한기는 잊히고 생각은 정리된다. 침대 밑에서 발견된 머리카락 뭉치 같던 생각들은 하나의 두터운 매듭이 되어 있다.


차가운 공기에 이젠 두 뺨마저 얼었다. 잃어가는 온기에 대해서 곱씹고, 자꾸만 차가워지는 세상에 대해서 곱씹는다. 그리고 곧 다가올 봄을 믿는다. 강가로 얼어붙은 얼음은 낮 중에 풀릴 것이다. 풀린 것들은 다시 넓은 강줄기를 타고 바다로 향해서, 얼지 않는 강인한 대양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풀어진다. 따듯한 공기가 시베리아의 바람을 이기는 순간이 올 것이다. 다시 신록이 피어나고 따스한 풀잎을 틔우는 순간이.


바깥에서 구른 발들이 생각을 덜어내고 돌아올 적엔 방은 조금 훈기가 도는 것 같다.


따듯한 것들을 안다. 뜨거워지는 것은 언제나 머리이고 식는 것은 언제나 나의 발이지만, 실은 이것이 거꾸러져야 한다는 것을 안다. 뜨거운 것들은 위를 향하고, 차가운 것들은 아래를 향하는 일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머리에 뜨거운 열기가 차면 넋은 흐려지고 열병을 앓는다. 고로 따듯한 훈기는 가슴께정도 차 있는 걸로 충분하다. 그 훈기는 차가워진 마음을 충분히 덥힐 만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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