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4
34.
어떤 냄새는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할머니의 모자나 절간의 향냄새. 그리고 들큼하게 오른 아버지의 술기운 냄새. 그러나 그런 것들을 매번 부여잡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한 기억들은 하나의 스쳐가는 무엇인가로 두는 게 적당하다. 생명의 본성은 ‘거스름(逆)’이라고 믿는다. 하나의 방향이 주어지면 그것에 산란기의 연어처럼 거슬러 올라 반(反)하는 일. 새싹이 단단하게 굳은 땅을 거슬러 잎을 틔우는 일. 심지어 추억하는 일까지도 그 모든 것은 거스르는 것이다. 냄새는 다른 기억보다 훨씬 오래 기억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냄새는 하나의 추억을 하는 가장 적절한 감각인 것이다.
집에서 향을 피우면 흉하다는 말을 믿은 적이 있다. 귀신은 냄새를 타고 오기 마련이라며 어느 무당이 역설하듯 말하는 것도 흔치 않게 본다. 실제로 누워서 향 내음을 맡고 있노라면 어느 스산한 빈소에 몸을 눕히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향을 피우는 것은 나의 할머니를 기리기 위함이다. 그 분은 울분을 견딜 하나의 이유가 된다.
날이 천천히 풀리고 있다. 사람들은 조금 단순한 옷차림으로 걷는다. 계절이 오는 냄새를 안다는 동아리 선배 말에 의하면 여름은 상쾌하고 가을은 무엇인가 굽는 내음이 난다고 했다. 나는 그것을 전혀 알아차린 바 없기에 내심 반신반의 했다. 만일 계절이 오는 냄새가 있다면 그처럼 멋진 일도 없겠지만 다른 동물들도 그것을 맡을까 싶었다. 아직 천변의 얼음은 그대로이다. 낮이면 조금은 풀어질지도 모르겠다. 옷차림, 밟히는 단단하게 얼은 땅의 감촉도 그대로이다. 다만 조금 푸근한 느낌이 든다. 조금은 봄이 왔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35.
가족들이 모였다. 나는 그들을 구경한다. 따스한 기운 사이로 무엇인가 조용한 것이 파고든다. 가슴 아래로 매달아둔 바늘처럼 서있다. 사는 이야기들이 오간다. 따스한 기분이다. 결코 섞여들기 어렵지만 그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바늘은 내게 말한다. 그걸로 정말 충분한지.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다. 더운 기운이 빠지고 지난 날 피운 향의 냄새를 맡으며 내 방에 홀로 누웠을 적에 나는 생각했을 수도 있다. ‘저렇게 잘하고 싶었는데’ 하고 말이다. 이야기소리. 따스함 그 아래 뾰족한 것이 섞여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마음에 들진 않는다. 어떻게 마음에 들 수 있겠는가. 어울리지 않는 감각인데.
아주 따듯한 잠을 잘 것 같다. 꿈마저 앗아간 편안한 잠을. 조금 뒤척이고 나면 다시금 늦은 아침이 밝아올 것이다. 부풀고 식고 반죽처럼 이겨지던 가슴에 평온한 무엇인가가 깃들 수 있다. 가령 가족과 추억 같은 냄새라 던지. 계절이 오는 냄새라 던지.